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대책 마련이 이어지고 있으나 이러한 계획이 실행으로 옮겨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실질적 저감을 위해서는 에너지와 환경, 기후, 제조, 교통, 건설 등 다양한 분야와의 긴밀한 협조가 선행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탄소중립과 순환경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형술 교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탄소중립 순환경제 학회’ 수립을 추진하며 탄소중립을 만족하는 동시에 경제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모델 수립에 나섰다.
탄소중립과 순환경제 중심으로 한 업사이클링 연구 수행
캐나다 워털루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로 활동해온 이형술 교수는 12년째 워털루대 교수로 재직하며 자원회수 폐기물 및 폐수처리, 바이오배터리와 바이오센서 등을 위한 미생물 전기화학시스템(Microbial electrochemical cell, MEC)의 기초와 응용 연구를 수행해왔다. 혐기성 소화/생물막 및 탈질소와 결합된 메탄의 혐기성 산화에 대한 동역학 연구 등 폐수처리 분야와 더불어 재생 가능한 천연가스 및 그린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 생분해성 플라스틱 생산 등이 주 연구주제다. 최근에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순환형 바이오경제센터장으로서 센터를 이끌어가고 있다. 순환형 바이오경제를 촉진하기 위해 설립된 센터는 저부가가치 부산물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업사이클링하기 위한 첨단기술 개발에 주력한다.
“해외에서 팬데믹을 맞이하며 한국에서의 기회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이기도 했죠. 그간 쌓아온 저의 경험들을 보다 의미 있게 펼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 교수는 탄소중립과 순환경제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업사이클링의 관점에서 자원의 순환을 바라본다. 이러한 연구 방식은 환경이라는 분야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환경은 물리나 화학처럼 특정한 목적과 영역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분야이기에 연구주제 또한 다양하다. 이 교수는 환경공학이란 위생 및 오염에 관한 문제가 시작되어 점차 커져 나가자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시작된 학문이라며,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연구를 수행해왔다고 말했다.
“연구 초기만 해도 너무 폭넓은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기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고민이 컸습니다. 그러나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환경이라는 분야를 파고들다 보니 이제는 생각지도 못하던 퍼즐이 하나둘 맞춰지며 남들과는 다른 연구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자원순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과거 조상들이 사람이나 동물의 분뇨를 비료로 사용한 것을 ‘Beautiful cycle’이라 표현하며 비단 농업뿐 아니라 산업의 모든 영역에 이러한 컨셉을 적용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산업화와 함께 파괴된 자원순환 사이클이 이제 기후변화라는 결과로 다가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이 교수는 바이오테크놀로지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인류가 2천 년 이상 활용해온 자원순환 사이클을 모든 분야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이어가는 그다. 이러한 관점은 그린수소 생산과 재생가능 천연가스, 폐수 내 농업용 영양공급원 추출 등의 연구로 뻗어왔다.
높아지는 환경기준 충족하면서도 경제성 겸비한 기술개발에 초점
“폐수를 정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를 포집해서 지역난방시스템에 활용하는 기술이 있다면 어떨까요? 미국에 있을 당시 나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우주선이 화성에 도착하기까지 보통 5년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우주선에 탑승한 인간이 배출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배설물을 자원으로 활용해 전기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한 연구였죠. 이외에도 자원순환 관점에서 음식물쓰레기 등 다양한 자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이어왔습니다. 이제는 업사이클링을 중심으로 연구를 확장해가고자 합니다.”
이형술 교수는 탈질소와 결합된 메탄의 혐기성 산화 연구를 통해 물과 폐수처리 분야 기술에도 오랜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 에너지 저감형 혹은 자원순환형 폐수처리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동시에 방류수 수질기준도 점차 강화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실질적 대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데다 폐수의 양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에 많은 도시들은 폐수처리에 관한 고심을 이어가고 있다. 자연순환의 관점에서 폐수처리에 관련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온 이 교수는 현재 관련 기술기반이 구축되고 있으나 국내에 아직 관련 시장은 형성되지 않은 실정이라며, 향후 부산물과 폐기물로부터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신기술을 중심으로 한 시장이 열릴 것이라 내다봤다.
“현재 에너지 저감형 및 자원회수형 폐수 처리분야는 기술 수요자와 공급자의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관한 컨센서스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죠. 이러한 미스매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강화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경제성까지 확보해야 하죠. 제가 지난 15년간 외롭게 바이오 수소를 연구해왔듯 에너지 저감형 및 자원회수형 폐수처리에 관한 기술 또한 언젠가는 시장이 필요로 할 때가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최근에는 저탄소 순환경제 구축을 위한 업사이클링 프로세스 연구에 초점을 두며 생분해성 플라스틱 생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관련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원료로 활용해 생분해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업사이클링 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진행하여 이미 proof-of-concept 실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스케일업 단계로 접어들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석유계 플라스틱을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변환하는 것이 목표다. 5년전 그는 캐나다에서 플라스틱의 심각성에 대한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며, 한국에 돌아와 캐나다보다 훨씬 심각한 플라스틱 문제를 겪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기술을 북미나 유럽으로 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였다. 이밖에도 이 교수는 바이오 수소, 세포외 전자전달(EET), 영양소 회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공식 출범 앞둔 ‘탄소중립 순환경제 학회’, 탄소중립에 대한 공론의 장 될 것
이형술 교수에게 탄소중립 시대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되고 있었다. 환경공학은 그간 다른 분야에서 파생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으나, 탄소중립 시대에서 환경공학은 대안 마련을 위한 중심에 설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다. 급격한 산업화를 관통해낸 인류는 이제 탄소 생산자가 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을 지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 교수는 산업의 플랫폼이 변화하고 있다며, 앞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환경 전문가의 역할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 내다봤다. 이러한 포부를 실현하고자 그는 ‘탄소중립 순환경제 학회’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 산업계, 학계를 포함한 학제 간 유기적 융합을 이루며 공동연구의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탄소중립과 순환경제라는 주제를 동시에 논의할 수 있는 플랫폼이 없었어요. 이에 한국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합니다. ‘탄소중립 순환경제 학회’는 탄소중립과 순환경제에 대한 전 세계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논의를 통해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향성을 구축해갈 것입니다.”
탄소중립 순환경제 학회는 대한민국이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경제개발 전략 마련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간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세계 탄소중립 순환경제 시대를 리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학회는 탄소중립 순환경제를 촉진·실현할 수 있는 연구개발과 더불어 관련 정책수립과 기업 활동에 필요한 지식·기술개발을 지원한다. 이 교수는 주요 분야인 환경, 기후, 에너지를 중심으로 탄소발생량이 높은 화학소재, 제조, 자동차, 운송, 농업, 축산업 등 전 분야와의 긴밀한 협업을 이어갈 것이라 전했다. 학계와 공공기관, 산업계가 모두 관심을 갖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학회 결성을 위해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탄소중립과 순환경제라는 주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분야의 특성상 너무 방대한 주제를 포괄하다 보니 선뜻 자신의 전문 분야라 확언할 수 있는 분들이 없었어요. 저는 오랜 시간 환경 분야를 연구하며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의 공동연구를 수행해왔습니다. 다학제간 융합연구에 익숙하죠. 탄소중립과 순환경제에 대한 공론화를 위해서는 환경공학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학회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학회는 오는 7월경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최초이자 처음으로 탄소중립 이슈를 논의하고 연구할 수 있는 학회의 탄생은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미있는 움직임이자 대한민국이 탄소중립을 논의할 수 있는 중심축이 될 첫 단추를 꿰는 중요한 순간으로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현실과의 간극 좁히며 미래 향해 나아가야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까지 감축한다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설정했다. 이에 대해 이형술 교수는 법이 제정되고 실제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혼란이 예측된다며, 학자로서 정부와 에너지 및 산업계가 합의점을 찾아가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에 탄소중립 순환경제 학회가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40%’라는 감축 목표가 과학에 근거해 설정된 목표인지, 우리나라 경제와 복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학회 차원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탄소중립은 경제와 복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국민들에게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동시에 경제적 효과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죠. 이 두 가지 가치의 밸런스를 맞추어 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가 올 것입니다. 다만 2030 NDC와 관련해서는 외교적 해법이 존재하리라 생각됩니다. 지금의 목표가 국내에서 소화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은 전문가적인 평가에 근거해서 내려져야 합니다. NDC 실현에 따른 경제적 문제는 국가의 존망과도 직결되는 만큼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세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교수는 지구상의 바다가 하나로 연결되어 순환하듯 환경문제에 로컬 이슈란 없다며, 모든 환경문제는 글로벌 이슈임을 강조했다. 환경문제에의 대응은 당장 내 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백신 쏠림현상과 함께 불거진 윤리적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교수는 팬데믹과 함께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확인했듯 환경 문제는 곧 나와 우리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팬데믹과 함께 인간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 구성원 문제가 연결되었음을 재확인했습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요. 이에 그간 제가 쌓아온 경험과 재능을 사회와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도 스스로 자부심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을 주문한다. 또한,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하루하루를 만들어가라고 조언한다. 그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가며 스스로 보람있는 삶을 살아가는 연구자들을 배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의 가능성을 확신하며 국내에서의 연구를 결심한 만큼 향후 자신의 자리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하겠다는 다짐과 함께였다. 눈앞으로 성큼 다가선 탄소중립의 시대, 이 교수는 연구와 교육을 넘어 탄소중립 순환경제 학회를 이끌며 새로운 시대의 기준을 정립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