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나노기술을 실용화하자”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나노기술을 실용화하자”
  • 정이레 기자
  • 승인 2017.10.1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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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김상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모방이나 파생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유기적인 원리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생긴 성향이나 성질.” 독창성(Originality)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그렇다면 연구자가 오리지널리티를 가지려면 어떤 노력을 경주해야 할까? 기자가 만난 KAIST 신소재공학과 김상욱 교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통해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갈 것을 주문한다. 이 때, 도전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있다. ‘과학기술의 발견’이라는 연구자 본연의 목표가 가슴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플래시 광을 이용, 초고속·초미세 패턴 형성에 성공

최근 KAIST 김상욱 교수 연구팀은 카메라 플래시 광열 공정을 분자조립 나노기술에 도입, 분자조립 반도체기술의 실현화를 앞당길 수 있는 초고효율 신공정기술을 개발했다. 해당 기술은 반도체용 7나노미터 패턴 기법으로 한 번의 플래시를 조사하는 것만으로 대면적에서 초미세 패턴 제작이 가능하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 8월 21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되면서 우수성을 입증 받았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요소인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의 기술에는 고용량, 고성능 반도체 소자가 핵심이다. 이에 ‘고분자 분자조립 기술’은 수 나노미터 수준의 패턴 형성이 용이하며 저렴한 공정비용으로, 종래 반도체 미세화 기술을 대체할 차세대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고분자의 분자조립현상을 촉발시키기 위해서는 장시간의 고온 열처리나 유독성 증기 처리가 필수적이었고, 이는 공정효율이 중요한 산업계에 응용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간 분자들이 스스로 정렬되어 반도체용 초미세 나노패턴을 형성하는 새로운 나노기술에서 연구를 지속해 온 김 교수. 15년 이상 계속된 그의 집념은 초기 학문적인 기초연구를 전 세계 유수의 반도체회사들이 반도체 양산을 위해 관심을 가지는 신기술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업계의 큰 관심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기존 반도체 공정과의 융합이 쉽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는 상황이었다. 이에 김 교수 연구팀은 2~3년 전부터 새로운 접근방법을 고안, 레이저와 같은 광학적인 방법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매우 신속하게 대면적 공정이 가능한 플래시 램프공정에 주목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고분자 분자조립 패턴 기술의 문제 해결을 위해 순간적으로 강한 빛을 내는 카메라 플래시를 활용했다. 플래시 빛을 이용하면 수천 억 원에 달하는 EUV 리소그라피장비가 없어도 15밀리 초(1밀리 초: 천분의 1초) 내에 7나노미터의 반도체 패턴을 구현할 수 있고, 대면적에서 수십 밀리 초의 짧은 시간 내에 수 백도의 고온을 낼 수 있게 된다. 연구팀은 해당 기술을 고분자 분자 조립에 응용해 단 한 번의 플래시를 조사하는 것으로 분자 조립 패턴을 형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김 교수는 고온 열처리 공정이 불가능한 고분자 유연 기판에도 적용이 가능함을 확인했다고 밝히며 차세대 유연 반도체 제작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분자조립 나노패턴기술은 미국 등을 중심으로 반도체 양산공정으로의 적용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가 개발한 신기술은 분자조립 나노패턴법의 실용적 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으며, 비용절감과 동시에 공정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어 분자조립 기술의 반도체 공정 도입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본 기술이 실제 반도체 생산에 적용될 경우, 획기적인 원가절감과 성능향상을 기대합니다.”

 

사소하지만 신선한 시도, 연구의 초석이 되다

그렇다면 이번 연구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던 광학적 접근법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김상욱 교수는 그야말로 아주 사소한 출발이었다고 부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는 ‘개발한 신소재에 레이저 포인터를 쏴보면 어떨까?’라는 작은 아이디어로부터 기인했다는 것. 일련의 신선한 시도를 통해 오늘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연성나노소재 연구실은 기존의 기술 한계를 극복하고 독특한 나노물질 특성을 활용한 다양한 나노소재 기술의 핵심 원천 기술을 연구·개발한다. 고분자 및 블록공중합체 나노패터닝 분야, 탄소나노물질 분야, 전기화학 분야, 차세대 에너지 소자분야 등 서로 다른 연구 분야의 융합을 통해 신연구분야 및 신산업 창출을 도모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동연구와 활발한 산학연 협력을 통해 국제적인 선도연구실로 자리매김했다.

연구실은 블록공중합체의 자가조립을 이용한 반도체 나노패턴 분야의 핵심기술과 그래핀, 탄소나노튜브의 합성 및 도핑, 3차원 분자조립에 대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신소재를 이용한 이차전지 등 에너지 저장 및 변환 소자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한다.

“전 세계 여느 연구자와 비교했을 때, 차별화된 우리만의 연구방향을 추구하고 도전해온 덕분에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팀으로 도약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해온 원천기술들을 실제 산업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나노기술의 실용화에 기여한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의 행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방면의 연구자와 폭넓은 제휴도 서슴지 않는다. 김 교수는 KIST의 내부 연구진이자, 그간 교류를 진행해온 구종민 박사가 지난해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맥센(MXEXN)’이라는 2차원 신소재를 분자조립을 이용해 실용적인 가치를 높일 계획이다. 그는 연구팀이 그간 진행해온 탄소나노물질과 다른 성질을 지닌 세라믹 계열의 금속 ‘맥센’을 통해 각 물질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연성나노소재 연구실 구성원.

‘Quality’에서 ‘Originality’로의 의식전환 주문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다. 어떤 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는 이 말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이 담겨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그것을 즐기는 자는 그 또한 ‘즐거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상욱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라도 본래 흔들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다. 여기에 연구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즐거움이 더해지니 해당 연구가 영롱한 빛을 발산하는 보석으로 가다듬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 교수는 지난 15년의 발자취, 그 소중한 시간들을 돌이키면서 “초반에는 분자조립 나노패턴 연구의 실용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죠”고 운을 뗐다. 당시 나노패턴 분야의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이 몇몇 있었지만, 학문적인 연구에 머문 상황이라 이들 역시도 반도체 공정에까지 적용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연구들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한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김 교수는 후학들에게도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연구에 임하는 태도를 물려주려 한다.

“저는 기본적으로 ‘남보다 우수한 연구’를 지양하고 ‘나만의 연구’를 즐기는 연구자 입니다. 자신의 연구를 다른 사람의 연구와 비교하지 않을 때 독창적인 연구를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이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지치지 않고 새로운 연구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이 때, 과학기술계에 나만의 기여를 남기고 싶다는 바람을 가슴에 항상 품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실용적인 가치에 기여한다’는 소신 하나로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걸고서 달려온 지난 세월, 김 교수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이를 위한 것이었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의 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 학문의 후속세대들이 해야 할 일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원천 연구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모방했던 추격형 연구개발 패턴에서 탈피해 선도형 연구개발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그는 ‘Quantity에서 Quality’, 궁극적으로는 ‘Originality’로의 의식전환을 꾀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과학기술의 역사가 긴 과학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프런티어로 가는 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 교수는 어느 기점에 들어서면, 더 이상 도전자가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게 될 때가 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역시도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신선한 자극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항상 깨어있는 자세를 경주하고 있다. 특히, 창의적인 연구를 위해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를 존중하는 자세를 취하며,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주위 동료들을 경쟁상대로만 치부하는 것은 차별화된 연구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잘못된 자세이기 때문이다.

“공부는 영화비평가이고, 연구는 영화감독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영화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비교하면서 때로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영화비평가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적극적으로 전체 시나리오를 전개해나가는 것은 영화감독의 역할이죠. 공부와 연구의 결정적인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남을 이기기 위한 연구가 아닌, 스스로의 아이디어로 독창적인 연구테마를 찾는 것,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가는 것이 창의적인 연구자의 태도이며 연구자로서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원천성’에 중점을 두는 풍토와 제도개혁 절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제너럴 일렉트릭(GE),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Apple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새로운 상품이나 기술을 개발한 과학기술자들이 회사를 창업하고, 이를 발전시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들과 달리, 한국은 한정된 자본과 외국 기술에 의존해 먹거리를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김상욱 교수는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국내 대부분의 기업들이 리스크를 떠안고 독자적인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꺼린다고 진단했다.

“창의적인 신기술들이 우후죽순같이 자라나는 4차산업혁명시대의 과학기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의식 개혁이 뒤따라야 합니다. 지금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성공 방정식에서 벗어나 ‘혁신’이라는 옷을 입어야 할 때죠. 연구의 가치평가 기준을 좀 더 ‘원천성’에 중점을 두는 풍토와 제도개혁이 절실합니다.”

연구풍토 조성과 국내산업의 발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김 교수. 그는 현재 국내 구조에선 추격자밖에 될 수 없다며, 실패가능성 등 리스크가 다소 있더라도 원천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실생활에 신기술을 접목시키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혁신 리스크에 대한 용기가 오늘의 거대한 대륙을 만든 힘이 아니겠냐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습니다. 기업은 지금이라도 ‘위험’에 도전해야 합니다.” 참으로 뼈아픈 지적이지만, 학계와 산업계 모두에서 인정받고 있는 그이기에 말에 힘이 실렸다.

꿈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내 것이 된다. 지금 선 자리에서 막연한 꿈을 꾸고 있으면서 꿈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꿈이 있다면 나아가기에 주저하지 않을 터. 김 교수가 꾸는 꿈은 ‘독창적인 신소재를 개발하고 산업화하여 우리나라, 더 나아가서는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과학기술자’다. 그는 과학기술의 발전이야말로 연구자들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는 본연의 목표이자 숙명이라고 언급했다.

“저명 저널의 연구논문 게재나 노벨상과 같은 학술상 수상은 과학기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논문은 연구가 표현되고 발표되는 수단이며, 우수논문이나 학술상은 ‘과학기술의 발견’이라는 본연의 목표를 따라갈 때 따라오는 ‘부산물’과 같은 것입니다. 화학적으로 얘기하면 반응의 부산물인 셈이죠. 앞으로도 저는 더욱 원천성 있는 창의적인 연구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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