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 현상에 대한 이해와 활용으로 새로운 초전도 시대를 열다
초전도 현상에 대한 이해와 활용으로 새로운 초전도 시대를 열다
  • 김영록 기자
  • 승인 2017.11.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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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11년 ‘저온 물리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물리학자 카멜링 온네스 교수는 수은의 온도가 –269℃이하로 내려가면 그 저항이 완벽히 사라지는 놀라운 현상을 발견했다. 이러한 현상은 절대온도인 0K(-273℃)에 가까워질 때 양자 효과로 전기의 저항이 완전히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이라 명명되었으며, 현재까지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특히 생활의 모든 것을 전기로 영위하는 현대문명에서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을 자랑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진환 교수가 진행중인 ‘저온 고자기장 STM을 이용한 철계열 초전도체의 연구’는 고속 초전도 트랜지스터 시대의 개막을 예고한다.

이진환 KAIST 물리학과 교수

‘저온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STM)' 연구로 새로운 가능성 제시

“전열기는 콘센트에서 나온 전류가 전열선을 타고 흘러감에 따라 열이 발생하는 원리로 작동됩니다. 즉 전기 에너지가 전열선의 전기 저항에 비례하여 열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은 전기가 흐르는 모든 곳에서 일어납니다.”

이처럼 전기 저항에 의해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전열기 등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발전소에서 송전선을 따라 대도시로 전기를 공급할 때 구리 송전선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는 전력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손익을 극한까지 조절하기 위해 활용되는 것이 바로 초전도체다. 물질의 전기저항을 0으로 만드는 신비로운 물리 현상인 초전도체로 송전선이나 전자석을 만들면 열 손실을 0으로 줄일 수 있는 까닭이다. 20세기 초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 이래 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들은 양자 통계 역학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진환 교수는 초전도는 양자 역학이라는 원자 세계의 물질파 현상이 송전선의 크기만큼 거시적인 규모로 완벽하게 나타나는 매우 특수한 현상이라 설명했다. 이러한 특수 현상을 활용하기 위한 응용연구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간 초전도 현상은 BCS 이론에 따라 영하 230℃ 이하에서 나타나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가 발견되며 해당 이론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세라믹임에도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는 영하 170℃라는 훨씬 높은 온도 이하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외적 현상의 원리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으며, 점차 심화되는 이론의 복잡성과 여러 물성 분석 도구의 등장으로 최근의 연구는 실험으로 제안된 원리를 이론이 검증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교수가 박사과정 때부터 연구해온 ‘저온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STM)’ 역시 대표적인 물성 분석 도구 중 하나다. 이는 원자와 전자를 동시에 원자 수준의 고해상도로 관찰할 수 있는 도구로서 매우 높은 공간 해상도와 에너지 해상도, 매우 낮은 측정 가능 온도, 측정 중인 시료에 물성 이해에 핵심이 되는 고자기장을 걸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미국 코넬대학교의 저온 STM 연구 그룹에서 5년 간 연구원으로 생활하며 고온 초전도체의 잠재력을 파악한 이 교수는 사이언스 저널에 해당 연구 논문을 발표하고, 핵심적인 개선 방안을 갖고 귀국했다. 그가 진행 중인 ‘저온 고자기장 STM을 이용한 철계열 초전도체의 연구’의 시작인 셈이다. 해당 연구는 다양한 초전도 현상들을 규명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초전도 전류 손쉽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 개발

“철계열 초전도체는 일반적으로 초전도를 깨는 것으로 알려진 원자 자성을 갖는 철이 오히려 초전도를 일으키는 현상입니다. 10년 전 발견된 이후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죠.”

철계열 초전도체는 새로운 초전도 원리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과학계에서 새로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철의 스핀 요동 또는 오비털 요동이 원자 격자 진동을 대신하여 철 초전도를 일으킨다는 원리가 밝혀졌다. 이진환 교수는 여기서 나아가 철의 스핀 요동이 초전도를 일으키는 물질에서 외부로부터의 스핀 전류를 이용해 철 스핀의 배열을 바꾸어주면 초전도를 켜고 끌 수 있다는 점을 최초로 밝히며 저명 물리학 저널인 PRL(Physical Review Letters)에 대표 논문(Editors’ Suggestion)으로 게재했다. 그는 이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연구한다면 휴대폰 안의 트랜지스터가 일반 전류를 제어하듯 초전도 전류를 손쉽게 제어하는 고속 초전도 트랜지스터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 내다봤다.

한편 철계열 초전도 원자층과 산화물 원자층을 반복해서 겹쳐 쌓으면 격자 진동에 의한 전자의 짝지음 효과의 증가와 함께 철 초전도가 커지는데, 이 교수는 세계 최초로 이러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체 개발한 고해상도 전자 산란 측정 기술을 개발하며 PRL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해당 기술을 활용한다면 철계열 초전도 역시 BCS 이론에 따라 그 성능을 대폭 향상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전했다. 이러한 첨단 연구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교수 연구 그룹이 개발한 ‘스핀제어 가변온도 자변자기장 STM’이다. 해당 기술은 현재까지 초전도를 스위칭할 수 있는 기기가 없었기에 더욱 주목받고 있으며, 자성 조절을 통해 현재 활용되는 열 조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초전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해당 연구를 가능하게 한 장비 개발 내용은 최근 과학기기 저널 Review of Scientific Instruments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으며, 이 교수는 나아가 실제 초전도 제어 디바이스 제작으로까지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간 이론적 개념은 있었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초전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전자의 스핀을 직접 제어하고 이미징할 수 있게 되었죠.”

최근 그가 개발해낸 스핀제어 가변온도 가변자기장 주사 터널링 현미경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새로운 장비다. 그런 만큼 진동 감쇠 시스템이나 원자 현미경, 제어 전자 회로 등을 설계하고 제작하는데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장비 제작 경험이 있는 데다 그 목적이 분명했기에 세상에 없던 길을 꾸준히 걸어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과학자로서의 사명의식과 묵묵한 인내는 오늘날 그의 첨단 연구 성과들이 세계 유수의 저널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현재까지 그는 세계적인 학술지에 28편의 논문을 게재했으며, 1380여 회 인용되는 등 학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초전도부터 건강, 질병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

첨단 주사 탐침 원자 현미경 장비 제작 기술을 토대로 이진환 교수는 생명의 신비를 풀기 위한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 현재까지 원자 해상도 구조 분석을 위해서는 수만 개의 동일한 분자의 결정이 필요했지만, 이 교수는 하나의 분자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생명체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DNA나 단백질 분자들을 하나씩 회전시키는 방식으로 입체 원자 해상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해당 기술은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를 획득했으며, 현재 그는 첨단 이중 탐침 원자 현미경 제작의 마무리 단계를 진행 중이다.

“생명체의 작동 원리에는 의외로 분자의 미시적 형태가 중요한 기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원과 항체, 바이러스와 세포막의 선택적 상호 결합은 이들 분자의 특정 부위가 형태적으로 잘 들어맞을 때만 일어나는 점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즉, 바이러스의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고, 위험성을 띠는 부분에 결합해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부작용이 적은 신약을 개발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생분자의 전 방향 입체 원자 해상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주사탐침 현미경 측정 연구가 완성된다면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이는 것은 물론 생체 분자나 바이러스 등의 구조를 원자 수준으로 밝힐 수 있게 된다. 제약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질병의 범위가 대폭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 이 교수는 측정기 내 신호 전달의 왜곡과 지연을 수학적으로 거의 완벽히 없앨 방법을 고안하며 실험 데이터나 장비 도면 없는 순수 수학적인 논문을 Review of Scientific Instruments에 예외적으로 게재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현존하는 수많은 아날로그 측정기들에 그 속도와 왜곡을 개선하기 위한 디지털 신호 처리 장비가 붙을 이유를 제시한 것이라 설명했다. 향후 그는 주사 탐침 원자 현미경 개발 기술과 관련한 기술을 초전도 및 건강, 질병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며 연구 범위를 넓혀갈 전망이다. 이밖에도 그는 한국 물리학회 및 초전도학회, 미국 물리학회에서 학문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연구의 즐거움’, 과학강국으로 가는 열쇠

물리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이진환 교수는 제자들이 물리학, 전자 공학, 생명 공학을 조합해 창의적인 발상과 즉각적인 실현을 하도록 돕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강의 보조 자료 시스템과 상호 작용 가능한 체험 학습 사이트를 개발하는 것이다.

현재 ‘칸’이라는 무료 판서 강의 사이트에는 모든 강의록이 개방되어 있지만, 그 분야가 제한적인 데다 판서 공개에 그치고 있기에 보다 시각적이며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간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 교수는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여러 사람이 고가의 실험 장비 없이도 실시간 대화를 통해 실험에 참여할 수 있는 가상 실험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해당 상호작용 학습 자료 사이트는 무료로 공개하며 지속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대학원이나 연구소에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 수준의 내용을 토대로 매주 새로운 주제와 적절한 스토리를 제시하고, 여기에 참여 연구팀간의 경쟁 개념을 도입한 TV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일반인들에게도 과학을 쉽고 재밌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를 통해 과학자들에 대한 시각이 더욱 긍정적으로 바뀐다면 우리나라 과학 기술은 머지않아 높은 위상을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과 과학을 공유하기 위한 이 교수의 아이디어 속에서 과학 저변 확대와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열망과 과학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고도의 창의성과 인내력, 엄밀함이 요구되는 과학 연구지만 이 교수는 이러한 연구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에 대한 즐거움’이라 말한다. 즐거움 속에서 연구에 임할 때야말로 지속적이며 자발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 교수. 그는 연구 지원 및 평가 시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연구의 저변이 넓어져 현재 주목받지 않는 분야라 할지라도 해당 분야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그 분야를 선도하며 선두주자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나노물리와 초전도체를 꾸준히 연구해온 이 교수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길을 개척해가고 있었다. 때론 고독할 수 있는 이 길을 그가 꾸준히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연구의 즐거움’이 있어서일 것이다. 즐거움을 벗 삼아 걸어가는 길 위에서 21세기 ‘초전도체’ 과학사가 새롭게 쓰이고 있었다.

 

이진환 교수

·1997-2002 서울대학교 물리학 박사

·2002-2004 서울대학교 반도체 공동 연구소 연구원

·2004-2009 코넬대학교 원자 및 고체 물리 연구소 연구원

·2010-現 한국과학기술원 (KAIST) 물리학과 근무

 

전문분야

·저온 물리학, 나노 물리학, 초전도 물리학

·초저온 주사 터널링 및 원자간력 탐침 현미경

 

연구성과

·Nature, Science, Physical Review Letters, Review of Scientific Instruments 등 세계적인 학술지에 28편의 논문 게재 및 1380여회의 피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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