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의학의 시대, 新 폐암 진단의 지도 그린다”
“정밀의학의 시대, 新 폐암 진단의 지도 그린다”
  • 박성래 기자
  • 승인 2018.02.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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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영 건국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대한폐암학회 이사장.

최근 정밀의료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정밀의료는 같은 질병이라도 환자가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유전 정보, 생활환경, 습관 등 다양한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검사를 통해 맞춤형 치료법을 제시하는 혁신적인 미래의 의료다. 이에 건국대병원 호흡기내과 이계영 교수는 말한다. “최근 의학계는 근거중심 의학에서 정밀의학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분야 중 암질환이 정밀의학의 핵심에 있으며, 그 중에서도 폐암이 중심이 됩니다.” 의식하지 않고 들고 내쉬는 편안한 숨.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한 번이 극심한 고통이기에 편안한 숨을 찾아주기 위한 의학계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이 교수의 땀방울이 깃들여져 있다.

 

액상생검법을 활용한 정밀의학 폐암클리닉 개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 Next-Generation Sequencing)의 발전은 정밀의학의 시대를 열었다. NGS는 암 조직을 이용한 분석법이다. 폐암은 이러한 정밀의학 시대의 가장 중요한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수술이 가능한 초기 폐암 환자가 전체 환자의 20%에 그칠 정도로 소수인데다 50% 이상의 환자들이 전이성 4기 암으로 진단되고 있어 NGS 분석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DNA를 확보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대안으로 혈액 속 DNA를 추출하여 검사하는 액상생검법(Liquid biopsy)이 제시되고 있지만, 민감도가 낮은데다 아직까지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적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폐암 발병의 후천적 요인인 EGFR 유전자 돌연변이는 여성과 비흡연자, 동양인의 폐선암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폐암 환자의 40%가 EGFR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병한다는 점에서 해당 유전자 연구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EFGR 유전자 변이중에서도 T790M 유전자 변이를 정확하면서도 빠르게 검사하는 것은 Tagrisso, Olita와 같은 제3세대 EGFR 표적항암제 처방에 있어 필수 검사로 자리매김했다. 현재까지 해당 유전자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DNA 추출에 암 조직을 이용하는 방법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이는 침습적‧관혈적인 검사로 예상보다 민감도가 낮고, 합병증 유발의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문제점이 따른다. 또한 EGFR 표적항암제 획득내성 폐암 환자의 경우 T790M 내성 유전자 검사를 위해 여러 번의 재조직 검사를 시행하거나, 어렵게 재조직 검사를 시행하더라도 정확한 검사 결과를 얻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환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건국대병원 호흡기내과 이계영 교수는 기관지폐포세척액을 활용한 액상생검법을 개발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는 기관지폐포세척액에서 분리한 나노세포체에서 추출된 DNA를 이용한 유전자 검사법으로, 상대적인 비침습적 방법으로 폐암 EGFR 유전자 변이를 검출할 수 있다. 기존 액상생검법의 낮은 민감도를 보완할 수 있어 더욱 기대를 모으는 검사법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폐암 조기진단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관지폐포세척액에 존재하는 암세포에서 유리된 나노소포체 안에 DNA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한 EGFR 유전자 검사는 조직에서 보다 높은 민감도를 가지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유전자 검사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해당 기술은 혈액, 흉수, 뇌척수액 등 다른 체액의 액상생검에도 바로 적용될 수 있다. 다만 혈액은 가장 이상적인 샘플이기는 하지만 아직 그 민감도가 기대만큼 높지 않아, 이 교수는 그 해결책을 찾는 연구를 지속하는 한편, 나노소포체의 RNA와 단백질을 이용한 정밀의료 진단법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DNA부터 RNA, 단백질 분석에 이르는 총체적 정밀의학 진단이 가능해지리라는 전망이다.

 

연구실 넘은 임상적용…“진정한 의료 성과”

기관지폐포세척액을 활용한 액상생검법은 건국대병원 폐암센터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세계 최초 기술이다. 이계영 교수는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식약청 허가를 취득하여 두 건의 혁신적 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국내의 경우 평균 2주, 미국에서 3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EGFR 검사 결과를 건국대학교병원 폐암센터에서는 단 2일 안에 얻을 수 있다. 나아가 95% 이상의 정확도를 보이며 환자들로부터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으며, 임상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SCI급 학술지에 투고하면서 신의료기술 승인을 받기 위한 학술적 근거를 수립 중에 있다.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며 학술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교수는 그간의 임상 경험과 폐암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건국대학교 정밀의학폐암클리닉을 개소, 이곳의 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폐암 진단 검사법을 개발하기까지 건국대병원의 과감한 지원이 있었음을 전했다. 실제로 액상병리검사실(Liquid Biopsy Lab)을 만들고, PhD인 허재영 생물학박사를 영입하는 것은 물론 수억 원을 투자해 장비를 갖추는 등 폐암 정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각 진료과의 폐암 전문가가 한데 모여 있다는 점 역시 건국대병원이 환자들에게 물 샐 틈 없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다. 다학제간 진료를 통해 방사선 치료 후 수술을 할지, 항암치료 후 수술을 할지 다각도로 논의하는 만큼 의료진에 대한 환자들의 신뢰도가 상당하다.

의료계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정밀의학의 발전을 위해서 이 교수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중개연구’다. 임상 의사들에게는 환자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임상자료들을 바탕으로 하는 아이디어가 있고, 기초연구자들에게는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실험기술이 있는 만큼 이 둘을 연결할 수 있는 중개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임상교수로서는 이례적으로 미국 스탠포드 의과대학에서 2년간 Post-doc 과정을 밟은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환자들의 발병원인에 대한 근본적 물음은 그를 분자생물학 실험실로 이끌었다. 세포 배양에서부터 분자생물학적 실험 기법 등 당시 쌓은 경험은 이 교수가 기관지폐포세척액을 활용한 액상생검법이라는 새로운 진단법을 개발하는데 든든한 기초가 되어줬다.

“당시만 해도 암에 대한 연구는 암세포가 왜 증식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고, 기존의 시각과는 반대로 ‘암세포들이 왜 사멸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을 떠올렸죠. 제 연구의 힘은 남이 걷지 않은 길을 걷는데서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연구자들이 모방하거나 따라하는 연구들이 많은데, 이는 지양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에 대한 원천적인 의문점(fundamental questions)을 풀어보려는 연구자적 의지가 가장 중요한 학자의 덕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대륙 발견에 2등은 없다. 오직 첫 번째 발견만이 의미를 더할 뿐이다. 이 교수가 이루어낸 발상의 전환은 세상에 없던 진단법을 개발, 정밀의학의 지도 위에 새겨 넣는데 이르렀다. 암 세포 속 나노소포체에서 암세포와 관련한 정보를 찾아내고, 나아가 임상 적용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는 향후 학술적으로는 물론, 조기 폐암 진단법으로까지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실험실 연구에서 그치지 않고 환자에게 도달해 사회적, 경제적, 의료적 가치를 인정받는 연구일 때, 진정한 학문적 성과라 칭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다.

 

비흡연 여성 폐암에 대한 인식 제고에 총력

왕성한 연구와 더불어 대한폐암학회 이사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계영 교수의 행보는 실천적 의료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교수로서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많은 전문가들과 교류하는 데 있다고 말하는 그다.

그는 의사, 환자 및 보호자, 제약회사, 정부가 관여하는 4자 구도에 있어 학술적 기반은 물론 환자나 보호자에게 양질의 새로운 치료법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학회차원에서 다각도의 노력을 펼칠 것을 다짐했다. 관련된 유전자가 많고, 그에 따른 표적항암제 및 면역항암제가 가장 잘 발달되어있는 폐암이 정밀의학분야의 학술적 발전을 주도하고 있기에 학회의 역할을 강조한 이 교수. 폐암국제학술대회 개최는 그가 대한폐암학회 이사장으로서 내세우는 첫 번째 약속이다. 이 교수는 올해부터 매년 가을 추계학술대회를 국제대회로 격상시키고자 한다며 성공적 개최를 위한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밝혔다. 이는 EGFR 돌연변이가 많고, 비흡연 여성 폐암환자나 인구 자체가 많은 아시아권의 특성이 학술적으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해석에서다. 그는 제약산업 측면에서의 약물개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진단 분야에서도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학술적 기반은 물론, 흡연에 집중된 프레임을 옮겨 비흡연 여성 폐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실질적으로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실태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그의 두 번째 약속이다. 그는 서양의 폐암 역학 자료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국내 폐암환자들의 특성을 EGFR, ALK 등 주요 유전자 자료들을 망라하면서 학술적 인용 가치가 높은 국내 폐암에 대한 실태보고서를 연례적으로 발표하여 폐암에 대한 국가보건 정책 수립에 대한 기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교수는 사회적으로도 비흡연 여성 폐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조기진단을 이끌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는데 무게를 싣고 있다. 현재까지 폐암은 흡연자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 폐암 환자의 경우 30%가 여성 비흡연자인데다 폐암 환자들에게 별다른 자각 증상이 없어 진단을 했을 때는 이미 4기에 이르러 사망률이 높다. 폐암 정복의 길은 조기 진단에 있지만 흡연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비흡연 폐암 환자를 진단하기 위한 검진 가이드라인이 없고 조기 진단에서 소외된 상황에서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 교수는 대한폐암학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빅테이터를 이용해 비흡연 여성 폐암 발생 위험인자에 대해 분석한 결과, 흡연과는 별개로 고연령, 음주, 운동부족, 육식위주의 식생활, 낮은 체질량지수, 기존 암 보유 여부 등이 여성 폐암 발생 위험요인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에 그는 폐암을 예방해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흡연뿐만 아니라, 흡연 외의 생활 습관이나 환경등의 위험인자를 파악하고 개선의 노력을 병행해야 함을 언급했다. 현재 20%의 조기폐암 진단율을 50%까지는 증가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현재로서는 저선량 CT를 통해 폐암 조기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성 혹은 비흡연자라도 40세 이상의 생애전환기 검진 때 저선량 CT 검사를 받아보는 것을 권고하고 싶다고 전했다.

 

환자에게 따뜻한 온기 건네는 것은 의사의 역할

ⓒ이계영 건국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곧고 바른 심지와 기본에 충실하려는 진정성을 가진다. 그것을 흔히 초심(初心)이라 한다. 그러기에 세월이 흘러 그것이 퇴색되면 다시 그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초심이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기반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의학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내과, 그 가운데서도 호흡기내과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이계영 교수는 자신이 이 길을 택한 이유에 대해 ‘어려운 학문이었기 때문’이라 답한다. 연구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그를 호흡기내과라는 길로 이끈 셈이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 속에서 원하는 답을 찾았을 때 느끼는 쾌감은 그가 끊임없이 연구에 빠져들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현장에서 환자들을 만나는 임상교수인 만큼 환자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 역시 그의 연구를 지탱하는 힘이다. 특히 폐암은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난치암인 만큼 자신을 찾은 환자 중 적지 않은 이들의 죽음을 바라봐온 그다. 이 교수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비흡연 여성 환자들이 4기 폐암으로 진단될 때면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정밀의학을 토대로 한 비흡연 여성 폐암 조기 진단법 개발은 의사로서의 사명감이라 전했다.

“의사는 전문적 식견을 토대로 병을 낫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에 대한 마음입니다. 어려운 병일수록 따뜻한 말 한마디로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죠. 저는 물론 동료 의사들이 의사 본연의 자세, 곧 인간적이고도 따뜻한 인성의 중요성을 늘 되새겼으면 합니다.”

끝으로 이 교수는 임상교수들의 풍부한 경험을 학술적 이론으로 정립시켜 더 많은 환자들에게 의료적 혜택을 제공해야 함을 다시금 강조했다. 나아가 생물학, 물리, 화학, 공학, 통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소통을 통한 융합연구로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전한다. 그는 이미 의학계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외연을 넓힌다면 보다 혁신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덧붙였다.

의료현장과 연구, 동시대 연구자들과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이 교수의 실천적 의료는 쉼 없는 확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정년 이후에도 후학들과 함께 학문의 지평을 넓혀가겠다는 그의 다짐에서 연구에 대한 애착과 환자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환자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 교수의 모습을 통해 ‘명의’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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