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내구성 검사’ 기술, 국제표준화 중심에 서다
국내 ‘내구성 검사’ 기술, 국제표준화 중심에 서다
  • 김민이 기자
  • 승인 2018.04.1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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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일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

‘개척(開拓)’의 사전적 의미는 ‘거친 땅을 일구어 논이나 밭과 같이 쓸모 있는 땅으로 만듦’이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분야를 처음 걷는 사람을 ‘개척자’라 칭한다. 험난한 길을 다듬어 고르는 과정은 고통과 역경이지만, 권동일 교수에게는 즐겁고 가슴 한쪽이 뿌듯해지는 일이다.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모방했던 추격형 연구개발을 뒤로 하고 선도형 연구개발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그는 측정기술의 선구자임을 증명했다. “선도형 연구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를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방향을 설정하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까지 새로 도출해야 하죠. 창의성 발현과 절박함이야말로 연구자로서 자존감을 갖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ASME 기술규격 공식 등재...국내 원자력기술의 우수성 입증

지난 3월 국내 연구팀이 개발한 잔류응력(Residual Stress) 기반 후열처리 면제 평가 기술이 원자력발전소 설계 및 운영의 기준으로 적용되는 규격 중 하나인 미국기계학회(American Society of Mechanical Engineers; ASME) 기술규격으로 출판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주인공은 권동일 교수, 김종형 연구원 연구팀과 세종대학교 김종성 교수 연구팀이다.

연구팀은 국내에서 개발된 계장화압입시험법(Instrumented Indentation Technique; IIT)을 활용한 잔류응력 평가기법을 기반으로 원자력발전소의 압력용기에 대한 후열처리(Post Weld Heat Treatment; PWHT) 면제를 판단해 줄 수 있는 허용기준을 제안했다. 이들은 잔류응력을 없애기 위해 용접 후 다시 낮은 온도의 열을 가해 한쪽에 치우친 열에너지를 분산시키는 PWHT를 진행하지만, 용접절차 상에서 상당한 비용 및 시간이 소요되고 있으며, 철강 제조기술의 발달에 따라 불필요한 PWHT는 면제해주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에 주목했다.

제정된 기술은 지난 2013년부터 ASME BPV Committee 하부에 있는 ASME 한국국제실무회의(Korea International Working Group; KIWG)에서 단계적으로 검토 되었다. 이후 권 교수와 김 연구원은 해당 기술의 우수성과 정확한 데이터를 거듭 알렸다. 하지만 잔류응력은 전 세계적으로 표준이 없기에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5년간 꾸준하게 이어진 권 교수와 김 연구원의 표준화에 대한 집념은 최종적으로 ASME BPV 코드(Boiler & Pressure Vessel Code)에 코드케이스(Code Case)로 제안되어 지난해 12월 Code Case N-881로 승인 받았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원자력 규격분야에서 국내에서 개발된 측정기술을 기반으로 한 Code Case가 승인된 것은 국내 원자력기술의 우수성을 알린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는 게 권 교수의 설명이다.

“출판된 코드 케이스에 포함된 계장화압입시험법을 활용한 잔류응력 평가기법은 2008년 ISO 국제표준에서 금속의 기계적 특성 평가기법으로 제정된 이후, 국내에서 개발된 측정기술 중에서는 최초로 ASME BPV 코드에 포함되면서 다시 한 번 연구의 우수성을 입증 받았습니다. 또한 현장 잔류응력 평가기법이 부재했던 ASME BPV 코드에 세계 최초로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죠. 11년 이상 지속하면서 쌓은 표준화 노하우를 후학 및 국내 연구자들과 공유함으로써 국가 경쟁력 제고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보일러 폭발사고 등에 따른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1911년 처음으로 제정된 ASME BPV Code는 보일러 및 압력용기에 관한 규격 및 표준을 다루면서 ASME 인증 제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이는 국내의 전력산업기술기준(KEPIC Code)을 추진할 때 주요하게 참고했던 대표 기술기준 중 하나로, 현재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췄다.

권 교수는 “Code는 일반적으로 법, 법규, 규정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강제요건의 성격을 띤다는 있다는 점에서 임의요건 성격의 표준(Standard)과는 차이를 보인다”며 “즉 집단에 대한 특허 개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ASME 규격 등재를 발판삼아 산업 설비의 안전성·신뢰성 평가로 활용되면 국가 산업 경쟁력 확보 및 기술적 선도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했다. 원자력 분야의 기술표준은 다른 산업계의 표준이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원전은 100만개 이상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극한 환경에 놓여 있는 기계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이미 미국의 가스 파이프라인과 국내 석유화학 공장의 안전 검사에 새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고 밝히며, 기술표준 인증을 계기로 지진 건전성 평가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압력용기에 후열처리를 할 만큼 잔류응력이 없다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한다면 시간과 공정비용을 감소시키는 것은 물론 원전 안전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프론틱스와 NanoIs 통해 진보된 기술의 신뢰성 확보

권동일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서랍속 기술’에 머무르는 것을 경계한다. 성공적인 상용화를 꿈꿨던 그는 제자와 함께 2000년 9월 재료물성평가장비 전문기업인 ㈜프론틱스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서울대학교 신소재공동연구소 내의 국가지정 연구실인 마이크로 신뢰성 연구실을 모태로 설립된 ㈜프론틱스는 소재, 부품, 시스템에서 나아가 산업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의 신뢰성 확보와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자동화 압입시험기를 개발했다.

그가 재료물성평가장비 분야에서 잔류응력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자력발전소에서 핵심부품인 압력용기의 건전성은 방사성 물질이 환경에 방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직결되며, 압력용기의 손상은 방사능 유출로 귀결되기에 어느 부품보다 검사 기준이 까다롭다. 이러한 압력용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용접이 필수적인데, 섭씨 1000도 이상의 열이 가해지는 용접 부위는 다른 곳과 팽창률이 달라 형태를 변형시키는 잔류응력이 발생한다. 이러한 용접 잔류응력은 균열의 발생을 유발시키기 때문에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주요한 이슈로 지적할 정도로 원자력발전소 내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하는 잠재적 위험요소이며, 이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응력과 기계적 물성을 현장에서 측정하는 선진화된 압입 기술을 개발하여 구조물의 신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프론틱스의 설립 목표다.

이곳에서 보유한 핵심 기술인 계장화압입시험법은 뾰족한 압입자를 활용하여 소재에 하중을 인가하고 연속적으로 하중-변위를 측정함으로써 소재의 물성을 평가한다. 잔류응력을 평가할 때는 높이가 30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인 사각뿔 형태로 가장 단단한 물질인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미세한 탐침을 용접 부위에 눌러 응력을 계산하게 된다. 검사는 탐침으로 용접 부위를 눌러 100~150㎛ 깊이의 자국을 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용접 부위에 자국을 낼 때, 들어간 힘이 정상 상태의 재질에 자국을 낼 때보다 크거나 작음에 따라 균열의 발생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는 응력의 크기를 평가한다.

“IIT를 이용한 AIS Series는 기존의 파괴적인 측정 장비 평가 방법과는 다르게 비파괴적으로 현장에서 직접 측정하는 방법이며, 운영 중인 산업 설비의 기계적 물성을 평가하면서 신뢰성에 대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공합니다.”

해당 기술은 전통적인 경도시험을 창의적으로 개량함으로써 경도뿐만 아니라 잔류응력, 강도, 탄성계수 등의 다양한 물성평가를 가능케 한다. 권 교수의 말에 따르면 평가를 담당하는 실무진들이 다양한 평가 항목의 구성을 요구하기에 ㈜프론틱스는 잔류응력, 경도, 인장물성 이외에도 다양한 분석 항목을 추가하는 등 끊임없는 압입기술 개발에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프론틱스의 제품군은 7년 전 미국에 상륙한 이후, 가스 파이프라인의 안전 검사에 활용되고 있으며 사업영역을 넓히기 위한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 이외에도 중국, 일본 등의 아시아 지역과 유럽에서도 수요가 발생하여 납품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현장용 기계에서 발전시켜 나노 압입시험기를 개발, 나노인덴터(Nano Indenter) 장비 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높은 정밀도를 기반으로 한 Nano Stress Mapper와 혁신적인 측정 원리를 바탕으로 둔 사용자 친화적인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기 위해 벤처회사인 NanoIs를 설립한 것이다. Nano Stress Mapper는 포인트 마다 얻은 데이터를 통해 강도와 잔류응력의 지도 제작이 가능하다. 해당 장비는 미국재료학회(Materials Research Society: MRS)에 두 차례 소개된 바 있으며, 권 교수는 금번 11월 보스턴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차별화된 알고리즘과 장비를 소개할 수 있는 세 번째 기회에 기대감을 갖고 있다.

“전문성을 가지고 ‘공유가치’에 다가갈 것”

“그동안 우리 산업의 혁신적인 변화를 주도한 기술인재들은 국가경제 성장에 첨병 역할을 해오면서 산업의 성장을 견인해왔습니다. 더불어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짊어지고 갈 주체로서 다시금 이들의 창의성과 혁신성이 강조되고 있죠. 제가 벤처를 설립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곳을 이끌어 갈 주체인 ‘인력’이 연구와 사업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미래 국가경쟁력은 과학기술혁신이기 때문에 공학자에게는 다양한 자질이 요구된다. 그 중 차가운 이성으로 세상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철학자, 뜨거운 감성으로 창조적 아이디어를 표출하는 예술가의 자질을 갖추면 과학자가 될 수 있고, 여기에 냉철한 기업가 정신을 더하면 비로소 공학자가 될 수 있다. 권동일 교수는 여기에 두 가지를 더 추가해 인력을 양성 중이다. 바로 ‘절박함’과 ‘공유가치’이다.

“매 순간 주저앉지 않으려면 걷는 수밖에 없습니다. 절박함은 곧 현재의 순간을 진정성 있게 대하는 힘입니다. 저희 연구실은 SW를 개발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답’을 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곤 하죠. 이때 벼랑 끝까지 강하게 밀어붙입니다. 힘든 시간이지만, 이 과정들이 켜켜이 쌓이고 나니 연구실을 거친 이들에게 한 가지 단어가 따라붙게 되었습니다. 바로 ‘Speciality’입니다.”

제자 및 직원들과 함께 벼랑 끝에 선 권 교수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그는 기술에 대한 강한 확신과 ‘공유가치’를 내세우며 이들을 독려했다. 결국, 국제 기술규격으로 공식 등재가 되면서 이제야 긴장감을 풀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을 자신의 공으로만 돌리지 않고, 더 큰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한 제자들과 직원들을 바라본다. 대학과 벤처, 관에서 다양한 일을 수행하면서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생겼다고 전한 권 교수. 그는 ‘공유가치’로 인력을 양성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익적인 회사로 발돋움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권 교수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는 핫한 분야는 아니라고 소개한다. 전자 쪽이 아닌 기계소재, 구조소재이기에 소위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보장하는 기술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기술이라는 것은 시류에 힘입어 언제든지 활성화될 수 있기에 권 교수는 ‘다양성’을 언급했다. 우리의 과학기술도 효용성을 생각할 시기라며, 연구비에 대한 방향성을 국가 전략에 따라 큰 그림으로 소신 있게 그릴 수 있는 시각을 주문한 그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수 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말의 씨앗에 책임감을 가질 터. 인터뷰 마지막, 권 교수는 묵직한 말의 씨앗을 뿌렸다. 그의 말이 어떤 미래로 뿌리내릴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미국회사를 보면 우리 기계를 사는 큰 회사들이 있습니다. 좀 더 세밀히 살펴보면 안전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점검을 직접 하지 않고, 타 회사에 맡기는 형태입니다. 이곳에 저희의 미래가 있습니다. 차별화된 장비와 함께 우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토털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발돋움할 계획입니다. 신뢰성과 건전성을 측정하고 물성 측정뿐 아니라 판단까지 담당함으로써 수명을 평가할 수 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관심을 가지고 영역을 확대할 방침입니다. 더불어 우수한 인력들이 저희의 뜻에 함께 동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회사로 거듭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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