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Now] 5·18민주화운동 41주년, 진실에 한 발짝
[MonthlyNow] 5·18민주화운동 41주년, 진실에 한 발짝
  • 박성래 기자
  • 승인 2021.05.18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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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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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5, 신군부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5.18민주화운동이 41주년을 맞이했다. 광주에서 특히 5월은 잊지 못할 역사의 슬픔을 갖고 있으면서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일들이 많이 남아 최근 진상규명이 시작됐다. 행방불명자와 암매장, 헬기사격 등의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광주의 진실과 정신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힘을 쏟고 있지만, 언제쯤 해결될까. 앞으로 대한민국 미래의 주역인 2030청년세대들에게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배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주주의의 첫발 내디뎌

5.18 민주화 운동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을 말한다. 518일 광주지역의 학생시위로부터 출발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신군부는 계엄군과 공수부대를 보내 진압하기 시작했다. 탱크로 무장한 계엄군의 대대적 진압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한국 현대사 가운데 집권 세력에 대항한 민주화 항쟁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이는 이후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역사적 관점은 다양할 순 있지만 유독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선 왜곡된 시선이 잇따르고 있다. 아직도 당시 최초 발포명령자, 민간인 학살 등 진상규명은 더디기만 하고 은폐, 탄압, 왜곡, 조작 등 의혹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5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광주 현장에선 최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생생했던 현장의 모습들이 복원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41년간 의혹으로만 존재하거나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5·18 민주화운동의 아픈 진실의 윤곽이 드러나는 모양새다. 아픔은 오버랩되지만 광주시민의 애절한 호소와 목숨을 건 항쟁만이 승리의 역사로 이끌게 됐다.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은 5월 항쟁 당시 주로 광주 외곽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군은 광주 봉쇄 작전을 위해 외곽지역 길목을 차단하고 있었고 지나가는 차량과 민간인들에게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했다. 대표적인 장소는 광주 교도소 일대다. 당시 이곳을 지키고 있던 3공수여단은 광주-순천 간 고속도로와 광주-담양 간 국도를 지나는 차량과 민간인에 대해 사격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억측에 가까운 해석과 근거 없는 주장으로 수많은 루머가 양산됐다. 오염된 5·18 정보가 무방비로 전파되면서 왜곡된 진실이 재생산돼 문제의 심각성도 커졌다.

 

 

진실 규명을 위한 첫걸음 '조사위'

그러던 중 5·18민주화운동특별법에 따라 올해부터는 5·18 왜곡 시도를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5·18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는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 가는 중이다. 조사위에 따르면 신군부의 명령으로 광주에 투입돼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고 곤봉을 휘둘렀다고 계엄군 일부가 양심 고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이미 200명을 넘어섰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가 불혹을 넘긴 긴 세월의 침묵을 깨뜨렸다.

조사위는 최근 광주 교도소 일대를 지키고 있던 당시 3공수여단이 감시탑과 건물 옥상에 M60 기관총을 설치했으며, 저격용으로 사용되는 M1 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해 시민들을 살상했다는 새로운 진술을 확보했다.

게다가 신혼부부를 태우고 교도소 옆 고속도로를 지나가던 차량도 저격해 사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같은 증언을 포함해 관련 문헌을 종합하면 차량 피격 사건은 최소 13차례 이상으로 파악된다.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 중 실종된 것은 최소 41구로 조사위는 현재 파악 중이다.

주남마을과 지원동 일대에서도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진 가운데 미니버스 총격과 구급차(앰뷸런스) 총격 사건 외 증언도 확보했다. 다른 승합차와 앰뷸런스 등 최소 5대의 차량을 피격했다는 것이다. 익히 알려진 이른바 미니버스 총격 사건은 총격으로 크게 다쳤던 남성 2명이 총살된 후 인근 야산에 암매장됐다가 주민 신고로 뒤늦게 시신이 수습된 사건을 말한다. 특히 암매장한 시신 처리와 관련해 5월 항쟁이 끝난 이후 제11공수여단 4개 팀이 광주에 다시 내려와 사체 수습에 참여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조사위는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서도 진위를 파악 중이다. 자신이 북한 특수군으로 직접 광주에 침투했다고 최초 발언했던 북한군 출신 탈북민 정명훈 씨는 805월 당시 평양에 있었고 광주에 오지 않았다는 등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한 것이다.

진상규명위 조사를 통해 다양한 진술이 확보되면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집단 발포는 사실상 진실로 드러난 셈이다. 조사위가 마지막까지 해결해야 할 남은 과제는 발포명령자 규명이다. 그날의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함께 기억해 화합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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