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역사를 돌아보며,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그리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역사를 돌아보며,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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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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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본부장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 본부장

현대자동차그룹은 한국을 참 많이도 닮았다. 빨리빨리에 다혈질이다. 안티도 많지만 아끼는 고객이 더 많아 이 까칠한 국내시장의 시장점유율이 70%를 훨씬 넘는다. 욕을 먹어도, 칭찬을 받아도 티를 내지 않는다. 넘어졌다가 일어나기도 참 자주 한다. 전반적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해온 역사를 지녔다. 필자가 자동차 애널리스트로 20년이 넘게 바라본 현대의 솔직한 모습이다.

 

유례없이 빠른 성장 가도를 달려온 현대자동차그룹

자동차의 불모지였던 한국, 1967년 말 정주영 창업주는 당시로선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며 현대자동차를 설립했다. 한국인의 힘으로 순수 국산 모델을 만들겠다는 꿈. 그렇게 첫 고유모델인 포니를 기적적으로 성공시킨 현대자동차는 정말 빠른 시간 동안 다양한 차종으로 라인업을 확장했으며,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초창기부터 수출에 주력했을 뿐 아니라 1991년 후발주자에겐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자체엔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1999년에는 IMF 파고를 넘지 못한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글로벌 대형사로서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후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을 겪은 후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자동차를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시키면서 본격적인 사세 확장에 나섰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플랫폼 통합을 이뤄내면서 수익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고, 인도, 중국, 미국, 유럽, 러시아, 남미 등에 해외생산기지를 건설하며 규모의 경제는 물론 글로벌화에 성공했다. 또한, ‘쇳물부터 자동차까지의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을 이뤄냈으며, 성장 피로감에 따른 위험을 감지하고 품질경영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때마다 대형사 몇 개만 살아남고 도태될 것이란 예측들이 등장했지만, 현대차그룹은 특유의 역발상으로 위기 때마다 공격적으로 투자를 진행해 경쟁사에 비해 안정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며 차별화되는 독특한 성장전략을 구사해왔다. 세계 1등 회사의 판매량이 천만대 수준이었기에 생산캐파 기준 1,000만대 달성을 위해 세계 곳곳에 생산기지를 쉴 새 없이 건설했다. 정주영 창업주가 창업과 국산화 성공이라는 업적을 남겼다면, 정몽구 명예회장은 품질과 수익성 면에서 큰 도약을 이뤘고, 규모의 경제와 글로벌화를 성공시켰다.

 

현대자동차그룹에 닥친 암흑기

일명 차화정(자동차·화학·석유)’ 시기라 일컫던 황금기, 20128.4조 원의 영업이익(영업이익률 10%)을 피크로 내리막을 걷던 현대자동차는 2020년 급기야 2.4조 원(영업이익률 2.3%)의 영업이익까지 속절없이 추락했다. 파격적이었던 이전 모델에 비해 진부한 디자인과 개선 없는 파워트레인, 계속되는 품질문제 등으로 출시부터 걱정이 되던 신차들이 이 기간 역성장의 단초가 되었다. 통상 5년 주기로 디자인 철학과 파워트레인 변경, 샤시구조의 변경, 신기술의 접목, 프로덕트 믹스 전략 등이 반영되는 신차 전략은 자동차 회사의 경쟁력에 있어 핵심요인이다. 하지만 2013년 싼타페DM부터 시작된 5년간의 신차 싸이클은 상기 이유로 출시초기부터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될 것임이 예고됐다. 유가하락으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SUV 위주로 재편됐으나 세단 위주로 신차가 구성되었기에 힘든 승부를 해야 했으며, 2017년엔 사드(THAAD) 문제로 중국 시장에서는 1/3로 판매가 감소했고, 소비자의 외면으로 인한 판매 부진은 인센티브와 무이자할부 같은 단기 처방으로 버텨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강점을 보유하고 있었던 신흥국의 경기침체로 차 판매가 감소했고, 일부 엔진 문제로 천문학적인 리콜비용마저 감당해야 했다. 판매와 실적이 하락세에 있는 동안 정몽구 명예회장의 건강 악화까지 겹치며 의사결정의 공백 상태가 오래 유지되었다. 2012년 테슬라가 모델S를 출시하며 전기차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많은 신생 자동차업체들이 친환경차와 자율주행 기술로 속속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지만, 현대차그룹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디디는 데 주저하고 있었다. 중요한 의사결정 없이 어둡고 답답한 시기가 계속해서 흘러갔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미래를 바꿀 정의선 회장의 등장,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고, 정몽구 명예회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의선 회장이 등장했다. 현대차그룹은 정주영 창업주 때부터 오너가 강력한 의사결정권을 갖는 오너 경영의 색채가 강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극복되어야 할 한계지만, 정몽구 명예회장의 건강 악화로 인한 경영 공백기에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당시 정의선 부회장도 회사 내 입지가 탄탄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2018년 시도했던 지배구조 개편도 주주들의 반대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던 터다. 어수선하던 그룹 분위기에서 정의선 부회장은 미래를 향한 용단을 내렸다. 수석부회장을 거쳐 회장으로 빠르게 포지션을 옮기며 그룹에 일대 변화를 주도했다. 새로운 활력에 필요한 인재들로 교체하는 인사 조치를 단행했고, ‘만들기만 하면 어떻게든 판다는 저돌적인 경영방식으로 인해 많은 폐해가 있던 터라 수익성 위주로 전략을 변경했을 뿐 아니라, SUV 위주의 제품 포트폴리오 교체, 제네시스를 통한 럭셔리 전략, 혁신적 디자인으로의 교체, 지역별 특화모델 출시, 동남아 시장 진출, 중국 시장 재정비 등으로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되찾아오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제품군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현대·기아의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의 개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성기 현대차그룹의 분기 영업이익이 2.4조에 달했지만, 분기 적자 상태까지도 하락해 우려가 컸었다. 이제는 다시 분기 2조 이상의 영업이익으로 개선이 예고되고 있다. 겨우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가 2035년 내연기관 판매금지를 선언하고 있기에 얼마 남지 않은 내연기관의 시대에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들로 돈을 벌고, 이 돈으로 미래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또 무엇보다도 전략기술본부를 만들어 미래 현대차그룹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렸다. 미래의 현대차그룹 역량을 자동차 50%, UAM 30%, 로보틱스 20%의 포트폴리오로 나누어 펼치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어찌 보면 불투명한 미래에 오너가 직접 나서 뚜렷한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이를 위해 결핍된 부분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M&A도 병행했다. 자동차의 새로운 변화인 C.A.S.E(Connectivity, Autonomous, Shared economy, Electrification)에 발맞추기 위해서 국내외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도 과감히 진행했다. 특히 배터리와 스마트기술 등에서 국내 대기업과 손을 잡으며 한국형 어벤저스를 결성한 것은 그동안 모든 것을 내재화 해왔던 현대차그룹의 고집에 비추어 본다면 매우 파격적 변화다. 방향이 결정된 만큼 현대차그룹 특유의 속도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

자동차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한 경쟁 환경에 놓여있다. 친환경과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테크 기반의 신생사들이 대거 진입하고 있고, 심지어는 애플과 소니 등 업체로부터 자동차의 위탁생산(ODM) 요구도 크다. 오랜 기간 시장을 나눠서 공생해왔던 자동차업체들의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시기인 것이다. 자동차는 새로운 첨단기술과 신개념의 서비스가 접목되며 모빌리티라는 더 큰 영역으로 확대를 앞두고 있다. 이미 자동차만으로도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산업인데, 모빌리티로 확산되면 그 규모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다른 자동차 생산업체들과 많은 부품사들이 생존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맏형인 현대차그룹의 역할이 크다. 지금의 변혁기를 현대 특유의 속도와 뚝심에 더해 예전엔 없었던 협업과 상생, Open Innovation을 통해 더 큰 도약의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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