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바쳐 식물면역학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식물의학자
평생을 바쳐 식물면역학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식물의학자
  • 남윤실 기자
  • 승인 2018.07.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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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무수히 많은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 마이코프라스마(mycoplasma) 등 식물병원 미생물의 공격을 받는다. 이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진화적으로 발달된 것이 바로 식물 체내의 선천적 면역체계(innate immune system)이다. 황병국 교수는 식물생명과학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식물-병원체 공진화(coevolution)’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친 국제적 식물의학자다.

고려대학교 생명공학부 황병국 명예교수
고려대학교 생명공학부 황병국 명예교수

 

식물면역 연구의 이론적 토대 되는 고추면역 관련 유전자 규명

식물-병원체 공진화(coevolution) 연구는 병원체가 어떻게 식물을 인식(recognition)하여 병을 일으키고 식물은 병원체를 인식하여 면역(방어)시스템을 작동하는가를 탐색하는 것이다. 고려대학교 생명공학부 황병국 명예교수는 식물의 건강과 식물면역학에 대한 생명공학적 연구를 40여 년 이상 이끌어오고 있는 과학자이다. 그는 1970년대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석사과정과 농촌진흥청에 근무하면서 도열병에 강한 다수확 병저항성 통일계 벼 품종의 개발에 참여하면서 연구를 시작한다. 이후 독일 Goettingen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유럽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흰가루병에 대한 보리의 면역성에 대해 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한 연구를 하게 된다. 1981년부터는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고추 세균성점무늬병(Xanthomonas campestris pv. vesicatoria)과 역병(Phytophthora capsici)에 대한 고추의 면역성 연구를 유전학적, 생화학적, 분자세포생물학적으로 수행해왔다. 현재까지 그가 분석한 고추의 식물면역(방어)관련 유전자만 60여 개에 달하며, 이는 식물 분야 최고 학술지로 손꼽히는 Plant Cell, Plant Physiology, Plant Journal, New Phytologist 등의 국제학술지에 219편의 논문을 게재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특허출원 56, 기술이전 4건을 실행하는 등 왕성한 연구를 이어온 그다.

황 교수의 연구 중에서도 특히 주목받았던 것은 고추 세균성점무늬병균의 병원성 인자(effector AvrBsT)를 인식하는 고추 면역 관련 유전자인 CaLRR1, CaPR4b, CaPR10, CaADC1, CaALDH1, CaHSP70a, CaSGT1를 세계 최초로 분리하는데 성공하며 식물세포사멸과 면역성에서의 역할을 규명한 연구다. 식물면역체계에서 병원체의 병원성인자가 식물의 면역관련단백질과의 인식과정을 거치고, 상호작용을 통해 식물 내 과민성 세포사멸(cell death)과 방어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병원체의 침입과 감염을 저지함으로서 보호된다는 획기적 식물-병원체 인식현상의 분자적 기작(mechanism)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고추 등 작물의 면역시스템을 최초로 밝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현재 전 세계의 식물면역학 연구가들이 이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황 교수는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세계적 식물면역학자 Roger Beachy, Jeffery Dangl, Jonathan Jones 교수 등과 교류하고 있다.

 

한국의 생명공학적 식물면역학연구와 식물의학발전에 기여

고추는 우리나라에서 쌀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는 농산물이다. 국민 1인당 연간 고추소비량이 2.2kg에 달할 정도로 세계에서 고추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비타민 A, 비타민 C가 다량 함유되어 있는 것은 물론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주성분인 켑사이신이 항암효과 등 여러 약리작용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 가치가 재평가되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고추 경작지에서 담배모자익바이러스(TMV), 오이모자익바이러스(CMV), 세균성점무늬병, 탄저병 등이 단독 혹은 복합적으로 발생하여 고추생산에 큰 피해를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식물병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고추 생산을 돕기 위한 고추병 저항성 품종 재배가 화학농약사용을 대체할 중요한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품종을 분자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저항성 유전자원이 필요한데, 황병국 교수가 현재까지 연구한 고추면역 관련 유전자들이 중요한 분자마커이자 유전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 고추면역유전자가 대학의 작물분자유전육종 연구자나 종묘회사의 분자육종가들에게 제공되며 병저항성 형질전환(GMO) 작물의 분자육종에 활용되는 것은 물론 세계 각국의 식물면역 연구자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무공해, 고부가가치의 고추, , 보리 등의 농산물 생산을 저해하는 식물병을 친환경적으로 방제하기 위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생명공학적으로 수행해왔습니다. 저의 평생 연구로 식물병저항성의 유전적, 분자생물학적, 생리생화학적 기작과 병저항성 형질전환작물(GMO) 및 생리활성 농용천연살균제 개발 등을 예로 들 수 있죠.”

황 교수가 집필한 식물의학(植物醫學)’은 식물병리학과 농생명공학분야의 전문서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는 독일의 농학 분야 교육 및 연구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식물의학을 국내에 도입하여 순천대학교, 충북대학교, 안동대학교, 경상대학교의 농생물학과식물의학과로 개명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한 2012년에는 제자 박사 및 교수들과 함께 식물의 건강이라는 전문서를 집필, ‘식물면역학의 지침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해당 저서는 생물학분야는 물론 농학분야에 새로운 연구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4년 한국식물병리학회가 창립할 당시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한국식물병리학회가 국제적 학회로 발돋움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나아가 해당 학회의 부회장, 회장(2003-2005)을 역임하며 학회지 “The Plant Pathology Journal”SCI 등재 학술지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그의 연구업적은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으며 국제학술지 Journal of Phytopathology(2002)Planta(2008)의 편집위원, 한국 식물병리학자로는 최초로 미국식물병리학회(The American Phytopathological Society)의 석학회원(2003)으로 선임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밖에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1999), 우리나라 최고의 학술기관인 대한민국학술원 회원(2005)으로 선출되는 등 국내외적으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왔다.

 

꾸준함과 연구의 즐거움, 꿈을 이루게 한 원동력

저는 어려서부터 과학자이자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꿔왔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저의 꿈을 이루기까지 운도 따라줬지만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황병국 교수의 부친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농지개혁으로 인해 모든 토지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려움 속에서 농촌생활을 영위하게 되었지만 선진국에서 도입된 논 제초제와 제초기를 사용하고 관배수시설을 설치하는 등 선진 농업기술을 농사에 직접 적용하며 마을의 존경을 받았다. 황 교수 역시 이러한 환경 속에서 농촌의 어려움과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며 성장했다. 아버지를 여의고 더욱 어려워진 환경 속에서도 황 교수가 자신의 꿈을 놓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의 교육열 덕분이었다. 교육은 도시에서 받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신념을 따라 황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 도시에서 수학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 공부하였음에도 그는 줄곧 전교 1, 2등을 차지할 만큼 두각을 드러내는 자립적인 학생이기도 했다.

꿈이 있었기에 지치지 않고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실험을 통해 얻는 발견의 기쁨은 저를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만들었죠.”

오랜 기간 꾸준히 연구와 강의에 헌신해온 그의 열정은 교단에 서는 그의 모습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31년 간 고려대학교 학부강의에 정장(正裝) 차림으로 임한 것은 물론 단 한 번도 휴강하지 않고 정시에 시작, 정시에 끝낸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또한 전통적 강의방법을 고수함으로써 원리와 전공용어를 실제 사례와 경험담을 들어 설명하며 수강생들의 학습욕구를 고취하는 점 역시 그의 확고한 교육철학에서 비롯되었다. 황 교수가 학부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면 대학원생들에게는 보다 창의성을 발휘하게하며 연구역량을 강화하는데 집중했다. 박사 논문을 영어로 작성하는 것은 물론 석사 논문에서 2, 박사 논문에서 4편 이상을 SCI급 국제학술지에 게재토록하며 추후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남의 연구를 흉내 내거나 연구비를 좇기보다 저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 연구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고추병과 관련해 주연구자로서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죠.”

황 교수는 젊은 연구자들이 여러 연구 분야를 다루며 논문편수만을 늘리기보다 남이 하지 않은 하나의 과제를 선점하며 자신의 이야기(my own story)'를 써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제자들이 비록 느릴지라도 한 우물만을 파며 높은 수준의 창의적 연구를 하는 연구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는 연구비를 받기 위해 남의 연구 프로젝트에 편승하기보다는 주도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며 교신저자(corresponding author)로서 많은 논문을 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생존하고 즐기며 그 속에서 가치를 찾아라

좋든 싫든 하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즐겁게 하자.’ 황병국 교수가 오랫동안 지켜온 생활신조다. 학부 다닐 때까지 공부하기 싫어했던 농생물학 분야에서 연구하고, 독일어를 알지 못한 채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땄지만 그에게 후회는 없었다. 식물병리학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상상할 수 없으며, 독일에서의 경험은 그가 논리적 사고와 체계적 연구방법을 터득하게 된 소중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생존(survive), 즐거움(enjoy), 가치(value) 세 가지 단어를 늘 되새겼으면 합니다. 먼저 돈을 벌어먹고 살아가야하고,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은 후, 그것에서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품고 사는 거죠. 직장은 바뀔 수 있지만 자신의 직업은 바뀌어선 안 됩니다. 독일에서 공부하며 독일 사람들의 삶에서 얻은 생활철학입니다. 한 분야에 꾸준히 몸담으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면 인류에 기여하게 되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황 교수는 창의적 연구를 지원하는 과학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국가 주도의 성과 지향적 과학정책만으로는 창의적 연구와 연구자가 배출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는 훌륭한 젊은 과학자들이 전국에서 활발히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만큼 특정 분야에 국한된 정책보다는 질적·창의적 연구를 지원할 때 과학의 저변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학문이나 과학은 현재 있는 지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자연에서 발견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과 함께였다.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나 머리 좋은 사람이 반드시 창의적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의문점(question)을 가지고 골몰히 생각하며 직관(intuition)과 영감(inspiration)을 얻고, 이를 토대로 여유를 가지고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이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죠.”

황 교수가 40년에 가까운 시간을 연구와 교육에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진행하는 연구의 가치에 대한 확신과 연구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즐거움 속에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연구자의 모습이 무엇인지 되새겨본다. 현재 그는 정년퇴임을 하였어도 노자(도덕경), 논어, 맹자, 성경 등의 동서양 경서를 읽으며 후학 제자 교수들과 함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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