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과 예술 사이, 구운몽에 투영된 욕심과 비움에 대하여
인간의 욕망과 예술 사이, 구운몽에 투영된 욕심과 비움에 대하여
  • 김윤혜 기자
  • 승인 2019.05.02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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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 작가

어머니가 열 달을 고이 품어 새 생명이 태어났다. 음식을 먹고 숨을 쉬며 사는 것은 똑같지만 삶의 무게는 다르다. 본능적으로 호흡을 하면서도 호흡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산다. 삶의 중심에 서 있는 인간을 말하는 예술.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잊고 사는 현대인에게 예술이 말을 건다. 동양철학에서 모티브를 얻은 권혁 작가는 풍부한 상상력을 더한 개인전 구름이 낯을 가리고전을 개최하면서 바람직한 삶에 대한 의제를 던졌다.

권혁 작가
권혁 작가

 

구운몽이 표현한 깨달음, 현대미술과 조우하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정치사에 위세를 떨친 서포 김만중. 그랬던 서포 김만중에게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치권의 중심에서 멀어지며 유배를 떠났다. 치욕적인 순간 김만중은 어머니를 생각했다. 서포 김만중은 아들의 몰락이 두려웠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고대소설 구운몽을 썼다. 아마도 눈에 보이는 물질과 눈을 가리는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삶에 실망할 것 없고 오히려 꽤 근사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을까. 권혁 작가는 금번 개인전(2019.3.7- 4.20. 연남동 소재 씨알콜렉티브)를 준비하며 꿈과 현실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구운몽을 바탕으로 작품을 풀었다. 대표작품도 구운몽의 한 글귀를 인용해 구름이 낯을 가리고로 명명했다.

구운몽은 꿈과 현실에 대한 작품입니다. 두 가지 구도를 취하고 있죠. 그 안에는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로 양분한 구조에서 주인공 성진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함축적인 표현에 흥미를 느꼈고 본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동양사상의 뿌리를 발견했습니다.”

상상해보자. 영화를 보는데 첫 장면은 하얀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다. 화면이 서서히 아래를 비추면 높이 솟은 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아무리 건물이 높다한들 하늘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점에 불과할 뿐인데 저마다 화려하게 장식하며 높이를 뽐낸다. 욕망과 이상 사이에서 인간은 아등바등하며 삶을 산다. 권 작가는 인간의 욕망은 일장춘몽일 뿐이라는 주제를 담은 구운몽을 작업에 반영했다라고 밝혔다. 최첨단기술로 둘러싸인 현대 사회의 민낯에서 구운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는 구운몽의 첫 장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천하에 이름난 산이 다섯 있으니, 동쪽의 태산, 서쪽의 화산, 가운데의 숭산, 북쪽의 항산, 남쪽의 형산이 그것이니 이를 일컬어 오악이라 한다. 형산의 일흔 두 봉오리 가운데 가장 높은 다섯 봉오리는 항상 구름 속에 묻혀 있어 청명한 날이 아니면 이곳을 볼 수가 없었다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우리의 삶이 환락적이며 꿈같을수록 허망임을 왜 모를까. 모든 걸 다갖는 것과 같은 말은 손에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인생의 진리를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색채를 잘 드러낸 구름이 낯을 가리고는 구운몽처럼 두 세계를 형상화했다. 그는 검은색과 컬러 물감을 캔버스에 흘리고 뿌리며 우연에 기초한 형상을 묘사했다. 드로잉하고 길게 늘어뜨린 실이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구운몽에 등장하는 구름이 얼핏 보이고 인생역경에 빗대는 파도 소리도 들린다

 

 

추상적인 현대미술, 열린 마음으로 바라봐야

권혁 작가가 만들어낸 감각적인 작업은 검은 숨에서 최절 정을 맞이한다. 오직 하나. 검은색 외엔 다른 색을 허락하지 않았다. 물과 검은색 물감을 섞어 자연스럽게 흘리니 그것 또한 숨이 되었다.

우리는 늘 숨을 쉬고 있죠. 숨을 쉬고 있지만 그 형태나 중요성을 전혀 몰라요. 지금 이 순간도 숨을 쉬면서 말이죠. 생명을 결정하는 숨을 형상화할 수 있을까. 숨을 형태로 만들 수 있을까. 제가 작품 검은숨을 기획하면서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었어요.”

풍선에 크게 숨을 불어넣으면 빵빵하게 부푼다. 방금 내가 내쉰 숨만 풍선 안에 가득하다. 온전한 100% 숨이 담긴 풍선을 실로 감아 형태를 만들었다. 풍선을 불 때마다 형태가 제각각이다. 개성 있는 숨에 작업하는 재미가 커졌다. 창조적 호기심. 이래도 괜찮을까. 두려움과 경계가 없는 실험정신이 녹아든 작품이다. 지난 2010년 한 작품에서 처음 숨을 표현했을 때는 형형색색 그라데이션으로 작업했는데 이번에는 구운몽의 철학을 표현하고자 검정에서 점차 회색이 올라가는 형상을 구현했다. 풍선도 예술이 될 수 있다.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파격의 길을 걷는 현대예술은 관람객의 경직된 사고를 뛰어넘는다. 그는 이것이 현대미술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단언한다. 현대미술은 어렵고 난해해서 접근조차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예술보다 유독 현대미술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 신나는 힙합을 듣다가 마음의 안정이 필요해 클래식을 들을 때 지식이 필요한가. 클래식을 그대로 느끼고 음미하는 것으로 예술적 가치가 있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면 그것만으로 예술을 향유한 것이다. 그는 우리는 순수하고 편안하게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지식이나 배경이 없어도 클래식 음악 자체에 귀를 기울이면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그것이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다라며 추상적인 현대예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모범답안은 없다. 관람객이 보면서 상상하고 느끼는 것이 정답이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구운몽을 작품 테마로 삼은 것도 관람객과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구체적으로 표현된 구운몽이 현대미술의 속성인 추상을 만난 것은 관람객에게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이번 개인 전시회로 구운몽의 주제를 감정으로 느끼는 통로를 활짝 열었다. 예술가로 또 한 번의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천생 예술가임이 또 한 번 증명됐다.

 

예술과의 동행

어렸을 때 막연하게 꿈꾸던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그는 큰 축복을 받았다. 권혁 작가는 타고난 예술가다. 초등학생 때 직감적으로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사는 운명임을 알았다. 그는 주어진 운명에 기뻤다. 어린 시절 미술학원을 다니거나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는 미술이 평생의 반려자임을 알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가 크랜브룩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첫 개인전으로 성공적 데뷔를 한 그는 1998년부터 꾸준히 개인전을 개최했다. Intersection(덕원 갤러리, 서울, 1998), Conceal & Reveal(갤러리 사간, 서울, 2002), A sign(갤러리현대 윈도우전, 서울, 2003) Thread(킹스우드로열갤러리, 미시간, 미국, 2004) 등 정기적으로 여러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특히 지난 2016부터 올해까지 매해 개인전을 열며 성숙한 예술가의 지평을 넓혀왔다. 주요 그룹전에도 이름을 올리며 두각을 나타냈는데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전을 시작으로 2008년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을 포함한 미국과 런던, 오스트리아, 상하이 등 국제적으로 전시가 이어졌으며 지난 2014년 대구 미술관의 네오 산수를 시작으로 2015년 서울소마미술관의 무심’, 2017년에는 코리안 아이 특별전 런던의 사치갤러리 등 무려 6개의 그룹전에 참여했고 올해에도 가나아트 부산과 서울시립미술관 등 4개의 그룹전에 작품을 공개했다. 지난 2005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국제교류전 지원작가로 선정된 후 경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에 지원작가로 선정됐으며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견작가작품집지원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제가 20대에 생각했던 예술이 나이가 들면서 달라졌습니다. 30, 40, 50대가 되니 예술에 대한 생각과 깊이가 계속 달라졌어요. 나이를 먹으니 예술이 더 매력적으로 보여요. 흥미가 없었다면 캔버스를 놨을 텐데 샘솟듯이 자꾸 뭔가가 나와서 예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하나가 된 삶을 살면서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미술사에 남는 작가가 되는 것이죠. 모든 작가들의 소망이겠지만요.”

사실 예술계는 냉혹하다. 생전에 작가로 인정받지 못하면 사후에 작품이 재평가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의 바람은 미술사에 이름을 남기는 작가가 되는 것. 주목을 받으며 명성을 떨쳐도 세상을 달리한 후 기억 속에 사라지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 그의 작품만이 이 세상이 남았을 때도 회자되며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평생 그림을 그려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자꾸 나오는 영감에 푹 빠진 그는 분명 영원토록 사람들의 뇌리에 예술가로 남을 것이다. 중년이 된 그를 보면 프랑스에서 태어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조각가인 루이스 부르조아가 떠오른다. 70세 이후에 비로소 예술가의 입지를 다졌고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예술은 나이를 초월한 영역이다. 구운몽을 추상예술로 재해석한 작품은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세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3년 예술가로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영구한 생명력을 얻은 그의 작품관은 인류의 미술사에 족적을 남길 자격을 얻었다. 변혁기가 된 2013. 그는 베네치아로 향했다.

 

베네치아에서 만난 터닝 포인트

이탈리아 베네치아.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 예술가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으는 마력이 있다. 르네상스와 인본주의를 전 세계에 퍼뜨린 이탈리아의 기개와 물 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베네치아는 무한한 감동이었다. 물과 하나된 도시. 권혁 작가는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매일 물을 그렸다. 손으로 그려보고 물감으로 칠해보고. 캔버스에 흐르는 물은 마음과 정신을 맑게 했다. 더 자유롭게 물을 표현할 순 없을까. 물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창의적인 기법은 없을까. 그는 물감을 흘리면서 우연성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에 머물려 수없이 그렸던 물은 그에게 작품의 전환기를 선물했다. 한국적 표현에 가까운 물에 아이디어를 얻어 세계적인 도시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선입견이 없는 외국인들은 그가 보여주는 한국 전통문양에 대해 순수하게 답변했다. 한국 전통문양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외국인들은 새로운 작품 세계로 초대를 받은 셈이다.

샌프란시스코, 상하이, 서울, 런던 등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 전통문양에 대한 설문지를 받았어요. 답변은 설치와 영상물, 오브제 등 예술이라는 옷을 입고 대중 앞에 나섰죠. 보이는 한국 문화에서 보이지 않는 가치가 창출됐고 예술로 승화됐습니다. 한국 문화를 예술 작품으로 공유하는 시도였어요.”

최근 그는 서울문화재단 중견작가 도록제작 지원을 통해 근 30여년간의 작업을 한 권에 차곡차곡 실었다. 도록집을 펼치면 지난 1997년 아름다움에 관심이 받아 비디오 설치 작업을 했던 젊은 예술가를 마주한다. 그의 예술은 매순간 대표작을 남겼다. 평면을 입체적으로 보이기 위해 실로 드로잉하는 기법으로 작업했던 순간도 도록집에 기록돼 있다. 전 세계를 다니면서 남다른 예술적 깊이로 완성한 작품을 돌이켜보면 그는 참 행복했다. 발자취를 따라 그가 남긴 숱한 작품은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대중과 만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경기도 미술관, 소마미술관, 박수근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간직하고 있다. 현대미술 작가의 생명력은 통찰력에 좌우된다. 예술적 통찰력이 사라지면 숨을 쉬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직관적인 통찰력은 여전히 그의 심장을 뛰게 한다. 그는 예술을 하기에 살아있고 영원불멸의 작품으로 우리 곁에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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