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피부질환 백반증, 치료법 개발 위한 도전은 계속된다
난치성 피부질환 백반증, 치료법 개발 위한 도전은 계속된다
  • 김예진 기자
  • 승인 2020.06.02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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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피부과 배정민 교수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피부과 배정민 교수 ©김예진 기자

오랫동안 난치성 피부질환으로 여겨져온 백반증(vitiligo)은 연구의 진척이 더딘 분야였다. 하지만, 백반증 분야에 있어 국내에서 가장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는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피부과 배정민 교수는 현재의 치료법으로도 상당수의 환자들이 호전될 수 있으며, 특히 조기에 치료를 시작할수록 치료성공률이 높다고 말한다. 임상과 데이터에 근거한 치료적 대안이 속속 늘어나며 환자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로 새로운 연구방법론 제시

배정민 교수는 최근 유행하는 머신러닝 방법을 이용하여 얼굴백반증을 새로 분류하고 아형에 따른 치료반응을 예측한 연구로 대한피부연구학회로부터 신진연구자상을 수상했다. 대한피부연구학회는 피부의 기능과 구조의 이해와 관련해 탁월한 연구업적을 이룬 만 40세 이하의 젊은 연구자를 선정해 신진연구자상을 수여하고 있다. 그간 백반증을 주제로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연구자인 배 교수는 통상적 치료법으로는 호전되지 않는 불응성 백반증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몰두해왔다. 미세펀치이식술, 비배양 표피세포이식술, 미세색소주입술 등을 연구해 환자들에게 적용해온 그다. 이번 수상의 계기가 된 얼굴백반증의 분류는 머신러닝 방법론으로 빅데이터 속에 감춰진 임상적인 의의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에 있는 의사로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통계적인 처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간단히 적용할 수 있는 분석부터 난이도가 높은 기법까지 실로 다양하죠. 데이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어떤 연구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많은 선생님들이 의학통계라는 벽에 부딪히기도 하죠.”

2009년 피부과 전문의를 취득한 배 교수는 군대에서 의학통계를 공부하고, 동료 군의관을 대상으로 의학통계 워크숍을 진행했다. 당시의 강의 자료를 바탕으로 의학통계 입문서인 ‘닥터 배의 술술 보건의학통계’를 출간하여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는 통계기법을 사용할 줄 아는 것과 책을 집필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며, 스스로도 여러 교과서를 탐독하며 공부하다보니 예상한 시간보다 1년여가 더 소요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은 그의 연구에 커다란 날개가 되었다. 통계에 대한 기본기를 탄탄히 갖추고 임상강사 생활을 하던 즈음 건강보험 심사평가 자료가 연구자들에게 공개된 것이다. 전국민 5천만 명을 대상으로 한 빅데이터 연구가 시작된 셈이다. 배 교수는 주변 전문가에게 통계 분석을 의뢰할 필요 없이 방대한 데이터를 직접 다룰 수 있어 보다 활발한 연구를 수행해 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처리에 능한 연구자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빅데이터에 근거한 결과를 제시하면 연구자들은 놀라움을 표하곤 합니다. 그간 임상에서 막연히 생각하던 것이 수치로 입증되는 까닭이죠.”

현재 배 교수는 대한백반증학회 기획정책이사, 대한색소학회 간행이사, 대한피부연구학회 정보간사직을 역임하며 학문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2018년부터는 국제 백반증 치료지침 정립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며 백반증 환자들을 위한 치료법 확립에 힘쓰고 있다.

광선치료부터 수술까지, 백반증을 위한 전방위적 치료법 도입

백반증은 멜라닌세포의 소실로 피부 곳곳에 하얀 반점이 발생하여 피부가 얼룩덜룩하게 변하는 흔한 탈색소질환이다. 전 인구의 1%의 유병률을 보인다. 통상적으로 6~12개월간의 긴 치료를 요하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완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치료 후에도 재발이 잦아 대표적인 난치성 피부질환으로 불린다. 특히 본래 피부가 흰 백인들은 이에 대한 치료 욕구가 적기에 백인 중심의 의학 발전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온 경향이 없지 않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연구자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FDA가 승인한 건선 치료제가 206개, 아토피 치료제가 160개인 반면 백반증은 단 2개에 그치며, 그마저도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약들이다. 연간 발표되는 논문 수에서도 흑색종이 6천여 편, 건선과 아토피가 2천여 편이 발표되는 반면 백반증에 관한 논문은 300편 남짓으로 차이가 크다. 배 교수는 높은 유병률과 질환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질환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데다 효과적인 치료법 또한 요원한 실정임을 지적했다. 특히 유색인종에게는 삶에 영향을 줄 만큼 고통스러운 질병인 만큼 보다 책임감을 갖고 연구에 임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다.

백반증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만큼 배 교수는 백반증 치료에 관한 획기적 치료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직접 제작한 특수 카메라를 통해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병변을 촬영해 진행상황을 살피고, 광선치료나 엑시머와 팔라스 레이저를 활용한 치료에서부터 수술을 통한 치료까지 다양한 방법론을도입했다. 배 교수는 난치성 질환이라는 생각에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이 많지만,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은 분들 중에는 호전된 경우가 더 많음을 강조했다. 특히 초기에 치료해야 반응이 좋은 만큼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백반증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환자 자신조차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죠. 임상에서 만난 환자들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고, 그 원인을 규명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배 교수는 10세 미만의 아이들에게서 조기 발현되는 백반증에도 무게를 싣고 있었다. 유전적 영향으로 백반증이 쉽게 발현되는 아이들에게 예방적 조치를 통해 백반증이 번지는 것을 최소화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조기발현 백반증의 경우 손이 많이 닿는 눈, 코, 입을 기점으로 병변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긁거나 비비지 않는 생활습관을 통해 피부색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는 한편 지속적인 부모 교육을 통해 증상 완화에 나서고 있다. 이밖에도 격월로 병원 내 건강강좌를 진행하는 등 백반증에 대한 올바른 지식 알리기에 앞장서는 모습이다.

드럭 리포지셔닝 통해 새로운 백반증 치료제 탐색한다

배정민 교수는 드럭 리포지셔닝(Drug Repositioning)을 통한 백반증 치료제 발굴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통제로 사용되다 심혈관 질환 치료제로 활용되는 ‘아스피린’, 고혈압 치료제에서 출발해 현재는 탈모치료제로 사용되는 ‘미녹시딜’ 등이 드럭 리포지셔닝의 대표적 사례다. 현재 그는 지난 2017년 한국연구재단 전략과제에 선정된 ‘보건의료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새로운 백반증 치료 약제의 발굴(Identification of New Drugs for Vitiligo Patients Using Healthcare Big Data)’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배 교수는 그간 건강보험 심사평가 자료를 이용해 백반증의 유병률과 동반질환, 치료에 따른 예후를 분석해왔다며, 해당 연구 또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백반증의 위험성을 낮추는 약물을 탐색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백반증 환자와 백반증이 없는 대조군을 나이, 성별, 기저질환 등으로 매칭하여 설정하고 이들이 과거 10년간 사용한 약물을 비교 분석하여 백반증의 발생을 억제하는 약물을 찾는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우리나라에 등록된 모든 약제를 전부 탐색한 결과 21개의 약제가 백반증 발생 위험을 낮출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하고, 각 약물별로 약물 사용자 코호트를 구축하여 백반증 발생을 확인하는 후향적 코호트 연구를 진행 중이다. 특히, 드럭 리포지셔닝에 빅데이터를 활용한 사례가 없었던 만큼 빅데이터를 활용한 드럭 리포지셔닝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해당 연구가 갖는 의미가 크다. 해당 연구와 더불어 배 교수는 피부과학재단에서 선정하는 네 명의 신진과학자로 이름을 올리는 한편 ‘아모레퍼시픽 신진 피부과학자 연구 지원 프로그램’ 대상자로도 선정됐다. 이를 통해 ‘난치성 백반증에 대한 세포치료법의 개발’을 주제로 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총 47례의 비배양 표피세포이식술을 시행한 결과, 37례인 79%가 치료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수술법은 2015년 배 교수가 국내 최초로 도입해 환자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그는 해외에서는 비배양 표피세포이식술이 난치성 백반증의 표준 치료법 중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에서는 신의료기술로 승인되지 못해 연구 목적에 의해서만 시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배 교수는 미세펀치이식술을 시행하고, 사례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미국피부과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Dermatology)’에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수술적 치료가 백반증 치료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새로운 기법들이 국내에 정착되기 위해 기여할 것을 다짐했다.

한편, 지난해 배 교수는 백반증의 자가면역 반응이 암 발병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DB를 활용한 해당 연구는 2007년에서 2016년 사이의 전국 의료기관에 내원한 성인 백반증 환자와 그 대조군을 대상으로 암 발생 여부를 10년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백반증 환자군의 암 발생 위험이 대조군보다 14% 낮으며, 20~39세의 젊은 환자들의 경우에는 암 발생 위험이 23%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대장암, 폐암, 난소암의 경우 각각 38%, 25%, 38%가 낮았다. 배 교수는 백반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이러한 연구 결과가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대규모 인구집단에서 백반증과 암의 상관관계가 밝혀진 것은 본 연구가 처음으로, 연구 결과는 종양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중 하나인 ‘임상종양학회지(Journal of Clinical Oncology)’에 게재되었다.

백반증 토탈 케어 센터 설립, 환우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길

“백반증은 질환의 심각성에 비해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영역입니다. 반대로 알려진 바가 없는 만큼 연구해야 할 이슈들이 많은 분야이기도 하죠. 세계적 연구자들과 협력을 통해 백반증에 대한 도전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10여 년간 백반증 환자들을 만나며 연구에 임해온 배정민 교수는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백반증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개원하는 것이다. 그는 그간 현실적 어려움으로 백반증 치료를 이어갈 수 없던 환자들에게 보다 편안히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백반증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상당한 기간 동안 주 2회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배 교수는 대학병원에서 백반증 환자를 진료하는데 한계를 느꼈다며, 그동안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국내 최고의 백반증 토탈 케어 센터를 만들 것이라 전했다.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왔지만, 진료시간이 제한된 만큼 치료를 미루게 되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아쉬움에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실제로 병원에는 환자들을 위한 고민이 녹아들어 있었다. 광선치료를 위한 대기시간을 최소화하고자 세 개의 광선치료실을 꾸리고, 수술실과 입원실을 마련해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특수 카메라를 활용한 촬영은 촬영 전문 간호사가 담당하는 등 자신이 환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다양한 연구부터 국내 최초로 도입한 비배양 표피세포이식술, 나아가 백반증 토탈 케어 센터 설립에 이르기까지 백반증 치료를 위한 배 교수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노력이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가길 기대한다.

 

배정민 교수

학력

·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주요경력

·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레지던트(2004~2009)

· 국군일동병원 피부과장(2009~2012)

· 연세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임상강사(2012~2013)

·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 연구교수(2013)

·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피부과 임상강사, 임상조교수(2013~2017)

·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피부과 조교수(2017~2019)

·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피부과 부교수(2019~현재)

수상

· 서울시의사회 학술상(2012)

· 대한피부과학회 표창장(2012)

· 청년의사 LG생명과학 미래의학자상(2015)

· 대한피부과학회 동화학술상(2018)

· 대한색소학회 학술대회 최우수연제상(2019)

·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성의우수연구자상(2019)

· 대한피부연구학회 신진연구자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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