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평화와 외교입국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길
한반도의 평화와 외교입국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길
  • 박소연 기자
  • 승인 2020.10.19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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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황재호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황재호 교수 Ⓒ박소연 기자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황재호 교수 Ⓒ박소연 기자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인해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많은 이들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하고 있다. 오죽하면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져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다 생겼을까. 코로나 우울의 침투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며 삶을 재정비하는 연습은 모두에게 동일할 터.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의 황재호 교수도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며 혼란에 빠진 국제질서 사이에서 새로운 외교 방법을 모색하느라 전에 없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이자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자문위원인 그는 중국외교와 미·중관계, 동북아 외교안보 문제를 주로 다루면서 코로나 이후 국제질서를 논의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외교로 국가에 이바지하며 유의미한 삶을 개척해나가는 그의 시간에 잠시 머물다 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나, 당신, 우리들에게
황재호 교수의 이름 한자는 실을 재(載), 밝을 호(皓)이다. 빛을 싣다, 즉 가르치다, 연구하다라는 뜻으로 의역할 수 있다. 성씨 황(黃)은 적(赤)색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색이다. 어쩌면 중국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주어진 운명인지도 모른다. 제일 좋아하는 책은 단연 삼국지. 그럼에도 중국을 균형 있게 바라보기 위해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와 일본의 방위연구소 펠로우로 다녀왔다. 자신의 연구 분야를 실효성 있는 정책과 접목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코로나 시대의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골몰해 있다. 단 몇 줄의 소개만으로 지금까지 그가 거쳐 온 굵직하고 한결같은 생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가 급격하게 뉴노멀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국제질서가 겪은 변화를 황 교수의 시선으로 다시금 톺아보았다.
“국제질서가 코로나19 전후로 나뉜다면, 미국 외교는 트럼프 전후로 나뉘게 됩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통령이 된 이래 국제사회는 각자도생의 글로벌 서부시대에 돌입했습니다. 특히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선거용을 넘어 미·중 관계의 근본적 성격을 건드리고 있어요. 우리는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킨들버그의 함정’에 빠진 미·중 양국을 봐야 합니다. 중진국의 함정을 넘어섰는지, 미국과의 경쟁에 ‘시간의 함정’을 파고 있는지 중국의 대응도 주목하며 말이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직면하면서 우리에게는 수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사회적 체계가 바뀌면서 삶의 양식 또한 완전히 바뀐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시종일관 외교 관계를 주시하는 시선을 잠시 접어두고, 황 교수 개인이 체감하는 일상에서의 변화는 어떠할지 궁금했다. 코로나 이후 그가 느낀 부분이나 앞으로의 삶을 대응하는 데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황 교수는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눈빛들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며 무겁게 입을 떼었다.

"현재 코로나 상황에서는 한국인의 오랜 명언, 뭉치면 산다가 아니라 뭉치면 죽는 세상입니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우울증과 분노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도 2.5단계 거리두기, 혹 그 이상입니다. 국제사회도 영화 기생충처럼 양극화되면서 세계화에도 부정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식인으로서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무엇인지,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전달해야 할 메시지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지구적 레벨의 담론이 다양하게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의 말마따나 세상을 향한 보다 유연하고 넓은 시선이 필요할 터. 국제정세가 삶에 미치는 영향은 얼핏 거시적인 수준에 멈춰 보이지만, 실은 우리네 일상 깊숙이 지속적으로 연결돼 있는 부분이다. 이에 황 교수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담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귀 기울여보았다. 

 

중국 정책 연구자로 보낸 생애 전반, 그가 바라본 미·중 관계 속의 한국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한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중국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더 날카로워진 오늘날, 황재호 교수는 여전히 중국을 연구하면서 중국의 공공 및 지방외교까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본 한국의 대외정책, 과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중국과 호흡해나가야 할까.
“미·중 사이에서 국익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나름의 원칙’을 가지는 것입니다. 원칙의 근거는 국제질서의 흐름을 읽는 눈입니다. 국내외적으로 미·중 대립을 ‘신냉전’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현재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말한 신냉전의 ‘초입(初入)’이 좀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현 미·중 대립은 경쟁 위주였던 미·소 간 냉전이 아니며, 경쟁이 7, 협력이 3입니다. 우리가 신냉전이라 진단하려면 정의(定意)부터 먼저 내려야 합니다. 작금은 미국 대선으로 인한 비정상 상황이며, 그 이후를 지켜보아야 하죠. 신냉전보다는 항상 있어 온 대국 간 경쟁일 수 있어요. 때문에 오늘내일 우리가 급하게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 편에 서기 보다는 국익에 맞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미·중 간에도 회색지대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올 초에는 국내적으로 코로나19와 관련 정부의 ‘중국 눈치론’ 비판이 컸다.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 문제도 거론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온도로 맞이해야 할까.
“말씀하신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총선을 고려해 시 주석의 조기 방한을 추진하느라 발병 초기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대응과 시 주석 방한의 직접 연계는 원래 쉽지 않았습니다. 설령 정부가 시 주석을 오게 하려 했어도 오기 어려웠고, 시 주석은 총선이란 민감한 시기에 방한해 한국 내 정쟁 속에 끼어 들 생각도 없었겠지요. 올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우리끼리 아전인수 갑론을박이었습니다. 시 주석이 오고 안 오고 불필요한 논란은 지난 8월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방한 때까지도 이어졌습니다. 시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오겠지만 이것을 계속 강조하다 보면 자칫 우리가 끌려가게 될까 염려됩니다. 관계의 지나친 정쟁화는 외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황 교수의 단정하면서도 거침없는 답변에 오랜 시간 교단에 선 내공이 느껴졌다. 교육자로서 그가 보낸 시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코로나19로 시민들의 삶은 흔들리고 있어도, 대학 입시를 향한 경쟁만은 여전히 치열하기만 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교육만큼 막중한 책임을 지닌 일이 또 있을까. 
“과거 저는 외대 국제교류처장으로서 대학의 글로벌 경쟁 현장에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은 20만 외국 학생들이 세계 각국에서 유학 올 만큼 매력적인 국가가 되었죠. 하지만 외국 학생유치·선발·관리에 대한 전면 개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맞춤형 유학정책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그간 추진해온 대학 글로벌화와 교육산업은 물론이고 향후 대외 관계에도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혐한(嫌韓)하지 않도록 유학생을 잘 관리하는 것도 국가안보의 중요한 영역입니다. 이제는 범정부 차원에서 외국인 유학생 정책을 ‘비전통 안보’ 개념으로 접근하고 관리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과 중국, 가깝고도 먼 그 사이 외교적 링크를 자처해온 지난 세월
지난한 세월, 누구나 삶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던 인생의 전환점이 있기 마련이다. 지난날의 격정적인 시절은 모두 건너온 지금. 전환점을 지나온 이후 황재호 교수의 삶을 자극하는 원동력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1987년이 생각나네요. 고교 졸업 후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할지 고민이 많은 시기였죠. 그해 7월 동해안을 따라 삼척에서 부산까지 3백여 킬로를 단돈 9천원으로 걸었습니다. 8박 9일간 길에서 먹고 자며 도보로만 이동했지요. 경북 평해교를 지날 때 뜨거운 태양 아래서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부르다 눈물을 확 쏟았던 기억이 납니다. 기진맥진 부산에 도착했을 때 막연하지만 미래에 대해 어떻게든 도전해보자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저는 학생들에게 동기부여 차원에서 이 얘기를 한 번씩 하곤 합니다(웃음).”
의외의 낭만적인 답변에 미소가 지어졌다. 뜨거운 청춘을 간직한 황 교수. 시간이 흘러 ‘국제협력, 글로벌안보’ 전문가로 많은 연구 활동을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무엇일까. 이번에도 그는 의미 있는 한 시절을 불러왔다.
“으뜸으로는 국방부가 주최하는 차관급 다자안보협의체인 서울안보대화를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주관했던 시기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2012년 15개 국가 및 2개 국제기구를 갖춘 총 160여명의 규모에서 2019년 56개 국가 및 5개 국제기구로 800여명이 양적 확대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했지요. 질적으로는 한국의 군사외교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2012년 정원식 전 총리 등 1992년 한·중수교 당시의 주역들과 중국 자칭린 정치협상회의 주석과의 한·중수교 20주년 기념행사를 베이징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래 한·중 양국의 정관학 1.5 트랙 소통에 나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 우물을 판 그의 단단한 뒷모습을 바라보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황 교수가 정의한 한반도가 여전히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있다. “한반도의 한자는 한국 한(韓), 절반 반(半), 섬 도(島)자입니다. 끝 글자를 칼 도(刀)자로 바꾸면 한반도가 칼로 자른 것처럼 절반으로 나눠져 있지요.” 섬뜩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한국은 북한이 중간에 있어 대륙으로부터 단절된 채, 북한도 마찬가지인 이유로 해양으로부터 단절된 채 섬처럼 살아왔습니다. 한반도의 한을 원통할 한(恨)으로 바꾸면 그동안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국제정치적으로 한 맺힌 반도였습니다. 한계 한(限)으로 바꾸면 주변 강대국들의 압박으로 제약이 많은 한반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반도는 유한(有限) 반도가 아니라 무한(無限) 반도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북한을 이미 상생공존 파트너로 인정한 것입니다. 멀리 있는 통일보다 가까운 평화 만들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죠. 남북 사이의 긴장감이랄까, 적대정책을 거둔 것은 이번 정부의 성과입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이런 한반도의 역사적, 국제정치적 제약을 넘어서는 역사적 진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듯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황재호 교수. 코로나19로 인해 힘들고 어려운 점도 많지만, 위기를 기회 삼아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그가 사유하고 성찰해나갈 내일이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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