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미래를 내다보는 눈, 삼성의 혁신을 이끈 선각자
[커버스토리]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미래를 내다보는 눈, 삼성의 혁신을 이끈 선각자
  • 박성래 기자
  • 승인 2020.10.25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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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월간인물 그래픽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월간인물 그래픽

20201025, 향년 78세의 나이로 한국 재계의 큰 별이 졌다. 삼성그룹을 일궈온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것이다. 2014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의 일이다. 당시 이 회장은 자택 근처 순천향대 서울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다음날 심혈관을 넓히는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입원 6개월 후부터는 하루 최대 19시간까지 깨어있으며 재활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까지 자가호흡을 하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은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을 치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주요 외신들은 삼성 1등 만든 글로벌 거인이 별세했다며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미래지향적이며 도전적인 경영 통해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이끌어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삼성창업주가 별세한 1987년부터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약 27년 간 삼성그룹을 이끌어왔다. 1987174천 억 원이던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지난해 기준 314조 원으로 늘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사장 등이 있다.

이 회장은 무엇보다 현 삼성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와 모바일 사업의 밑거름을 다진 인물이라 평가받는다. 그의 경영이념은 양보다 질에 방점을 찍는다. 1987121일 취임사를 통해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90년대까지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 밝혔던 이 회장은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재계 또한 이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고 대한민국 경제를 이끈 고인의 도전과 혁신정신을 계승하자고 강조했다.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 극단적으로 얘기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19936월 프랑크푸르트 회의), “삼성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기꺼이 협력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20111월 신년사) 등의 발언은 이 회장의 혁신가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다 바꿔라라는 말로 압축된 발언을 남긴 1993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은 그룹의 체질을 철저히 개선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하던 1987년 당시 삼성은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세계무대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일본의 소니 등을 벤치마킹하며 추격자 전략을 취하는 기업이었다. 그리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 삼성은 소니로부터 삼성에게 배우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 회장 취임 당시 밝힌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비전이 현실화된 셈이다.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한 혁신경영은 소니, 애플 등 글로벌 경쟁사들의 견제 속에서도 삼성이 맹위를 떨치게 한 힘이었다.

 

삼성 성장의 두 축, 반도체와 모바일 사업

세계무대 속 삼성의 이름을 새긴 데는 반도체 사업의 영향이 컸다. 19691월 설립 이래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으로 성장기반을 다진 후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삼성 계열사 이사로 있던 이건희 회장은 한국반도체가 부도 직전의 위기라는 소식을 듣고 사비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1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페어차일드, 인텔, 내쇼널 등 글로벌기업들이 구조조정과 감산에 나서던 때 첨단기술 산업으로 진출하는 것이야말로 삼성의 살길이라 주장하며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이듬해인 1975년 전자손목시계용 집적회로칩을 개발한 삼성은 1976년 국내 최초 트랜지스터 생산에 성공하고, 당시 최첨단이던 3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 설비를 구축했다. 1982년에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10년 후인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세계 시장의 강자로 부상했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단 한 차례도 세계 1위를 내주지 않고 굳건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D램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휴대용 기기에 사용되는 플래시메모리, 시스템메모리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R&D를 펼치며 지속 발전하는 모습이다.

반도체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이 회장은 휴대전화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의 모토로라가 국내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하던 때였다. 1994년 삼성은 야심차게 첫 휴대전화를 출시했으나 불량률이 11.8%에 달하는 통에 고배를 마셔야했다. 이에 이 회장은 1995년 구미사업장에 불량 휴대전화 15만대를 모아 불에 태우는 화형식을 진행하며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일찍이 그는 불량은 암이라며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고집스러운 품질 개선의 노력은 빛을 발했다. 애니콜이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한국 시장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모토로라가 유일하게 고지를 점령하지 못한 시장으로 남았다.

애니콜의 인기는 국내를 발판삼아 세계로 뻗어나갔다. 2000년대 초반까지 반도체가 삼성을 먹여 살렸다면 이제는 휴대전화가 삼성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 이후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 삼성은 다시 한 번 그룹 역량의 집결체라 할 수 있는 갤럭시S'를 선보이며 패권 싸움에 뛰어들었다. 2007년 출시된 애플 아이폰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던 때였다. 삼성은 갤럭시탭, 갤럭시S2, 갤럭시S3를 잇달아 출시하며 애플을 빠르게 추격했다. 특별검사 수사로 경영에서 한때 물러났던 이 회장은 2010년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며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위기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14월에 출시된 갤럭시S24천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시장으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후 애플과 삼성은 수십 건의 특허 소송을 벌이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글로벌 시장 판매량 기준 1위를 지키고 있으며, TV와 가전 또한 10년 이상 글로벌 1위 자리에 이름을 내걸고 있다.

 

삼성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된 신경영 철학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간 중시기술 중시를 토대로 질 위주의 경영을 실천하는데 무게를 실었다. 이른바 신경영 철학이다. 신경영 철학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반성을 통해 변화에 의지를 갖고 질 위주의 경영을 실천한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최고의 품질과 경쟁력을 갖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류 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신경영 철학을 실행하고자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철저히 배제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다. 이에 삼성은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으며, 인사제도 또한 연공서열식이 아닌 능력급제로 전환했다. 또한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삼기도 했다. 2003년 그는 사장단 간담회 후 기자들을 만나 인재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현재까지 삼성은 임직원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 등을 운영하며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왔다.

삼성을 이끌어온 또 한 가지 축은 사회 공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회장은 사회 공헌 활동을 기업에 주어진 또 다른 사명으로 여기고 이를 경영의 한 축으로 삼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켰고, 기업으로서는 전 세계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를 조직했다. 매년 50만 명의 삼성 임직원들이 300만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고아원, 양로원 등의 불우 시설을 찾아 봉사하고 있다.

이 회장은 IOC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스포츠 산업에도 각별한 애정을 보냈다. 스포츠를 국제 교류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라 칭하며 1997년부터 올림픽 주요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태왔다. 특히 전 세계적인 스포츠 외교 활동을 펼치며 2018년 아시아 최초로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계기를 마련한 바 있다.

산업의 주권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도전을 멈춰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 40년사를 통해 이 회장이 남긴 말이다. 이러한 도전정신은 흑백TV를 만들던 삼성을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선도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도전과 혁신, 인재경영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현재의 삼성을 일구어낸 이 회장의 뒷모습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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