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정비 등 정부 화답해야
최근 기후위기 도래 등 격변하고 있는 지구환경 악화에 글로벌 사회의 ‘탈(脫) 탄소’ 흐름이 정착하고 있다. 이에 글로벌 공룡 대기업들의 ESG경영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속속 동참하는 모습이다. 특히 탄소중립을 정 조준한 ‘RE100(Renewable Energy 100)’ 움직임은 이런 탈탄소 흐름을 더욱 구체화했으며, 이에 참여하는 기업 규모 또한 점점 불어나고 있다. 지난 2014년 영국 한 비영리기관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아직까지 관련 국내 법·제도 정비 미흡 등의 이유로 동참을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점에서 정책 보완도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기업 RE100 필수 요구, 삼성전자 RE100 가입 유력
재계 등에 따르면 현재 RE100에 가입한 국내 대기업은 20여개사 수준이다. 이는 ▲SK그룹 계열사 7곳을 시작으로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4곳 ▲LG에너지솔루션 ▲롯데칠성음료 ▲KB금융그룹 ▲미래에셋증권 ▲아모레퍼시픽 ▲고려아연 ▲인천국제공항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가입을 선언했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의 RE100 가입이 유력해지면서 대기업 참여 행보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RE100은 오는 2050년까지 기업의 모든 사업장·사무실의 사용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국제 캠페인으로, 앞서 애플·TSMC·인텔 등 글로벌 공룡기업들도 동참을 선언한 바 있다. 국내 기업 중 최초 가입은 SK그룹으로, ㈜SK와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C,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SK브로드밴드 등 7곳의 관계사가 지난 2020년 12월 가입을 완료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가 현재 산업용 전기료보다 높음에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이처럼 RE100에 뛰어드는 이유는 글로벌 사회의 탈탄소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최근 글로벌 사회에선 관련 규제를 강화해 탄소국경 조정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탄소감축 공시 등으로 ‘환경 장벽’을 높이고 있다. 또한 대형 고객사 요구에 부응하려는 목적도 있다. 실제 애플과 구글, BMW,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HP, 인텔 등 RE100 가입 글로벌 기업들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추구하며 협력업체 선정 과정에서 RE100 회원 여부를 따지고 있다. 결국 글로벌 흐름 동참 및 이들 기업과의 거래를 위해서는 RE100 가입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 된 셈이다.
실제 RE100에 동참한 BMW의 경우 지난 2018년 배터리 계약 과정에서 LG화학에 ‘RE100 충족’을 조건으로 제시하며 계약을 불발했고, 애플도 2020년 SK하이닉스에 ‘RE100’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RE100 가입 없이는 머지않아 애플 대표격인 ‘아이폰’에 납품 중인 삼성전자·LG이노텍·삼성디스플레이 등 국내 기업들의 사업 전략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결국 한국 기업들이 구글·애플 등에 납품하기 위해선 공장을 통째로 뜯어 해외로 이전해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사실상 RE100 가입이 강제력을 수반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업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는 삼성전자가 RE100 가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늦은 가입 시점에도 국내 시가총액 압도적 1위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타 기업에 미칠 파급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삼성전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RE100 가입 결정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업이 주축인 삼성전자가 비용면에서 큰 부담이 될 RE100 가입을 결정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선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현재 6.6% 수준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5%로 늘리겠다고 공약한 데 이어 정부도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독려하는 등 정치권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한 삼성전자 대주주들의 거센 RE100 가입요구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중소기업 아우르는 보완책 나와야
지금까지 RE100에 동참한 국내 기업 가운데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인 LG에너지솔루션에 이목이 집중된다. 지난 1월 다국적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그룹과 CDP가 발표한 ‘RE100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RE100 가입 국내 기업 가운데 전환율(2020년 기준) 33%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2위 아모레퍼시픽이 5%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6배 이상 높은 수치다. 향후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전 세계 모든 생산 공장의 재생에너지 전환율을 60% 이상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최근 제주에너지공사·제주특별자치도청·제주 동복마을로부터 23GWh(기가와트시) 규모 풍력·태양광 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를 구매했다. 이를 통해 충북 오창 공장의 재생에너지 전환율을 작년 16%에서 올해 50%까지 3배 이상 늘릴 전망이다. 이외에도 중국 난징(南京) 전기차 배터리 1·2공장의 경우 올해까지 재생에너지 전환율을 100%로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최근 화석연료 원가 급등으로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비중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중장기 구매계약을 고정가격으로 체결해 전기요금 상승 부담을 미리 막겠다는 취지다. 이에 관련사업을 전개하는 한화큐셀, OCI, 현대에너지솔루션 등 태양광 기업 및 씨에스윈드, 유니슨, 두산에너빌리티 등 풍력기업 성장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이 가운데 한화큐셀의 경우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 확대를 위해 지난해 9월 1조5,000억 원을 투입해 현재 4.5GWh 규모인 태양광셀·모듈공장을 오는 2025년까지 7.6GWh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RE100 가입을 둘러싸고 자금력 등이 풍부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나고는 있으나 경영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 참여는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소기업에 적합한 법·제도 미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에너지융합협회가 지난달 국내 기업 306곳을 대상으로 ‘RE100 활성화를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RE100 이행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재생에너지의 높은 투자비용 또는 구매비용’(25.3%)이 지목됐다. RE100이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착한 취지로 시작된 것을 인식한다 하더라도 자금줄이 빈약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그림의 떡’인 셈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기 구매를 원활하게 한다는 목표로 녹색프리미엄제,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등 한국형 RE100(K-RE100)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중기업계에서는 비용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동참할 만한 유인책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선뜻 RE100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민 상생방안과 이행수단의 다양화, 망사용료 지원 등 보다 맞춤형 정책을 통해 재생에너지 구매 부담을 덜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기후위기 상황과 맞물려 환경인식 변화에 따른 RE100 가입 여부가 향후 기업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 만큼, 정부는 이같은 중소기업을 아우르는 업계 요구에 부응해 더욱 실효성 높은 보완 정책을 내놔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