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Now] 기술 진보가 가져온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진화를 생각하며
[MonthlyNow] 기술 진보가 가져온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진화를 생각하며
  • 김영록 기자
  • 승인 2020.12.16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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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할 때, 먼저 챙기는 물건은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다. 각자 상황에 따라 휴대하는 소지품이 다르다 해도 보통 남녀노소 누구나 필수품으로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이 가장 우선순위를 차지할 듯하다.

과거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친구와 만날 약속을 할 때 가끔 만남의 장소를 착각하여 서로 엉뚱한 장소에서 기다리다, 만남이 어긋나던 일도 비일비재했다. 불편했지만 낭만이 있기도 했다. 지금은 폰이 있어도 특별히 통화가 필요치 않을 때는 보다 간편한 소통이 가능한 카카오 톡(Kakao Talk) 같은 메신저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 추세이다.

 

그 옛날의 소통 방식

TV의 전통 사극 장면을 보면 옛사람들은 자신의 소식을 멀리 있는 이에게 전할 때, 인편으로 전하거나 서신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사안이 국가적으로 시급(時急)할 경우에는 연()을 띄우거나 뿔피리를 불고, 북을 울리기도 했다. 특히 연을 이용, 제작한 신호연은 전투 같은 위급 상황에 매우 주요한 수단이었다. 전쟁 중 중요한 명령 하달과 작전을 전달해야 할 때, 신호연은 특별한 문양을 통해 비밀스러운 암호로 의미를 전달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고안한 충무연이 있다.

고대 고구려 고분벽화(古墳壁畵)에 그려진 수렵도 (중국 지린성 지안현 소재 무용총)에 보면 소리 나는 화살인 효시를 볼 수 있다. 효시(嚆矢)란 우는 화살이라는 의미인데 속이 비어 있는 나무나 사슴뿔을 재료로 옆에 구멍을 몇 개 뚫는다. 그 구멍으로 바람이 통하면서 화살은 날아가며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명적(鳴鏑 : 옛날 전쟁 때에 쓰던 화살을 지칭함. 끝 부분에 속이 빈 깍지를 달아 붙였으므로 쏘면 공기에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큰 소리를 내며 날아간 화살은 사냥감의 위치나, 활을 쏜 사람의 위치를 알리는 역할을 했고 전투 시, 공격 시작을 알리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화살을 쏜다는 의미의 효시(嚆矢)는 사물의 발단이나 중요한 일의 시작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북은 예로부터 악기로의 쓰임새 이외에 전쟁 시 신호 도구로 사용되었다. 진군(進軍) 시에 북을 치고 후퇴할 때 징을 울렸다고 한다.

또한 국가의 군사정보를 전달할 때 봉수가 주요 통신으로 이용되었다. 봉수(횃불 봉, 연기 수)는 높은 산 정상에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를 피워 군사적 상황을 알리는 데 사용되던 전통적 통신제도이다. 횃불과 연기의 개수로 의미를 달리하였다. 봉수는 5개로 운용되었는데 평상시에는 횃불 1, 외적이 국경에 나타나면 횃불 2, 외적이 상륙하여 전쟁이 일어나면 횃불 5개 모두에 불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조선시대 봉수는 어느 지역에서든 한양의 목멱산(지금의 남산)으로 12시간 내에 소식을 전달했다.

비상시 급박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 외에 역참과 파발이 있었다. 역참(驛站)은 관청의 소식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병사나 말을 두었던 곳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삼국시대에 이미 역참을 개설한 기록( 삼국사기신라본기 소지왕 9(487) 3월조 : ‘사방에 우역을 설치하고 유사들에게 명하여 도로를 수리하게 하였다.’)이 있고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도 활발히 이용되었다. 조선 시대에 전국 500여 개소에 역이 있었으며 약 30리마다 1역을 설치했다. 이 업무를 행하는 관원을 역원이라 칭했다.

파발(擺撥)은 시각을 다투는 급한 일을 전달해야 할 때 문서를 빠르게 전송하기 위해 사용된 통신 방식이다. 파발꾼이 말을 타고 다음 파발꾼에게 전달하는 릴레이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말을 사용하는 기발(騎撥)과 사람의 도보에 의해서 전달하는 보발(步撥)로 나누어져 있었다. 파발은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인 1597(선조 30)부터 조직하여 시행되었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과 문서로 전달되었기에 보다 정확하고 비밀 유지가 가능한 이점이 있었다. 파발은 여러 사람이 하나의 소식을 전달하는 방식이고 역참은 한 사람이 먼 지역에 정보를 전달하는 점에 차이가 있다.

 

통신의 선구(先驅)와 그 발전 양상

이탈리아의 발명가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8744~19377)1896년 무선통신을 처음 선보였다. 마르코니는, 1888년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독일: 18572~18941)가 발견한 전자기파를 이용한 무선전신 실험에 성공했다.

그는 고전압의 전류를 이용, 스파크가 발생될 때 유출되는 펄스파(pulse wave)를 이용하여 모스 부호의 구성 요소인 도트(dot : 인쇄된 동그란 점)와 대시(dash : 문장 부호의 하나. ‘’)를 전송하는 방법을 착안해 냈다. 그가 고안한 전송 방식인 펄스파는 사람의 음성을 전달하는 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무선을 통한 음성 전송에 처음 성공한 사람은 캐나다 출신 미국 무선공학자 레지날드 페선던 (Reginald Aubrey Fessenden, 186610~ 19327)이다. 토마스 에디슨의 전구 개발을 도운 적도 있는 그는 무선통신의 고주파를 음성과 같은 저주파로 바꾸어 연속파를 발생시킬 수 있는 발진기를 발명했다. 그는 1906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북대서양 연안 근처 송신소에서 음성신호를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그의 실험 장소 근처 바다에 있던 통신사들은 통신기에서 나오는 사람의 목소리를 처음 듣게 되는데 이는 세계 최초 라디오 방송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페선던은 무선 음성 송수신기 사업에 성공하지 못했고 1920년대가 되어서야 무선전화가 업무에 활용되었다.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김명진 저, 2019년 궁리출판 ,P260~P265)

1928년 미국 디트로이트 경찰에서 순찰차에 무선 수신기를 설치하였고, 본부에서 순찰차로 음성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1931년부터는 순찰차에서 본부로의 역방향 통신도 가능하게 되어 무선전화를 활용한 쌍방향 음성 전달 시스템이 업무에 사용되었다.

후일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선전화의 성능이 강화되었다. 전시 상황 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무선통신 장비가 널리 사용되었고 1940년에는 모토로라(Motorola) ()가 워키토키(walkie talkie : 단거리 소통 가능한 휴대용 양방향 무선 전화기)를 개발했다. 워키토키는 휴대가 더욱 편리한 소형 핸디 토키(handie talkie)로 발전했다. 이때의 통신 장비들은 일반 유선 전화망 가입자들과의 통신이 아닌 호환 가능한 무선 장치들 간의 통신에 불과한 것이었다.

 

전화망의 등장과 셀 방식의 도입

이동 전화서비스가 미국에서 처음 실시된 것은 미국 전화 전신 회사(AT&T)의 분할에 따른 자회사 사우스 웨스턴 벨(Southwestern Bell Corporation ) 전화 회사가 1946년 이동전화서비스 (Mobile Telephone Service, MTS)를 실시한 것이 최초이다. MTS는 최초의 상업적 전화서비스로 최초의 이동 전화는 카(CAR) 폰의 형태였다. MTS는 장치가 갖추어진 자동차의 운전자가 전화교환수를 통해 자신이 통화를 원하는 사람의 번호를 알려준 뒤 교환수의 연결로 통화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통화자들에게 통화 내용도 유출되었고 동시에 통화 가능한 사람 수에 제약이 있었기에 이러한 불편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1947AT&T사의 벨 연구소의 연구원이 셀 방식(cellular) 개념을 착안해 낸다. 연구원은 하나의 지역을 작은 육각형의 셀(cell)로 나누어 송신탑을 세운 뒤 각 송수신 탑은 해당 셀 경계 내에만 도달하는 약한 방식의 전파를 송출하는 것이 셀 방식이다. 이로 인해 동시 통화 가능한 사람의 수가 늘어났고 장치의 소형화가 가능해졌다. (위의 책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김명진 저, 궁리출판 ,P268~P270)

 

모바일(Mobile) 시대의 진입 : 내 손안의 스마트한 세상에 이르기까지

전화가 귀하고 고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 한 가정 전화기 한 대가 아닌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11폰 시대는 얼마나 자유롭고 편리한가. 휴대전화( hand-held cell phone)의 시대의 개막은 모토로라 회사가 열었다. 1973년 최초의 휴대전화라 부를 만한 제품이 등장했다. 1973년 모토로라의 연구원들은 다이나택 (DynaTAC)이라는 제품을 개발했고 19734월 공개했다. 이로써 거리에서도 통화가 가능해졌다.

1G 시대 핸드폰은 1983년 상용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가입자는 폭증했고 통화 용량의 압박으로 인해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88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둔 198871일 휴대전화 서비스가 처음 시작되었다. 음성전화만이 가능했던 1세대 이동통신을 시작으로, 문자 메시지를 이용할 수 있는 2세대 이동통신, 스마트폰의 개막인 3세대 이동통신, 스트리밍 동영상 시청이 가능한 4세대 이동통신을 지나 이제는 5세대 이동통신 기술 시대다. 202010월 기준 이동통신 가입자 수가 7천만이 넘고 있다.(70,373,082, 출처: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에 처음 개통된 휴대폰은 모토로라의 다이나택SL’이다. 세로 길이는 33cm에 무게는현재의 폰들과 비교할 때 꽤나 무거운 771g이나 되었다.

19961월에는 세계 최초로 2세대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CDMA 코드분할 다중 접속 :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이 상용화되었다. 2세대 기술은 문자 서비스가 추가되었고, 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의 통신서비스를 제공받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3세대 이동통신 기술 (WCDMA 광대역 코드분할 다중접속: Wideband CDMA )2006년 상용화되었다.

3세대 이동통신 기술은 기존의 음성과 문자 서비스에, ‘멀티미디어 통신기능이 더해져 멀리 떨어진 지인 간, 영상통화가 가능해지고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LTE 서비스가 20117월 상용화되었다. 3세대 이동통신 시대 데이터 전송 속도는 14.4 Mbps였던데 비해, LTE 서비스의 최대 전송속도는 1Gbps에 달했다. 이에 휴대전화로 영화를 내려받는 속도가 빨라지고 동영상 스트리밍도 끊김 없이 시청하게 되었다.

지금은 5G 시대. 우리나라는 201712, 세계 최초로 ‘5G 글로벌 표준 기반 데이터 전송에 성공한 바 있다. 5G의 첨단 기술의 핵심어는 초고속, 다수 기기 연결, 초저지연(ultra-low latency, 超低遲延: 사물통신에서 끝에서 끝으로의 전달 시간이 매우 짧음을 의미) 이다. 5GLTE 서비스 보다 20배나 빠른 속도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4G 시대 데이터 송수신은 스마트폰 위주로 이루어져 왔다면, 5G 기술은 가전제품, 건축물 등 기타 부문에도 자율 주행,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IoT : Internet of Things), 홀로그램 통신 등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활용될 것이다.

며칠 전 나는 줌(ZOOM) 비디오 서비스를 통해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과 영상으로 안부를 확인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삶의 모습들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다. 옛 시대의 전보와 편지, 무선 호출기 삐삐시대를 거쳐, 핸드폰. 이제는 음성 통화를 넘어 스마트폰 영상 통화 시대로 옮겨간다.

21세기 스마트 기술 시대의 진화와 함께 우리의 삶도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변화한다. 이제 지나간 아날로그 시대로 더 이상 회귀할 수 없다. 다만 그 시절의 감성과 추억을 그리워할 뿐.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시구(詩句)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사라지나, 지나간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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