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암 환자 기대여명, 환자의 고통 덜기 위한 최선의 치료를 고민하는 ‘좋은 의사’의 소명
늘어나는 암 환자 기대여명, 환자의 고통 덜기 위한 최선의 치료를 고민하는 ‘좋은 의사’의 소명
  • 유지연 기자
  • 승인 2023.05.03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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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홍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임채홍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유지연 기자
임채홍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유지연 기자

[월간인물 유지연 기자] 폐암은 국내 암 사망 원인 1위로 예후가 좋지 않은 암종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4기 진단을 받으면 6개월~1년의 여명이 남았다고 인식되어왔다. 그런 전이 폐암 환자의 여명이 3년에 달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임채홍 교수는 메타분석을 통해 폐암 희소전이에 대한 수술 및 방사선 치료의 효과를 확인하였고, 2년 생존율 58.4%로 기존 항암제 및 고식적 치료를 수행한 군의 31%를 크게 웃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연구가 더발루맙 등 최신 면역항암제 승인 전인 2018년 이전의 환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임을 감안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고무적이다.

 

 

폐암 희소전이 환자에 대한 수술·방사선 치료 후 생존 기간, 항암제·고식적 치료보다 월등히 높은 ‘33.6개월로 확인

폐암 희소전이(oligometastasis) 치료에 수술 및 방사선 치료가 항암제 및 고식적 치료보다 생존 기간이 높다는 사실을 규명한 임채홍 교수 연구팀의 연구 성과가 국제 외과 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Surgery(Impact factor:13.4)'에 게재되었다. 희소전이란 일반적으로 전이 병소가 3~5개 미만인 상태를 일컫는데, 4기 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절제 혹은 방사선 치료가 유효한 것이 입증된 것이다. 이는 원격전이가 된 4기 암의 경우 완화적 목적의 항암제 치료만이 유일한 대응방법이라 알려져 있던 폐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초기 전이암의 경우 수술이 시도되기도 했지만, 수술 후에도 재발이 많고 4기 환자에게 수술을 시도한다는 자체에 부담을 갖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방사선 수술 (고선량의 방사선을 종양에 집중해 조사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이 폐암에 대한 연구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방사선 수술은 초기 폐암에서 수술적 절제와도 유사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지며 각광 받기도 했죠.”

임 교수 연구팀은 1,750명의 환자와 20개의 연구를 포함한 대규모 메타분석을 통해 희소전이 폐암에서 수술 및 방사선 치료의 효과를 평가했다. 그 결과 3~5개 이하의 희소전이 폐암에서 방사선 치료나 수술을 시행한 환자의 2년 생존율은 58.4%로 항암제나 고식적 치료만을 수행한 군의 2년 생존율인 31%를 크게 웃돌았다. 생존 기간의 중위값 역시 33.6개월 대 15개월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국소 치료의 효용은 희소전이 사례 중에서도 원발암과 전이암이 동시에 발견되는 동시 진단 (synchronous) 상태와, 항암제 치료 후 일부의 병소가 남은 상태인 잔여 전이 상태 (oligopersistence)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임 교수는 해당 연구는 더발루맙(durvalumab)이나 펨브로리주맙(pembrolizumab)과 같은 최신 면역항암제가 승인되기 전인 2018년 이전의 환자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최신 면역항암제 등이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에 더해진다면 희소전이 폐암의 치료성적은 더욱 향상될 것이라 내다봤다. 이미 면역항암제에 방사선 치료를 추가했을 때 치료 효과가 더욱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제 암 진단이 곧 사형선고이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1990년대까지 40% 남짓이던 전체 암의 5년 생존율이 이제는 70%가 넘어가거든요. 머지않아 암 또한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질환처럼 조절하며 지내는 시대가 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번 연구는 예후가 불량한 암종으로 알려져 있던 폐암, 그 중에서도 전이암에 대해 그러한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희망적입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난치의 질환 치료에 대한 연구

임채홍 교수는 학창 시절부터 삶과 죽음의 의미에 관심을 가져왔다. 암 치료의 일선에 뛰어들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에 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갔다. 그런 임 교수에게 환자의 몸에 칼을 대지 않고도 수술과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사선 치료는 강력한 무기이고, 그 치료의 결과는 삶의 보람이다. 방사선치료는 혈관에 인접한 암이나 폐 질환이 있는 환자의 초기 폐암 등 수술이 어려운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 후두 주변에 방사선을 조사하여 목소리를 손상시키지 않고 성대암을 완치시킬 수도 있다. 그는 외과의 수술이 적진에 들어가 암이라는 적을 무찌르는 육군이라 한다면, 방사선 치료는 멀리서 대포를 정밀히 조준하여 적진을 타격하는 해군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비유했다.

제가 레지던트일 때만 해도 암은 현재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지는 질병이었어요. 환자와 보호자가 느끼는 공포는 극심했죠. 치료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죠.폐암 3기의 경우 5년 생존율이 15-20%, 4기의 경우 5년 생존율이 5% 가량에 불과했어요.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5%의 장기 생존환자는 어떤 특징이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임 교수는 표준치료법이 정립되지 않은 난치의 암에 대해 방사선 치료로써 답을 찾기 위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왔다. 그는 중증의 질환을 완전히 이겨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함께 짊어지고 버텨내는 것만으로 치료에 의미가 있음을 강조한다. “모든 삶은 끝이 있습니다. 그 뒤쪽 여정에서 고통 없이, 가능한 긴 시간을 가지고 삶을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면 그것도 훌륭한 치료입니다.” 그는 폐암 이외에도 사망률이 높고 치료가 어려운 간세포암, 담도암의 연구에도 열심이다. 간을 먹여살리는 주요 혈관인 문맥에 침범이 있는 간세포암은 기대여명이 3~6개월에 그치며, 수술이 까다로운 데다 항암제의 효과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임 교수가 수행한 임상 연구 및 메타분석 결과 방사선 치료를 수행한 환자군의 생존 기간은 1년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수술 후에도 재발이 잦고 예후가 불량하다고 알려진 담도암 역시 방사선 치료를 통해 재발률을 33%가량 낮출 수 있음을 보고하기도 했다.

누구나 처음에는 교과서나 잘 집필된 가이드라인을 읽으며 의술을 배웁니다. 그러나 종양학자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어느 시점부터는 책이나 가이드라인에서 알려주지 않는 난치의 상황에서의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꾸준히 연구하는 것입니다. 한 편의 논문을 쓰려면 백 편의 논문을 읽어야 합니다. 연구를 잘 하는 의사가 환자도 잘 살립니다. 또한, 이제는 한 사람의 영웅적 의사가 환자를 잘 치료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진단, 치료, 예방에 걸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의사라 할 수 있죠.”

최근에는 의학 분야에서도 경제적 가치를 가진 의료기기나, 신약으로 발전 가능한 연구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 교수는 가장 기본이며 중요한 의학 연구는 난치의 질환을 잘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라 힘주어 말했다. 그는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들의 고통을 덜고 여명을 확보하는 것이 의사된 도리라며, 이러한 연구는 기대 수명과 경제적 활동시간을 늘림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사회에 유익이 되며, 높은 치료의 수준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국가의 브랜드파워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사선종양학과나 종양내과 등은 개원이 어려워 전공 선택시 인기가 높은 분야는 아니다. 하지만 임 교수는 환자들과 함께 암을 이겨내고 난치의 질환을 연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보람있는 일이라며 많은 후배 들이 암 치료와 연구에 용기를 갖고 도전했으면 한다는 당부를 남겼다.

 

우즈베키스탄 국립암센터에서 유방암 환자를 촉진하고 있는 임채홍 교수. 좌는 타슈켄트 방사선종양학과 과장 Dr. Alimov (알리모프)
우즈베키스탄 국립암센터에서 유방암 환자를 촉진하고 있는 임채홍 교수. 좌는 타슈켄트 방사선종양학과 과장 Dr. Alimov (알리모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의 의료기술, 개도국에서의 봉사로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 이바지할 것

성당에서 청년 성가대 단원으로 15년간 봉사해온 임채홍 교수는 사람들의 열정과 선의지가 합쳐지면 예술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람의 내적 근원은 모두 하나임을 몸소 체감해온 그다. 암은 국민의 3분의 1이 경험하는 질환이며, 그 가족을 포함할 때 전 국민이 환자 혹은 보호자에 해당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환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보호자의 슬픔을 나누며, 언제든 이것이 나와 주변에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치료적 결정을 내리고자 노력해왔다.

암은 주로 60~70대 이후에 발병합니다. 국가가 발전하고 평균 수명이 길어질수록 암의 발병률은 증가하죠. 진단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상당수의 암은 완치가 어려운 상태로 진단이 될 것입니다. 암이 노년에 호발하는 점을 고려할 때, 여러 치료 방법을 동원해 조절 기간을 늘리고, 발병 후 생존 기간을 평균 수명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증 암 치료의 목표입니다.”

한국의 암 치료는 기술의 수준이나 치료성적 면에서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과 유사한 수준이며, 한국에서 자주 발생하는 질환에 대해서는 더 나은 치료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이에 한국의 암 치료 경험과 지식을 배우고자 한국을 찾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2010년부터 10여 년간 캄보디아 오지에서 진료 봉사를 수행해온 임 교수는 지난해에는 우즈베키스탄 국립암센터에 자문단으로 참가하여 중앙 아시아에서 방사선 치료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은 연구자의 내적 역량을 기르고, 국가 이미지를 재고하여 국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말했다. 아직은 병원에서의 일이 많아 쉽지만은 않지만 추후에는 그러한 봉사의 시간을 늘려가겠다고 다짐하는 임 교수다.

캄보디아 오지에는 평생 의사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별도의 치료 없이 그저 집에서 쉬는 환자나, 사고로 인한 상처를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다 3도 화상을 입어 몸이 굳는 환자들도 있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35백만명의 국민들이 방사선 치료기기 서너 대로 암 치료를 받고 있어요. 우리도 과거 서구 선진국들의 문헌을 공부하고 그들에게 술기를 배웠지요. 우리가 조금만 노력해도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활동을 통해서 인간애를 배우고 더 나은 의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큰 시각에서는 국가간 협력을 증진시켜 우리나라의 발전에도 기여 하겠지요.”

 

임채홍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유지연 기자
임채홍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유지연 기자

天江流水天江月, 환자의 고통 덜고 삶의 존엄 지키는 의사의 소명

임채홍 교수는 스포트라이트를 좇기보다 보이지 않는 틈을 메우기 위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예를 들어, 혈관을 침범한 간암 환자들에게 방사선치료를 수행해서, 3-6개월의 기대여명을 1년으로 늘린다고 해서 경제적 유익을 얻을 주체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만이 알고 있는 자부심과 양심의 충족은 무엇보다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오히려 경제적 유익으로부터 자유로운 연구를 수행했기 때문에, 더 자신 있게, 오로지 연구결과를 의지해서 치료적 결정을 내릴 수 있지요. 그런 치료를 수행하고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제 자부심이고, 그런 치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사회와 학교에게 늘 감사합니다.”

천 개의 강에 천 개의 달이 뜬다(天江流水天江月)’라는 말이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하나이지만 그 달빛이 수천 개의 강에 고루 비친다는 뜻으로, 마음의 근원은 모두 하나라는 의미다. 임 교수는 그가 한국에 태어나 암 치료를 배운 것은, 환자와 보호자를 자신과 같이 생각해 돌보고, 또한 배움을 사람들과 나누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소명이라고 말한다. 최선의 치료를 다한 끝에 고통을 덜고, 쾌유해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그는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보다 한 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요.” 라고 말한다. 타인을 자신과 구별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고통을 도와주는 주체로서 느끼는 감정은 성취감보다는 안도감이라고 말하는 임 교수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환자의 생사고락을 곁에서 지키며 더 나은 치료를 고민해온 임 교수가 강조하는 단 한 가지는 금연이다. 암의 요인 중 3분의 1을 배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어서다. 또한 초기에 암을 발견하는 것보다 나은 치료는 없다며 꾸준한 건강검진을 권고했다. 여전히 인간의 근원에 대한 자신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쫓고 있는 임 교수는 환자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하기 위한 고민과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안타까움을 내려놓고 다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한 장면을 위한 그의 노력이 수 많은 환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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