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향후 교육 및 연구 방향

박연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침구의학교실·강동경희대학교 한방병원 관절척추센터 교수

2024-10-02     월간인물
박연철

오늘날 현대 의학은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쌓아온 경험에서 비롯된 생활 의학, 전통 의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과학화되어 탄생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의학은 의학 이론의 기본을 황제내경이나 동의보감에서 가지고 온다고 폄훼하기도 한다. 또한, 한의계에서는 질병에 대한 이론은 현대 의학의 최첨단 이론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치료는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적용한다고 말한다. 특히 실험적 방법을 위시한 근거중심의학에서 강조되는 연구방법론은 한의학의 이론체계와 맞지 않아 정체성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의학은 과학화라는 이름으로 침구나 한약물의 질병 치료 효과와 기전을 검증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원인에 기인한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한의학적 치료법을 도출하는 근간인 한의학적 이론과 개념을 비과학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아낙시만드로스는 대기 현상을 신의 활동이 아닌 자연적인 원인으로 생각했다. 빗물은 태양열 때문에 증발한 바닷물과 강물이라고 정확히 기술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당대의 자연에 대한 사고에 대해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그의 저서에서 아낙시만드로스를 최초의 과학자라고 지칭하는데, 그 이유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이 과학적인 사고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은 절대 불변의 진리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지식을 찾는 것을 과학이라고 한다. 이전에 과학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이론과 관찰을 딛고 더 넓고 깊은 사고의 틀을 제공하는 것이 과학적인 사고하는 것이다.

한의학은 자연의 변함없는 현상을 관찰하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법칙을 도출하여 인체에 적용하여 발전해왔다. 한의학에서 사용했던 음양오행은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 시대에 인체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이다. 음양의 핵심은 자연 만물의 순환 체계인 상승과 하강(升降)이고, 그 현상은 뜨거움과 차가움(寒熱)을 통해 나타난다. 또한, 오행은 상승의 시작(木), 상승의 완성(火), 하강의 시작(金), 하강의 완성(水) 그리고, 상승과 하강의 변화를 조정하는 중재자(土)이다. 이는 자연 만물 변화의 핵심을 가장 단순하게 설명한 체계일 뿐이다. 인체에서는 한의학의 진단법인 망문문절(望聞問切, 얼굴의 색택과 체형을 보고, 인체에서 나타나는 소리를 듣고, 상태를 묻고, 맥진을 시행)을 통해 체액의 상승(땀)과 하강(소변), 수곡의 상승(소화)과 하강(대변)을 살펴 체내 순환의 불균형을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인체의 현상을 관찰해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징후와 증상의 관련성을 기반으로 여러 개의 단일 지표들이 나타내는 패턴을 파악한다. 패턴 분석을 통한 합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변증이라는 한의학적 진단 체계를 발전하여 왔으며, 개개인의 체질적 차이를 고려하여 치료에 적용한다. 한의학적 치료의 핵심은 개개인의 체질적 소인을 고려하면서 징후와 증상에 대한 변증을 통한 치료 (辨證施治)이다. 한의학의 변증시치는 개개인에 대한 맞춤치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같은 질환이라고 할지라도 개인의 증상과 체질에 따라 다른 처방을 사용하기도 하며, 다른 질환이라고 하더라도 동일한 처방을 사용하기도 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사는 지역, 먹는 음식, 계절에 따라 치료법을 달리 적용하기도 한다. 이는 인체의 요소들을 독립적인 객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상호 반응하는 기능적인 요소로 보는 특징이 있다.

현대 의학은 근거중심의학에 기반하여 표준 치료법을 만들고 이에 근거해 환자를 치료하면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개인의 특성에 맞춰 정밀하게 치료법을 제공하는 시대로 향하고 있다. 유전적 특성은 물론 가족력, 위험인자, 개인 고유의 병력 등을 종합해 그에 맞는 예방법과 치료법을 제시하게 되는 맞춤의료로 변화할 것이다. 게놈 시퀀싱 기술은 질병의 연관성과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이해하게 했고, 최신 기술은 근본적인 생물학적 질문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신규 게놈 기술은 정밀의학 치료법의 개발 속도를 향상시키고, 특정 동인에 맞게 치료를 조정하고 유전자 및 생활 방식과 같은 환자별 요인을 고려하여 적시에 적합한 치료법을 추천하게 될 것이다.

한의학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까? 가장 바라는 한의학의 미래 모습은 과학화와 글로벌화에 모두 성공하여 인류 보건의료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기술적 수준으로 분석 자체가 불가했던 한의학의 전인적 치료개념, 패턴 도출의 추론 체계, 체질 및 변증 진단의 핵심 지표 및 한약 고유의 다성분, 다표적에서의 약리학적 작용 등의 한의학적 이론은 의과학 미래 기술을 통해 규명되어 글로벌 통합의학의 표준이 되고, 관련한 융합연구를 주도하는 등 한의학의 국제적 영향력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한의학이 의학계는 물론 국제 시민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미래가 도래할 수 있다. 즉, 축적된 한의학 이론체계는 맞춤의학으로 변모하는 의학 패러다임 변화의 시대에 새로운 과학기술과 원활하게 융합하면서 이 시대에 합리적인 현대과학적인 언어로 해석되어 각국의 전통의학 중 가장 독보적인 기술 우위를 확보하게 되며 보건의료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의 치료의 근간인 한의학적 이론과 진단 체계의 과학적 규명을 놓치게 된다면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 부족이라는 비판이 지속될 것이고, 국민 신뢰도는 추락하게 되어 역사적 기록만 남게 되는 ‘추억 속의 한의학’으로 전락할 것이다.

한의학은 수천 년 동안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치료 의학으로써 자리매김해왔다. 질병을 바라보는 체계가 다른 서양의학 눈과 잣대로 한의치료기술을 평가하려는 짧은 시간 동안 한의치료의 본모습은 사라져 가고 있다. 의과학 기술의 발달로 근거 구축이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한의학적 체계와 이론이 조금씩 진면목을 보이고 있는 지금이다. 임상 현장에서는 체질적인 소인, 개개인의 생활습관,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고 인체에서 확보할 수 있는 징후와 증상을 관련성 있는 패턴으로 인식하여 치료하는 다양한 기술들은 한의학의 가치를 확인해주고 있다. 빅데이터, 다중오믹스분야,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등 4차 산업의 핵심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임상적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한의학의 핵심 이론과 개념을 재정비 해야할 때다. 전통 용어에 얽매여 한의학의 핵심 개념을 잃어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최선의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 중 첫 번째는 한의학 교육의 변화이다. 한의학적 이론과 치료 체계에 부합하는 한의치료기술의 임상적 가치를 최우선 기준으로 두고 기초한의학과 임상한의학의 융합 교육이 우선 이루어져야한다. 나아가 새롭게 변화하는 의과학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부, 대학원 및 수련 교육 체계를 정비해야한다. 두 번째는 최선의 미래로 갈 수 있도록 연구 방향을 설정하고, 지속적인 정책 및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BT,IT,NT 등의 기술 융합을 통해 한의 이론 및 기술의 특성을 반영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한의학적 이론 및 진단 체계에 대한 근거를 구축해 나가야한다. 정부는 한의학이 미래에 세계 의학을 주도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타분야와의 적극적인 융합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장기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