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 강 - 통렬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연약한 인간 그려낸 시적 산문이 도달한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업적

2024-10-14     박성래 기자

책을 읽고 산책을 마친 후 아들과 조용히 저녁 식사를 막 마친 오후 7시 50분 즈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알리는 전화였다. 이어진 수상자 발표에서 마츠 말름(Mats Malm) 스웨덴 한림원 상임 사무국장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South Korean author HanKang(한국의 작가, 한강)!”을 호명하고,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에 수상의 영예가 돌아갔음을 밝혔다.

소설가

 

 

폭력의 트라우마 이겨낸 인간상, 세계인의 마음 두드리며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세계문학의 주변부로 존재하던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부로 자리를 옮겼다. 한강 작가의 빛나는 성취가 한국 문학사에 뿌리 깊이 박혀있던 ‘노벨문학상 콤플렉스’를 말끔히 씻어냈다. 변두리 언어인 한국어로 쓰인 문학이 세계 보편성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폭력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인간상을 유려한 문체로 그리는 그의 詩적 산문이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린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전 세계 문학·출판계는 ‘깜짝 수상’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노벨상 위원회와 한 작가가 가진 7분간의 영어 인터뷰 영상에도 “놀랐다(Surprised)"라는 표현이 수차례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어떻게 축하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아들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여성, 아시아, 젊은 작가라는 겹겹의 핸디캡을 딛고 일궈낸 성과이기에 더욱 주목 받는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평가해 수상자를 정하는 노벨문학상의 특성상 60대 이상의 수상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유력 후보로 거론되어온 작가들 대부분 70대 이상이다. ‘한국의 젊은 여성 작가’라는 정체성이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당시 안데르스 올손(Anders Olsson)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그의 작가적 여정과 함께 주요 작품을 소개한 뒤 한 작가를 “현대 산문의 혁신가”라 칭했다.

일찍이 한 작가는 ‘최초’의 길을 걸어왔다. 2016년 이미 소설 ‘채식주의자’로 ‘아시아 작가 최초’의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스웨덴 노벨문학상과 영국 부커상, 프랑스 콩쿠르상 등 세계 3대 문학상 중 2개를 석권한 작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작가를 비롯해 8명뿐이다. 이처럼 영국 맨부커, 프랑스 메디치상 등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상당한 명성을 쌓은 한 작가이지만 그는 한국 문단 내에서도 ‘은둔형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작품 활동 외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는 일이 좀처럼 드물어서다. 오롯이 작품만으로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다다랐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소설가이자 시인, 미술가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해온 종합 예술가

한강 작가가 그려내는 투명하면서도 예리한 세계는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던 배경 위에 그려지고 있다. 한 작가는 1993년 시인으로, 1994년 소설가로 등단했다. 작품 집필에 있어서는 꼼꼼하면서도 친절한 완벽주의자로 알려졌다.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와 단편소설집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함께 낸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편집주간은 그가 소설 전개 방식부터 인물 묘사, 문체는 물론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 서체 변화까지도 꼼꼼히 챙긴다고 말했다.

또한 한 작가는 미술가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한 종합 예술가이기도 하다. 소설과 시뿐 아니라 비디오아트, 노래 등 분야를 망라하는 다양한 창작물을 선보여 왔다. 2018년 제57회 미국 카네기 인터내셔널에서 전시한 총 18분 40초 분량의 비디오 아트 ‘작별하지 않는다'(I Do Not Bid Faresell)에는 흰 천을 들고 눈 덮인 숲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또한 영화감독 겸 미술작가 임흥순과의 협업작 ’꿈의 대화‘(Dialogue of Dreams)가 함께 공개되었다. 앞서 2016년에는 국내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차미혜 작가와 함께 ’소실.점‘ 전시를 열었다.

한 작가는 자신처럼 문학과 미술을 넘나든 선배 작가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2012년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면서 석사 논문으로 천재 시인이라 불린 이상의 회화 작품들을 분석해 문학과의 상호 연관성을 연구한 ‘이상(李霜)의 회화와 문학세계’를 제출한 바 있다. 해당 논문을 통해 그는 “동일한 창작자가 창작한 회화와 문학 작품에는 필연적으로 공통 분모가 존재한다고 볼 때, 이를 발견하는 일은 창작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고 강조했다.

 

폭력과 트라우마 마주한 ‘불편한 작품’들이 던지는 질문

불편한 작품.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단어다. 그는 폭력과 트라우마의 세계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작품을 써내려왔다. ‘소년이 온다’를 출간한 이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 소설을 쓰며 거의 매일 울었다”며, “압도적인 고통으로 쓴 작품”이라 말했다. 4·3사건의 비극의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계기로 제주에서의 축하 인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한 작가는 수상 발표 후 노벨위원회와의 대담에서 “방금 당신을 알게 된 사람에게 어떤 책부터 읽으라고 제안하겠냐”는 질문에 “나의 가장 최근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답하기도 했다.

숱한 질문을 던지는 한 작가의 작품들은 초현실과 비의, 주술성을 바탕으로 상처를 그려낸다. 여성 등 소수자들이 던지는 질문 속에서 새로운 언어와 형식, 사상이 탄생한다.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열린 강연에서는 “우리는 다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기 때문에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라는 불완전한 도구를 통해 아주 깊이 내려가서 뭔가를 말하면 읽는 사람이 같이 깊이 내려와서 읽어준다고 믿어요”라는 말을 남겼다.

아주 깊이 내려가서 써내려간 불편하고도 고통스러운 이야기의 뿌리에는 한국의 통렬한 근현대사가 있다. 우리는 식민지와 전쟁, 분단, 냉전, 군사독재, 압축성장, 민주화, 극한 신자유주의라는 서사를 빠른 시간 내에 관통했다. 근대 세계가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역경을 다 거쳐 온 한국의 근현대사는 역설적으로 문학적 풍요의 근간이 된다. 그간 최인훈, 이청준, 조정래, 황석영, 박경리, 박완서, 오정희 등 작가들은 세계사적 모순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한국사회에 정면으로 맞서 혼신의 투쟁을 벌여왔다. 한 작가 역시 “한국 문학과 함께 성장했다”며,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한국 문학 독자와 동료 소설가에게 좋은 소식이 되길 바란다”고 전한 바 있다.

한국문학이 일구어 온 투쟁의 역사는 한국의 문화적 위상과 한국어의 높아진 국제적 소구력에 힘입어 세계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AP와 AFP통신 등은 한국 문학과 더불어 한국문화 전반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며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평했다.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두고 문화강국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또 한 번 입증한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한국어 텍스트를 영어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언어로 옮겨낸 번역가들의 공이 컸다. 이들은 각자의 언어로 한 작가 특유의 유려한 글과 슬픔이 어린 문장들을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고 세계인들에게 소개했다. 소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을 영어로 옮기고, ‘채식주의자’로 2016년 영국 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한강과 공동 수상한 데버라 스미스는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후 “한강은 이 소설이 독자들을 자극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모색하게끔 만들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번역가 이예원과 함께 ‘희랍어 시간’을 공동 번역했으며, 내년 미국과 영국에서 출간을 앞둔 한강의 2021년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도 공동 번역했다.

스페인어권 독자들이 ‘채식주의자’를 좋아할 거란 확신으로 번역한 윤선미 번역가는 “가부장제 특유의 보이지 않는 무형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라 해외 여성 독자들이 열광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즈는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 여성, 이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여성 작가들이 보여주는 글쓰기가 여전히 매우 가부장적이고 때로는 여성 혐오적인 한국 문화에 대한 일종의 ‘저항의 형태’라 보도한 바 있다.

 

현재를 돌아보고, 기억하는 문학...냉철한 시선으로 개인의 상처와 트라우마 그려간다

문학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사회를 돌아보고, 기억하고, 그려낸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일련의 사건들은 그렇게 문학의 자양분이 된다. 역사적 사건 속 개인과 집단이 겪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조명해온 작가의 감수성은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한강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실천하듯 수상자 선정 직후 모든 기자회견을 고사하고 놀라움과 감사를 담은 서면 소감만을 전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며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잔치를 벌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문은 시상식이 열리는 12월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낭독될 예정이다.

비록 떠들썩한 축하는 없을지라도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과거 창비에서 ‘소년이 온다’를 책임편집한 출판사 핀드 김선영 대표는 매체와의 통화에서 “이번 수상으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던 분들도 서점을 찾을 테고 그것으로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한국문학 시장에 활기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과연 이번 수상 소식은 ‘한강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연일 서점가에 책을 구매하고자 늘어선 진풍경을 자아냈다. 아침부터 ‘오픈런’과 ‘품절 대란’ 속 판매량이 수천 배까지 급증한 소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등의 물량 확보를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 국내 주요 서점에서는 한 작가의 수상 소식이 알려진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관련 책 3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대학 도서관과 지자체 운영 도서관에서는 그의 책을 대여하려는 예약이 몰려 ‘대출 불가’ 상태에 이르렀다. 작가가 운영하는 서촌의 작은 책방은 쏠리는 인파에 잠시 문을 닫았다. 미국, 유럽 등 해외 서점가에도 ‘한강 돌풍’이 인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목록과 매대는 한 작가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 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책을 읽은 성인은 10명 중 3명에 불과하며, 학생들의 문해력 부족 문제가 화제가 된다. 종이책이 사라지는 시대에 전해든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독서 열풍’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시대, 더 좋은 글들이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리는 시대라는 결실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