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인물 유지연 기자] 국립보건연구원은 보건의료 분야의 유일한 국립연구기관이다. 질병관리청 소속의 정부연구기관으로 감염병 진단, 치료, 백신 등 예방기술개발, 심혈관과 뇌질환 등 만성질환 관리기술 개발 등 질병에 대한 연구와 함께 유전체와 줄기세포연구 등 첨단의료기술 개발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립보건연구원은 1945년 조선방역연구소에서 출발하여, 1963년 국립방역연구소, 국립화학연구소, 국립생약시험소 및 국립보건원을 통합하여 이루어진 연구기관으로 1967년 국립보건연구원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했다. 1981년 국립보건원으로서 감염병에 대한 관리 즉 방역과 연구를 동시에 시행하다가 2004년 질병관리본부가 출범하면서 질병관리본부는 질병에 대한 예방과 관리, 국립보건연구원으로 연구기관으로 개편되었다.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명칭의 변동과 관련 기구들의 조정을 경험하며 격동의 변화를 거듭해 온 국립보건연구원은 2024년 현재,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장을 필두로 감염병과 만성병에 대응기술뿐 아니라 정밀의료, 인공지능 연구 등 첨단의료기술을 이용한 연구로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월간인물 11월호 인터뷰로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원장님의 소개와 함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립보건연구원장 박현영입니다. 월간인물 독자분들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2005년 유전질환과장으로 처음 국립보건연구원에 들어온 후 심혈관‧희귀질환과장, 유전체센터장, 미래의료연구부장을 거쳐 2023년 국립보건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의학을 전공하고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에서 전임의를 마친 후 심혈관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공직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원장님께서 취임하신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국립보건연구원(이하 보건원)에서 진행한 주요 활동 내용과 더불어서 대표적인 사업성과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 연구조직으로써의 위상 정립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2000년 9월 질병관리청 개청과 함께 국립감염병연구소, 연구기획조정부 등 조직이 확대되었으나 코로나19에 대한 현안 대응으로 연구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이제는 코로나 팬더믹 상황이 안정화된 만큼 연구조직으로써 고유 미션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각 부서에서는 미래 사회에 대응할 중장기 연구를 기획하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국립보건연구원의 역할과 주요 기능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자체 연구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중요한 연구인프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과 병원체자원은행은 인체유래물과 병원체자원을 확보하여 국내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립인체자원은행의 경우 중앙은행운영 외에도 국내 35개의 인체유래물은행을 지원하여 국내 연구자들이 이미 확보된 자원을 활용하여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데 23년 말까지 5,000개 이상의 연구과제에 대해 지원하고 있으며 규모 면에서도 국제적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줄기세포재생센터에서는 임상 등급의 줄기세포 생산을 지원하고 있고 백신연구개발지원센터에서는 연구자와 산업체에서 개발한 백신 효능평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국립의과학지식센터에서는 국내에서 생산된 보건의료분야 보고서와 논문의 서지 정보 등을 취합하여 일반인에게 제공하고, 또 보건의료연구정보센터에서는 보건의료분야 연구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제하여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국립보건연구원에서는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합니다.
국립보건연구원에서는 코호트를 비롯하여 연구개발과정에서 중요한 데이터들을 생산하고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 자원들을 수집단계에서부터 정보제공자의 동의를 확보하고 일차연구목적을 달성 후에는 국내 연구자들에게 개방하도록 내부 규정을 재정비했습니다. 유전체역학조사 사업 등 개방된 자원은 국내 수천 명의 연구자들에게 제공되어 생산된 논문만 1,000편이 넘습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의 시대에 맞추어 국립보건연구원은 질 높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데이터 개방에 대해 더욱 적극 앞장서겠습니다. 또한, 유전체 정보를 활용한 정밀의료서비스 기반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유전체염기서열 분석기술의 발달로 기술적으로는 누구나 수십만 원 이하의 저비용으로 유전체 정보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영국 등 일부 국가들에서는 이미 의료서비스 현장에 전장유전체염기서열 분석을 도입하였습니다.
도입된 전장유전체염기서열분석 데이터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요?
보건원에서는 전장유전체염기서열분석 데이터를 활용한 희귀질환 진단뿐 아니라, 중증신생아 유전자진단 연구, 이차적 발견에 대한 국내 임상가이드라인 개발, 한국참조유전체지도 작성 등 곧 현실화 될 정밀의료시대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민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한국인 칩을 개발하여 기술 이전을 하고 있는데 한국인칩 v2.0은 국립보건연구원이 약 20년간 축적한 한국인 유전체 정보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개발되어 다양한 질환에 대한 임상 진단과 약물 대사 등 유전변이를 담아 정밀의료 연구 효율성을 높이고 DTC에 활용될 수 있도록 제작되었으며 올해에도 10개가 넘는 민간기업 등에 기술이전을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성차의학연구를 기획하여 내년부터 2개 질환군에 대해 성차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차의학이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생리학적 차이가 질병 발현, 진행, 치료 반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간의 보건의료 연구에서 간과되어 온 영역이기도 합니다. 성별 차이를 이해하면 남성과 여성 모두 각자의 독특한 생물학적 특성에 맞는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별 건강에 대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두 성별 모두에 대해 보다 효과적이고 맞춤화된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연구는 어떤 분야인지 궁금합니다.
내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합니다. 국립보건연구원에서도 국립노화연구소 설립 등 보다 건강한 사회(Healthy aging)를 만들기 위한 연구에 집중하려 합니다. 최근 국립노화연구소 설립 추진단을 구성하였습니다. 보건원에서는 그간에도 노화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인프라를 확보해 왔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일반인을 비롯한 질환자들의 장기추적조사를 통해 생활습관 등을 포함한 임상 정보와 자원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자원들은 이들에서 생체적 노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자원입니다. 최근 이들 자원을 활용하여 노화와 관련된 유전자와 단백체 변화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쇠코호트, 도시농촌 어르신 연구 등 노화 연구에 필요한 중요한 자원들을 이미 확보하고 있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구축한 노화 및 노쇠 관련 코호트 데이터 및 인체유래물 자원은 국내 보건의료 연구자들이 한국인 특이적 노화 패턴, 기전, 유전적 요인에 관한 심층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연구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립보건연구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계획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립보건연구원은 보건의료분야의 정부연구기관으로 미래 사회에 대비하고, 신종 감염병과 기후 변화 등 새로운 위협에 대비한 연구개발, 그리고 건강 취약계층과 건강 불평등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 사회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기술로 모든 환경이 급변하고 있으며 의료서비스 영역에서도 원격진료, 디지털기술의 접목으로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환자) 중심의 서비스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이 안전하고도 효과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고품질의 데이터 확보뿐 아니라 그 기술의 유용성과 표준화 등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단 치료제 기술개발에서도 인공지능기술이 접목되지 않는다면 국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병원체에 대한 정보를 가장 우선으로 확보할 수 있고 또한 국내 코호트의 대부분을 확보하고 있는 기관의 장점을 살려 감염병과 정밀의료 영역에서 민간연구기관들과 협력하여 우리 국민들에게 최적화된 미래의료기술이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둘째, 새로운 건강위협에 대응한 연구를 강화할 것입니다. 감염병에 대한 진단, 치료, 백신 기술개발은 우리 기관의 고유업무이기도 합니다. 미래 팬더믹에 대한 대비를 위해 치료 및 백신 후보 물질들이 지속적으로 개발할 뿐 아니라 mRNA 백신플랫폼 기술개발 지원 등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생산역량강화를 통해 백신 국산화와 더불어 국제 사회의 안녕에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기후 변화 또한 거대한 건강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건강연구도 추진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셋째, 건강 취약계층과 건강 불평등에 관한 연구로 보다 많은 국민이 건강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희귀질환의 경우 전통적으로 민간투자가 어려운 영역으로 보건원에서 연구를 지원해온 영역입니다. 이 외에도 늘고 있는 이주여성 등의 건강에 대해서도 보건원에서는 건강 이슈 발굴을 위한 실태조사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만성병이라 하더라도 대상에 따라 그간 관심을 받지 못한 영역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간은 성인 당뇨병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다면 소아, 노인, 임신성 당뇨 등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던 영역에 보다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보건원에서 추진하는 정밀의료 연구 등 첨단의료 기술로 인한 혜택을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의료접근성 등 건강 불평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정책연구도 병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넷째, 보건원은 정부 연구기관으로 많은 인프라와 자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원과 시설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개방할 뿐 아니라 국내 및 국제기관, 대학, 민간기업 간의 협력 연구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국내 보건의료연구의 혁신을 이끌고 우리나라가 보건의료강국이 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보건원이 우리나라의 건강한 미래를 열어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양한 계층의 국민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연구를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원장님의 원동력이 있으셨나요? 더불어 그간 분야에 몸담아 오시며 전개하신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지도 듣고 싶습니다.
국립보건연구원에 근무한 기간이 20년이 되어 갑니다. 제가 공직에 있으면서 늘 고민한 것은 미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었고, 그것이 정해졌을 때 핵심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그간 많은 일들을 추진하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임상에서의 경험, 연구뿐 만이 아니라 기획, 정책 등 다양한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간 보람있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2006년부터 2017년 희귀질환관리법 통과와 질병관리본부에 희귀질환관리과가 생기기 전까지 희귀질환 진단기술개발과 지원, 의료비지원사업 개편, 지역거점병원 및 임상연구네트워크사업, 헬프라인 개발 등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을 하면서 의료인으로서도 많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국내 임상연구의 정보 공유와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임상연구정보시스템을 개발하여 국제 사회와도 공유하였고, 얼마 전 상표등록이 된 임상연구자료관리시스템(iCReaTⓇ)을 직접 개발, 보급하여 국내 대부분의 연구기관에서 활용하고 이를 통해 데이터 관리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데이터 공유의 필요성을 알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보건의료자원정보센터(CODA)를 설립하여 국내 연구자들에게 빅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기도 하였습니다. 보건원 내 국립의과학지식센터를 건립하고 보건의료분야 국내 서지를 비롯한 보건의료정보 자원들을 국내에 보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국내 극소저체중아 레지스트리를 통해 미숙아들의 생존율을 향상시키고, 중증신생아들에서 유전체분석으로 일부에서는 진단과 치료를 통해 상태가 좋아지는 것들을 지켜보면서 연구를 통해 근거 제시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서비스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2025년도 국립보건연구원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첫째,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국립노화연구소 설립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자 합니다. 그간 축적해왔던 노화 관련 연구 인프라를 더욱 강화할 뿐 아니라 국립노화연구소가 추진해야 할 핵심연구아젠더를 발굴하고 구체적 실행계획 수립과 더불어 조직과 인력, 시설 확보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수립하겠습니다. 둘째, 기관 차원에서 그간 해왔던 데이터 공유의 확대와 더불어 첨단바이오데이터 생산과 공유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입니다.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는 46만 명이 넘는 질 높은 인체 자원 등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최근 오믹스 등 다양한 분석기술이 개발되어 소량의 혈액으로도 수천 개의 단백체 등을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민간에서 활용도가 높은 자원들을 중심으로 첨단바이오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생산하여 보급함으로써 국내 관련 연구기술 개발과 이를 활용한 서비스 개발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현재 KBP 5기 기획을 추진 중이며 내년 초에는 보다 구체적 실행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셋째, 감염병 분야에서 인공지능 등 첨단바이오기술 개발의 접목을 위한 공동, 협력 연구의 추진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질병청에서는 2025년부터 mRNA백신 플랫폼 개발 지원사업이 추진됩니다. 플랫폼 개발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변이가 발생하는 코로나, 조류인플루엔자 등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는 백신 항원 개발 등을 위해서는 인공지능과 이를 학습하기 위한 데이터가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보건원 내 공동연구뿐 아니라 국내 관련 연구자와 기업들과 협력 연구를 강화해 가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관련 분야 종사자분들이나 월간인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어떤 말씀일까요?
인공지능부터 정밀의료까지 신기술의 등장으로 보건의료서비스(헬스케어)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의료 서비스 개발과 제공자는 협력하고 신기술의 힘을 활용함으로써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의 요구에 맞추어 가야 합니다. 이제는 연구와 기술개발 등 나 혼자 열심히 해서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우리의 미래는 지속적인 혁신과 협력을 효과적으로 하느냐 하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혁신과 협력은 의료의 미래를 위한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특히 보건의료영역은 건강보험 등 공공재적 특성이 강합니다. 따라서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은 연구, 혁신, 의료 서비스 제공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파트너십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국립보건연구원은 민간과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여러 기관에서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