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Now] “죽지 않고 일할 권리”와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 산업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중대재해처벌법
[Monthly Now] “죽지 않고 일할 권리”와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 산업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중대재해처벌법
  • 김민이 기자
  • 승인 2022.06.2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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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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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시행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1월 27일부터 6월 22일까지 건설업과 제조업 등 전 업종에서 247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한 달간 50여 명, 매일 한 명 이상의 사망자가 꾸준히 발생해온 셈이다. 안전한 일터를 지키기 위한 법안이 마련되었음에도 여전히 현장에서는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외친다. 중대재해법 시행 후 5개월간 중대재해법이 적용되어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은 81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11건에 그쳤다.

 

사업주의 안전 관리 의무 강조하며 억울한 희생 막고자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산업재해, 시민재해를 야기한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터에서의 죽음을 더 이상 노동자 개인의 몫으로 떠넘기지 않고 사업자의 책임을 묻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안전 관리 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노동자들의 희생을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된다는 산재사망 유가족의 절절한 호소가 스며있다. 산업재해와 관련해 산재 전문가들은 상충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 개인의 과실과 사업자의 안전 관리 책임이라는 두 입장 사이의 균형을 강조한다.

2017년 4월 정의당 故 노회찬 의원의 첫 발의 이후 4년만인 지난 1월 8일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같은 달 27일 전면 시행되었다.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은 ‘중대재해법 처벌 1호 기업’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한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건설업계는 중대재해법 시행 첫날 명절 연휴를 연장한다는 취지에서 현장 공사를 멈추며 숨을 골랐다. 현장 내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조직을 개편하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철강업계는 퇴직자들을 현장 전담 안전관리자로 채용하며 현장 안전을 챙겼다.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안전보건경영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점은 긍정적 변화다. 노사 모두 산업재해 예방을 비롯한 안전보건경영에 더욱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반면 인력과 비용의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안전 강화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93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8.7%가 법을 이해하지 못해 중대재해법에의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대기업(300인 이상)의 경우 86.7%가 전담인력을 두고 있지만 중기업(50~299인)과 소기업(5~49인)은 각각 35.8%, 14.4%에 그쳤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사측에 대한 처벌은 대폭 강화되었으나 사고 예방 효과는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에 따르면 1분기 사고사망자는 전년동기 대비 8명 감소한 157명이다. 하청업체 소속 직원들은 여전히 산재 사망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지난해 전체 사망자 수의 80%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였으나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은 2024년 1월까지 유예되었으며,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사후 처벌 아닌 ‘예방’에 초점 맞춘 안전 관리 시스템 마련 필요해

중대재해법 시행 후 5개월, 처벌이 아닌 안전 투자 확대와 근로자의 안전 의식 개선 등 안전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사고 예방이 아닌 사후 처벌 강화만으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안전 규정을 고의로 위반하여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6개월 미만 징역에 처하는 미국과 고의·반복적으로 안전 규정을 위반하여 근로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에 처하는 독일 등 주요국 대비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준이 과도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예방보다 처벌에 초점을 두고 사업주에 과도한 책임을 지운다는 비판이다.

현재의 중대재해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1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시행했는지 따져보고 그렇지 않다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망자 1명 이상이 발생하면 사업주에 대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중대재해법이 대상으로 하는 중대재해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와 동일한 개념이지만 동일 위법행위에 대한 법정형만을 대폭 높인데다 기준이나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와 노동계의 대립구도 양상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노동계는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기업과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기에 강력한 처벌이 수반될 때 비로소 산재국가라는 오명을 떨칠 수 있다고 말한다.

중대재해법이 모호한 기준으로 현장에 혼란을 가중하며 기업의 부담만을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처벌 대상 등 세부 내용에 대한 법령 해석과 관련한 의견이 분분하다. 6월 20일 전경련은 ‘실효성 제고를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건의’를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 경영책임자 범위와 의무내용을 명확히 하고, 과도한 처벌수준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입법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도마 위에 오른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에 초점 맞춰야

윤석열 정부는 6월 16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7월부터 경영책임자 의무 명확화를 위한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6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실효성을 높이고 제도 취지를 살리는 방안에서 지침을 고치고, 부족하다면 시행령을 개정해 의무를 명확히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했다. 새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중대재해법에 관한 개정 논의를 공식화해왔다.

윤 정부의 親기업 행보에 발맞춰 여당인 국민의힘은 최근 경영책임자 처벌을 감경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사업장에 작업환경 표준을 적용하고, 예방 감지 관련 정보통신 시설을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경우 처벌 형량을 줄여주는 내용 등이 담겼다. 안전 확보에 충분한 조치를 취해도 재해 발생 시 과도한 처벌로 인한 억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경제활동 위축, 기업 활동 위축을 가져오지 않을 정도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개정에 힘을 실었다. 다만 여소야대 국면인 만큼 법 개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중론이다.

이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재계, 노동계 등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각계의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다. 재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힌 반면 노동계는 반발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법을 무력화하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공개적으로 규탄했다.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둘러싼 각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지금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본질이다. 중대재해법은 시행 취지 그대로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법안이다. 각 기업의 상황을 고려한 기준과 현장 직원들의 참여와 실천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자율안전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며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감소시키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과 기업, 정부는 일터에 나간 가족구성원들의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지키는데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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