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인물 유지연 기자]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함께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동맹’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반도체 기업에 투자 경쟁이 국가별 반도체 공급망 패권 전쟁으로 번지는 가운데 서울시립대학교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김윤 교수는 ‘지능형 반도체 기술’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그는 지능형 반도체 기술이 지금까지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되리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메모리반도체 분야 원천기술 확보부터 상용화 이끈 주역
전자공학 분야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한전자공학회가 주관하고 해동과학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제31회 해동젊은공학인상에 김윤 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그간 메모리 반도체 관련 다양한 원천기술을 확보하는데서 나아가 상용화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은 결과다. 김 교수는 실리콘 기반의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 소자, 공정, 회로, 시스템 등 다방면에 걸친 융합 연구 역량을 보유한 전문가로 알려졌다. 2016년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7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우수 피인용 논문상, 2018 부산대학교 신진연구자상, 2020·2021 서울시립대학교 강의 우수 교수상 등을 수상했다.
“대학원생 때는 반도체 소자 및 공정을 연구했고, 삼성전자 재직 기간에는 Flash 설계팀에서 회로 및 시스템을 연구했습니다. 덕분에 소자, 공정, 회로,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었죠. 현재 상용화된 3차원 적층형 NAND 플래시 메모리 기술 발전에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3차원 적층형 NAND 플래시 메모리가 상용화되기 전인 2011년 김 교수가 대학원생 시절 발표한 논문 ‘Three-Dimensional NAND Flash Architecture Design Based on Single-Crystalline STacked ARray’는 Google citation 기준 214회 인용되며 학계로부터 인정받았다. 특히 학술 논문임에도 124개의 특허에서도 인용되는 등 3차원 적층형 반도체 기술 개발의 원천기술 확보에 일조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재직 기간에는 3개의 특허기술을 개발했으며, 이 또한 현재 양상 중인 메모리 반도체 제품에 활용되고 있다.
김 교수는 학생 시절 서울대학교 박병국 교수, 이종덕 교수, 이종호 교수, 신형철 교수 등 여러 은사들로부터 깊은 지식과 연구자로서의 자세를 배웠다며 감사를 전했다. 더불어 삼성전자 재직 중에는 경계현 사장과 송기환 상무, 이진엽 전무 등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로부터 반도체 기술과 리더로서의 자세를 배웠다며, 그간 여러 스승과 선배들로부터 받은 가르침과 좋은 영향력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며, 앞으로도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반도체 산업의 게임체인저 될 ‘지능형 반도체 기술’ 연구
“반도체는 전자산업의 쌀이라 불리며 중요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차세대 반도체 소자 및 회로의 공정, 설계, 분석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한 반도체 기술에 집중하고 있죠.”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인공지능이 주목받는 가운데 차세대 반도체 소자 연구실을 이끄는 김윤 교수는 인공지능을 저전력, 고성능으로 구현할 수 있는 ‘지능형 반도체 기술’ 개발에 힘을 싣고 있다. 그는 지능형 반도체 기술 연구를 위해서는 소자뿐 아니라 공정, 회로, 시스템, 소프트웨어 등 광범위한 지식이 요구된다며, 연구실 학생들이 소자 외에도 회로 및 시스템 설계와 딥러닝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메모리 반도체 산업계 전문가인 채동혁(前 SK하이닉스 연구위원) 연구원, 인천대학교 구민석 교수와의 협력 연구를 진행하며 기술 발전을 이끌어간다. 김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지능형 반도체 기술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공지능에 적합한 차세대 컴퓨팅 시스템 개발에 성공한다면 이는 기존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뒤엎을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 내다봤다.
현재 단순한 수준의 인공지능은 스마트폰에서도 구현이 가능하지만 알파고와 같이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의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십 대 이상의 CPU·GPU가 포함된 컴퓨터가 필요하다. 그는 세기의 대결로 불린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이세돌은 약 20W의 소비전력을 사용하지만, 알파고는 약 17만W의 소비전력을 사용한 셈이라며, 학생들과 우스갯소리로 이는 공정한 대결이 아니라는 대화를 나누곤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공지능을 구현하는데 큰 에너지가 소모되는 이유는 현재의 컴퓨팅 시스템과 인공지능의 동작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에 적합한 차세대 컴퓨팅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가능케 할 지능형 반도체 기술은 반도체 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반도체 산업과 기술은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로 양분되어 발전해왔지만,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은 두 분야를 융합하는 기술인 까닭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만 국한된 반쪽짜리 1등이라며, 지능형 반도체 기술에서 앞서나간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반도체 1등 국가가 될 것이라 단언했다.
‘실용화’에 방점 찍는 공학, 연구와 교육, 봉사의 균형 이루며 기술 발전에 기여해
“우리나라가 반도체 분야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기에 박사과정을 마친 후 해외로 나가기보다 삼성전자라는 기업을 택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연구에 보탬이 되는 것은 물론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실질적 조언을 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죠. 실제로 삼성전자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김윤 교수는 자연과학과 공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학이 실제 활용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실제 산업 현장에서의 개발 업무는 모든 공학도가 반드시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 또한 삼성전자에서 실제 제품 개발 연구를 진행했던 경험을 통해 기술 로드맵 수립 능력과 그 기술의 실제 활용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 교수가 느끼는 학교와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연구 간 차이점도 컸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연구들은 주어진 큰 주제 아래 세부적인 목표나 방법을 자유로이 설정이 가능하며, ‘독창성’의 관점에서 평가되는 반면 회사의 경우 목적과 방법이 명확히 정해져있다. 제품의 타겟 성능과 품질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 제품에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그는 회사에서의 연구는 독창성이라는 관점보다는 각 기술이 갖는 장단점에 대한 완벽한 분석이 중시된다고 말했다. 일찍이 자유로이 연구를 펼칠 수 있는 교수라는 길을 택했던 김 교수에게 기업체에서의 경험은 큰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그는 삼성전자 재직 당시의 메모리 반도체 분야 연구 경험을 토대로 지능형 반도체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에서의 경험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취업 과정부터 연구원이나 엔지니어로 근무 시 중요한 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하죠.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지만 궁금한 점이 있다면 학생들이 언제든 찾아와 1:1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죠.”
젊은 교수로서의 청사진도 제시했다. 기회가 닿는 한 적극적으로 대내외 활동에 임하겠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교수가 되기 전에는 교육과 연구가 교수의 직무라 생각했으나 대내외 봉사 또한 교수에게 주어진 중요한 직무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현장실습지원센터장을 역임하는 외에도 대한전자공학회 상임이사, 반도체공학회 학회 운영위원, 한국반도체학술대회 공동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학계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단순한 지식전달자 아닌 롤모델 꿈꾸며 스승의 뒤 따를 것
새로이 시작된 한해 김윤 교수는 플래시 메모리 기반의 지능형 반도체 기술을 지속할 계획이다. 관련 핵심 원천기술들을 차근차근 확보한 후 이를 토대로 창업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다. 그는 학생들과 성장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더욱 발전된 연구 목표를 매년 설정해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조금씩 발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연구 결과를 내어놓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였다. 본격적 연구를 위한 준비를 끝낸 만큼 2022년은 보다 수준 높은 연구를 수행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만의 꿈과 목표를 가슴 속에 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목표를 향한 갈망과 끈기임을 강조하는 그다. 김 교수는 이러한 생각을 담아 자신의 좌우명인 ‘꿈을 밀고 나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강의 자료에 인용하며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도중 타인들과의 비교와 경쟁으로 낙담하기보다 과거의 자신과만 비교하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것을 강조하는 그다.
“저의 자기소개서에는 ‘단순한 지식전달자가 아닌 미래의 주인공들에게 꿈과 열정을 심어줄 수 있는 롤모델이 되겠다’라는 다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학생들에게 저의 꿈과 열정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죠.”
김 교수는 차세대 반도체 소자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교과서에 인용되는 미래를 그렸다. 이는 자신의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이 인류의 삶에 작게나마 공헌했음에 대한 방증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나아가 지능형 반도체 관련 기업을 창업하고, 궁극적으로는 표준화된 지능형 반도체 플랫폼 원천기술을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저의 지도교수님이신 박병국 교수님과 이종호 교수님은 제게 열정은 나이와 상관없음을 몸소 증명해주신 분들이에요. 제가 두 분을 존경하듯 저 또한 제자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스승이 되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은 도전이겠지만 이러한 목표를 품고,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저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끝으로 김 교수는 반도체 1등 국가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함을 피력했다. 반도체 기술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일조하는 바가 큰 만큼 지금의 자리가 흔들린다면 국가적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그는 그간 수많은 엔지니어와 연구자, 교수, 학생들이 반도체 기술 발전을 위해 묵묵히 노력해왔다며, 최근 중국 등의 맹추격이 이어지는 만큼에 이들에 대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줄 것을 당부했다. 교단에서 제자들을 만나고, 차세대 반도체를 연구하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태는 김 교수의 노력은 우리나라가 반도체 세계 1위 자리를 공고히 다지기 위한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