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인물 유지연 기자] 환자 관리와 치료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법이 등장했다. 몸에서 작동한 후 녹아 사라지는 임시 심장박동 조율기가 그 주인공이다. 이전에도 ‘녹는 전자기기’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됐으나 이를 의료 디바이스로 구현해낸 것은 ‘생분해성 물질 기반의 무선 심장박동 조율기’가 세계 최초이다. 융합 연구를 통해 완성해낸 생분해성 물질 기반의 무선 심장박동 조율기가 심장질환을 넘어 만성질환까지 그 적용 범위를 확대하며 진단과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존 임시 심장박동 조율기의 한계 뛰어넘은 ‘생분해성 물질 기반의 무선 심장박동 조율기’
2023 보건산업 성과교류회 대통령 표창의 주인공은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최연식 교수였다. 세계 최초로 체내에서 녹아 사라지는 임시 심장박동 조율기(temporary cardiac pacemaker)를 개발한 공과이다.
심장 수술 후 회복 기간을 보내는 환자와 심혈관질환 증세를 보이는 응급환자, 선천적 심장병을 앓는 영유아 등의 느리거나 불규칙적인 심장박동을 정상 상태로 유지시켜주는 전자장치인 임시형 심장박동 조율기는 현재 가장 범용되는 신체 삽입형 의료장비 중 하나이다. 삽입형 전극이 피부를 관통하여 심장과 체외 조작장치를 연결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외부에서 잡아당기는 간단한 수술만으로 삽입형 전극을 제거할 수 있어 단기간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조는 그 자체로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삽입형 전극을 통한 감염의 위험, 환자가 자세를 바꿀 때 삽입형 전극이 심장에서 빠질 위험, 삽입형 전극 제거 과정에서의 단선 및 심장 조직의 손상, 천공 형성의 위험 등이다. 이와 같은 뚜렷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보다 안전한 치료를 위한 완전히 새로운 구조의 임시형 심장박동 조율기 개발이 절실했던 이유이다.
최 교수가 이끄는 생체전자재료연구실(Bioelectronic Materials Lab)은 세계 최초로 차세대 심장 치료 장치인 ‘생분해성 물질 기반의 무선 심장박동 조율기’를 개발하며 의학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고효율의 무선 에너지 전달 방식을 통해 삽입형 전극 없이 체내에서 무선으로 구동이 가능하고, 피부 부착형 무선 센서와의 연동 방식을 적용해 빠른 퇴원 및 일상생활에서도 자동으로 진단 및 치료가 가능하며, 체내에서 무해하게 녹아서 사라지는 특성으로 인해 추가 수술 없이 치료를 종료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 교수는 새로운 의료장치가 심혈관질환 환자 치료 과정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신소재 활용해 미해결 난제에 대한 해답 구하는 생체전자재료연구실
최 교수가 이끄는 생체전자재료연구실은, 기존 임상에서 소재 및 소자의 문제로 인해 해결되지 않던 여러 이슈에 대한 해답을 다양한 신소재에서 찾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몸속에서 전기적으로 작동하여 질병을 치료한 후 녹아서 없어지는 전자장비인 ‘전자약’을 개발하는데 무게를 싣는다. 기존 치료방법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존에 시도되지 못하던 새로운 치료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우리가 약을 먹으면 약이 몸속에서 작용한 후 녹아서 사라집니다. ‘전자약’ 또한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자장비이지만 몸속에서 작동한 후 없어진다는 새로운 개념이죠. 심장박동뿐 아니라 다른 질병을 해결하거나 새로운 치료법을 제안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최 교수는 몸에서 녹아 없어지는 전자약을 이용해서 만성질환을 해결하겠다는 비전을 그렸다. 해당 기술을 만성질환의 조기 진단 및 치료에 적용할 경우 입원과 치료를 위한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회·국가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다. 그는 ‘고칠 수 없고 유지만 할 뿐인’ 만성질환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질병이 아니기에 분명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질병 발생 후 치료라는 측면에서의 연구가 활성화되어 있으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만성화 과정을 확인하고, 질병이 만성화되기 이전에 치료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만성질환자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더불어 녹는 전자장비의 크기를 줄이기 위한 연구도 이어간다. 전자약의 크기를 주사기를 활용해 체내에 삽입할 수 있을 만큼 소형화해 활용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생분해성 물질 기반의 무선 심장박동 조율기 개발 이전에도 이미 10년 전에 발표된 ‘녹는 전자장비’라는 컨셉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의료분야에 이러한 개념을 접목한 것은 최 교수가 최초이다. 탁월한 아이디어임에도 의료분야에 적용해 인체에 접목되기까지, 작동의 안정성은 물론 인체 무해성 등 넘어야 할 난관이 많았다. 녹아서 없어진다는 불안정성과 안정적 작동이라는 모순된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해서다. 최 교수는 신소재의 관점에서 이러한 한계 극복에 도전했다. ‘녹는 전자장비’라는 컨셉을 의료분야에 구현한 이번 연구가 세계적 주목을 받는 이유다.
생분해성 물질 기반의 무선 심장박동 조율기가 탄생하기까지 신소재공학, 의학, 전기전자공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 연구가 필수적이었다. 최연식 교수는 처음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소통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들과 생각의 관점이 다르다 보니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어도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으로 인해 일의 진행이 늦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에 최 교수는 대면 소통이라는 돌파구를 택했다. 공동 연구를 할 때마다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대화에서 나온 내용은 다음 만남 전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했다. 또한, 대학에 열린 타 학과 수업을 수강하며 다양한 전공 분야에 대한 이해를 넓혀 나갔다. 자신의 비전을 상대방의 언어로 설명함을 통해 팀을 이끌어가고자 노력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매우 큰 효과를 발휘했다. 말이 통하는 리더를 만난 각 분야 전문가들이 팀에 빠르게 녹아들었고, 더 나아가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의 성공적 수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최 교수 연구팀의 성과는 Science, Nature Biotechnology 등 세계적인 저널에의 출판으로 이어졌다. 최 교수는 재료의 안전성과 치료 효능 등을 점검해가며 최종적으로는 창업에 도전해 해당 기술의 상용화를 이끌어간다는 계획을 전했다.
미국 국립 보건원(NIH)으로부터 인정받은 가능성, 한국의 기술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
생분해성 물질 기반의 무선 심장박동 조율기에 관한 연구는 최연식 교수에게 2021년 미국 국립 보건원(NIH)에서 신진연구자에게 수여하는 가장 큰 상인 Pathway to Independence Award(K99/R00)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이는 뛰어난 성과와 높은 잠재력을 보유한 신진연구자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2년의 박사후연구원 기간은 물론 교수가 된 이후 3년간의 연구를 지원하고, 대형 과제 심사에도 특혜가 부여된다. 특히 의학이나 바이오 분야 연구자에게 주어져 온 것과는 이례적으로 신소재공학을 전공한 최 교수의 수상은 보건의료기술 연구 분야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성과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미국에서 자신이 수행하고자 하는 연구에 대한 가치와 잠재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Pathway to Independence Award 수상 이력을 가진 것만으로 교수로 임용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최 교수에게도 많은 권유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큰 연구비를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든 그는, 미국에서 이렇게 주목하고 투자하려는 연구를 한국에서 수행해 한국의 대표 기술로 발전시키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그런 그에게 국내에서는 의공학 연구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섞인 조언을 건네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최 교수는,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많은 정부 부처의 지원과 세브란스 병원이 있는 연세대학교에 부임한 덕분에 감사하게도 자신이 하고 싶던 의료장치 연구를 마음껏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대중이나 학생들은, 한국 정부가 바이오산업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고 있는지 한국의 바이오 연구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왔으며 얼마나 성장해갈 것인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현재 보건복지부와 정부가 추진 중인 다양한 바이오 관련 사업과 성과에 대한 더 많은 홍보가 이루어지고, 수많은 의사와 연구자, 기업의 노력이 더해져 바이오산업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 줄 수 있는 기술 연구로 ‘선한 영향력 있는 사람’ 되고파
“어릴 적부터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어왔습니다. 제가 그리는 영향력이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제가 가진 것을 사용해 아픔을 가진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힘이죠.”
오랜 시간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온 최연식 교수는, 의학전문대학원으로의 진학을 고민하던 대학교 3학년 때 그에게 건넨 외할머니의 조언이 자신의 길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의사였던 외할머니는 의사가 되어 사람을 직접 고치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전공을 살려 공학자로서 사람들을 고칠 수 있는 신약이나 의료 디바이스를 만드는 것도 또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길임을 말씀해주셨고, 최 교수는 그 조언 덕분에 공학자의 길을 선택해 현재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실제로 도울 수 있는 기술이나 제품을 만드는 것이 최 교수의 가장 큰 목표인 만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최첨단 연구를 수행하는 그의 연구주제들 또한 실용성과 상용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 교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구’를 통해 사람을 살리고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메시지 또한 ‘가치’에 방점을 찍는다. 최 교수는 학생들에게 20년 후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를 그려볼 것을 주문하곤 한다. 그 모습이 되기 위해 현재의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고민해보라는 조언과 함께이다. 최 교수는 경쟁과 물질만능주의가 심화되고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잘 알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최 교수 스스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장차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이 자신만의 가치를 세상의 기준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응원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최 교수는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자신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연세대에 부임한 지 아직 1년 남짓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200명 이상의 학생들과 만나 함께 바른 가치에 대해 고민하며 꿈을 꾸어온 그다. 최 교수는 앞으로도 학생들의 빛나는 꿈에 동참하고 싶다고 말했다.
꿈을 꾸고, 이를 현실화해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공학자로서의 삶. 그리고 이에 더해 학생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교수로서의 삶에서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는 그다. 꿈을 꾸는 최 교수와 그의 꿈에 동참한 젊은 인재들의 발걸음이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