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지식인이 도덕적 기준을 만족하길 바란다. 이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직업을 가졌다면 그만큼의 책임감을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분야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가할 줄 알고 명망을 끝까지 지키는 지식인이 많은 사회를 꿈꾸고 있다. 자만하지 않고 미래를 보며 노력하고 뒤를 돌아보며 나눌 줄 아는 이 시대의 참된 지식인, 신승회계법인 천준범 회계사를 월간인물이 만났다.
공인회계사가 되기 위해 배운 실력과 됨됨이
“다들 어떻게 알고 연락을 주셨어요. 별거 아닌 일인데 조금 쑥스럽더라고요.” 멋쩍은 듯 웃고 있는 천준범 회계사. 최근 모교인 충남대학교에 신축도서관(창조학술정보관)을 위한 발전기금 2,000만 원을 기탁했다. 앞서 지난 2016년에도 충남대학교 경상대학에 장학기금 1,000만 원을 전달했다. 졸업생이 모교에 꾸준히 기부하는 희생을 보기란 흔치 않기에 많은 이들이 천 회계사의 선행 소식을 반기고 있다. IMF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1998년, 그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사립대보다 등록금이 저렴한 충남대학교 회계학과에 입학했다. 합격 통보를 받은 그는 짧은 방학을 이용해 학과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학원에서 상업계 고교생과 함께 상업부기를 배웠다. 친구들은 공부에서 해방됐다는 자유를 느꼈지만 부모님께 성실함을 물려받은 그는 시험 합격에 온 시선이 몰려있었다. 충남대학교 회계학과 학생이 된 후에도 그의 철저함은 계속됐다. 캠퍼스를 누비는 낭만 대신, 공강 시간에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곤 했다. 1학년을 마치고 바로 입대한 군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하며 틈틈이 회계 공부를 병행했고, 오직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을 위해 20대의 청춘을 바쳤다. 그는 “그때의 저는 목표의식이 강한 청년이었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스케줄을 버티려면 동기부여가 필요했지요. 부모님께 하루빨리 떳떳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수업시간에 받는 가르침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를 가르쳤던 노준화 교수는 “회계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아서 꾸준히 직접 써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현실적인 조언을 들려주었다. 노 교수에게 배운 대로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춰 나갔다. 임학빈 교수는 그에게 대선배이자 롤모델이다. 충남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해 모교에서 전임교수로 발탁된 임 교수를 보며 그는 꿈을 키웠다. 임 교수는 그에게 한 분야를 선택했다면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확실하게 정신무장을 했고 당당히 공인회계사가 되었다.
본보기가 되는 공인회계사의 삶, 정직함과 실력으로 클라이언트 신뢰 높여
듣던 대로 공인회계사의 삶은 쉽지 않았다. 야근과 밤샘근무도 부지기수였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공인회계사가 됐다는 기쁨은 찰나였다. 밀려드는 업무가 태산이지만 그는 자신만의 인생관으로 척척 헤쳐 나갔다. 국가가 인정하는 시험에 합격했다는 타이틀은 현장에서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는 “‘자격증을 울타리로 믿고 살면 조금씩 도태되고 안주하게 된다. 공인회계사라는 직업을 프리미엄 라이선스로 생각하면 안 된다’라는 조언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기업의 회계감사를 맡으면 고객사에게 냉정하게 보일 때도 있어 감정적 노동이 따를 수밖에 없음을 체득했습니다”라며 후배들을 위한 행보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공인회계사가 된 후에도 세상은 제게 냉정했습니다. 시험에 붙었다는 자부심은 절대 오래가지 않더군요. 어느 날 문득 모교에서 운영하는 공인회계사 시험 대비반이 생각났고, 충남대학교를 졸업한 공인회계사의 가치를 높이는 길은 가까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고시반이 잘 운영돼 후배들이 공인회계사로 우뚝 성장하는 것이 저를 포함해 현역에서 활동하는 선배들에게 진짜 힘이 되는 것 아닐까요.”
공인회계사를 준비하면서 긴 터널을 지나올 때의 심정을 잘 알기에 그는 두 번의 쾌척이 선배로서 할 일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기회가 된다면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역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실무에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하고 싶다고. 모교 교단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열심히 공부해 비교적 빨리 공인회계사가 되었으며 전국 규모의 신승회계법인에 근무하는 그를 보면 ‘승승장구’라는 말이 떠오르지만 그 역시 현장 패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해마다 세법은 바뀌어 늘 공부하고 고객은 개인적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상속세·증여세를 비롯한 각종세금 관련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기업을 회계 감사할 때 적용하는 매뉴얼을 바탕으로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회사 문화와 사업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그에게 회계는 늘 새로운 것이다. 동료들과 자유로운 주제로 회의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여러 방면으로 쌓은 실무 경력으로 그는 세무 컨설팅과 재무 컨설팅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이 회계세무업계에 미칠 영향은 분명하다. 회계세무에서 창조적인 사고력을 바탕으로 하는 컨설팅만이 앞으로 공인회계사가 살아남을 길이다. 그는 후배를 아끼는 마음처럼 고객사를 진심으로 대한다. 자신과 인연을 맺은 회사가 투명한 경영과 절세 등으로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기쁨이다.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받은 에너지를 사회에 돌려주는 마음이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그는 바람직한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펼쳐질 그의 행보를 함께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