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한반도는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해야 했다. 굶는 서민이 없는 나라.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은 그동안 부끄러운 민낯을 숨겨왔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을 인정하면서 지나치게 편의를 봐줬던 사회. 잘못된 부의 축적이나 비리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어선 기쁨도 잠시, 샴페인을 일찍 터뜨리지 말자. 당면한 조세 현안을 외면하지 말고 정면 돌파해 투명한 대한민국, 모두가 잘사는 대한민국을 건설하자. 지금 회계업계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이슈다.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대기업 분식회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대기업의 수출 성장세가 대한민국의 경제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대기업이 호황을 맞이하면 국내 경기가 살았다. 반면 대기업이 삐걱거리면 서민 경제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경제 규모 면에서 선진국을 앞지르지만 질적인 면에서 뒤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 전문가는 대기업의 잘못을 하나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동안의 그릇된 관행을 함축한 사건이 대우조선해양의 분식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 여부에 대한 최근의 논란이다. 성실하게 납부의 의무를 다하던 국민은 세금부담의 형평성에 불만을 토로했고 개미 투자자는 피눈물을 흘렸다. 더는 묵과할 수 없다.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나서서 잘못된 것을 지적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대기업으로 일컫는 특수한 지배구조가 존재하지만 기업집단 내 특수관계자 간 소득이전을 통한 조세회피나 기업가치 증감 문제를 의미 있게 다룬 연구가 전혀 없습니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나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조세회피 문제처럼 실무적 함의가 있고 이슈가 있는 문제에 눈을 돌리고 재벌의 특수관계자 거래 유인에 대한 연구를 확장해야 합니다.”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약 1년 6개월에 걸쳐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소득이전과 조세회피’에 대한 연구를 마친 고종권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공인회계사)는 “기업집단이나 대기업에 대해 많은 논쟁을 벌이지만 의외로 회계학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해 재벌의 계열사 거래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라고 꼬집었다. 주주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적 거래를 하고 부진한 계열사를 지원하면서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가 수없이 지적돼왔다. 회계업계에서 기업의 절세를 돕는 것은 정당하지만 탈세에 해당하는 조세회피를 묵인하거나 수수방관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이 떠안는다. 국민 경제의 기둥인 대기업이 부실하면 제2의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회계업계가 단결해 대기업과 재벌이 정당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할 시기다. 고종권 교수는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지나치게 지원하는 과정에서 조세 절감이 발생하는데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수위일 때도 있다. 국민의 눈에 조세회피로 보인다면 정책 방향을 재검토해야 한다”라며 “지나치게 특정 기업에 의존해왔던 경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조세 혜택의 형평을 유지해야 한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대기업 조세혜택 부여 여부에 의미있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대기업에 횡행한 조세회피 막을 연구 시작돼
고 교수는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소득이전과 조세회피’ 연구를 진행하며 대기업의 계열사 거래 자료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여론이 흐르는 방향에 부합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국내 상장기업의 해외 자회사에 대한 매출·수익 거래와 매입·비용 거래를 수집하여 세부적으로 분석한 결과, 조세피난처 자회사와의 매출·수익 거래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경우 조세회피가 발생하는 반면 매입·비용 거래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경우 조세회피와 반대로 국내 과세기반을 강화하고 세수 증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특히 현금유효세율을 이용한 조세회피 측정치와, 재무제표 주석에서 수집한 특수관계자 자료를 이용하여 국내 상장기업이 조세피난처 자회사와의 거래를 통해 소득을 이전하고 조세부담을 낮추는지 여부를 분석함으로써 기업들이 조세피난처를 이용하여 소득을 이전하고 조세회피를 수행하는지 여부에 대한 실증 증거가 됐다. 그는 매출·수익 거래와 매입·비용 거래 간 상반되는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추후 별도의 연구를 통해 규명할 예정이다. 이 논문은 완성 단계에 있으며 SSCI Journal 투고를 위해 영문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수관계자 거래 금액이나 조세회피 측정치는 상용 DB에서 제공하는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재무제표 주석 정보를 이용하여 직접 자료를 추출해 검증했습니다. 25년간 회계학 연구에 몸 바친 저의 모든 노하우가 농축된 연구입니다. 회계업계에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연구가 절실한 지금 제 논문이 기폭제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조세피난처의 광범위한 활용은 장기적으로 국내 과세기반의 지속가능성을 잠식하고 과세 형평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정부도 이 점을 인식하여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 탈세 적발에 나섰다. 회계업계가 국민에게 다가가고 중소기업을 살리는 사명감을 다해야 할 지금 그는 심기일전하여 오는 5월에 열리는 한국회계학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1995년에 교수가 된 이후 한국회계학회의 회계학연구 논문상(2014년), 회계저널 논문상(2013년), 한국세무학회 논문상(2000년)을 받았고 국내 사회과학 분야에서 피인용률 등 기준에서 가장 우수한 연구재단 등재지로 평가받는 한국회계학회의 회계학연구 편집위원장(2016년 ~2018년)을 맡아 봉사하는 등 세무회계 분야 연구에 한 획을 그은 그가 우리 사회의 부름을 받고 응답했다.
학계와 회계산업 간의 상호 이해를 높여야
사회적 문제인 조세회피나 분식회계에 대한 문제점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회계학계가 회계법인, 한국공인회계사회와 같은 회계업계와 상호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정부와 회계업계 간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그는 공인회계사로 근무한 경험을 통해 회계 실무를 이해하고 있으며 금융위원회 감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부와 회계업계 간 의견 차이가 꽤 벌어졌음을 인식해 회계학계가 세부적 조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참여했고 지금도 공공기관의 경영을 자문하는 전문가로 활약하면서 국민과 정부가 한국회계학회에 거는 기대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는 회장 출마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 “회계업계와 학계 간 상호 이해의 장을 마련하는 한편 선배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지금 세대가 확장해 발전시키고 후학에게 물려주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국민은 한국회계학회가 교육-연구-산업 간의 정합성을 유지하면서 정부 정책의 서포터로 나서길 기대하고 있다”라고 답하면서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버겁고 불가능하다. 학문의 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Big data 공유를 위한 Knowledge Base System을 구축하고 산학 연계 방식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교육 내용을 개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부 기업이 일으킨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적 이슈에 대한 연구를 강화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회계교육에서 PBL이나 Flipped Learning 등의 교육방법에 대한 표준(prototype)을 제시해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리고 XBRL(eXtensible Business Reporting Language) 형태의 연구자료 공유를 통해 기본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가 회계 연구에 매달린 최종 목표이자 꿈이다. 회계이론이 책 밖으로 나와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세상이 이미 그의 손끝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