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소 등 인프라 확보 관건
전세계적인 기후위기 도래로 환경 관련 관심이 크게 높아진 가운데 정부의 수소자동차 등 친환경차 보급 확대 정책의 성공 여부에도 귀추가 쏠린다. 지난 정부에 이어 현 정부 역시 국내 친환경차 보급 확대에 궤를 같이하면서 수소차 등 전환에 사활을 걸 전망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수소차 등 친환경 교통체계로 전환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고, 이를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최근 세계 최초 ‘수소법’의 국회 통과와 함께 친환경차 관련 투자가 활성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소비자들이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느끼는 충전소 설치 등 관련 인프라 구축이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전기차 더불어 수소차 관심↑
정부 등에 따르면 오랜 기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초미세먼지 발생을 저감하기 위한 조치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차량을 수소·전기차로 전환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대표적 정책 중 하나가 지원금 제공이다. 수소차 관련 올해 국고보조금은 2,250만 원, 지자체 지원금은 최소 1,000만 원에서 1,750만 원에 달한다. 지자체 상황에 따라 최고 4,000만 원까지 지원받아 수소차를 구입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수소차 판매 실적은 미미한 상황이다. 실제 올해 1분기 현대차 넥쏘의 국내 판매량은 1,414대로, 전년 동기 대비 14%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넥쏘 판매량은 2만 대에 접근조차 못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처럼 수소차 판매가 예상외로 부진하자 정부는 관련 예산까지 대폭 삭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환경부는 수소 승용차 보급 목표를 기존 2만 7,650대에서 1만 7,650대로 수정하고, 예산도 당초 대비 2,250억 원 감소한 6,677억 6,900만 원으로 조정했다. 수소차 인기가 시들한 이유로 수소충전소 등 인프라 부족이 가장 첫 번째로 꼽힌다. 수소충전소가 적은 이유 중 하나로 일반 주유소 대비 막대한 건축비용과 수소 폭발 가능성에 따른 주민들의 안전 우려 등이 지목되는 상황이다. 또한, 예상과 달리 수소차 실적이 저조하다 보니 정부와 별개로 지원 중인 지자체의 수소차 관련 보조금도 남아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업계에 따르면 수소차 보조금 사업을 진행 중인 전국 113곳 지자체 가운데 보조금 신청이 마감된 곳은 27곳에 그쳤다. 신청이 10대 미만인 곳도 28곳에 달했다. 올해 전체 보급사업 물량이 400대인 대구는 여전히 320대 수준 남았으며, 춘천도 295대 중 240대가량이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청주·부산도 200대가 넘는 물량이, 서울 역시 500대 모집에 여전히 190여 대가 각각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종 친환경차인 전기차 시장이 인프라 확충 등을 등에 업고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진입 초기 수소차 인프라 구축의 신속한 시행착오 극복은 시급한 과제로 읽힌다.
아울러 현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의지와 국회의 입법 뒷받침,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투자 등을 고려하면 글로벌 트렌드로 부상한 ‘블루칩’ 수소차 성장 전망은 여전할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 에너지 부문에 ‘지속적인 수소경제 구축’을 핵심으로 담았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안정적 청정수소 생산·공급기반을 마련해 세계 1등 수소산업을 육성할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대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 ‘제28차 세계가스총회(WGC)’에서 “수소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변화와 혁신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수소 생산 기반을 확보해 안정적인 수소 공급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입법 차원의 보완작업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수소경제 육성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수소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이번 수소법 개정안은 청정수소·수소발전 등 정의를 규정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한 전반적인 수소산업 확대를 골자로 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청정수소 생산·수입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등 배출량에 따라 청정수소 등급별 인증제를 도입한다. 또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를 도입해 수소구매사업자가 법령에 정한 기준에 따라 수소발전량을 의무적으로 구매·공급한다는 내용 등도 포함했다.
이처럼 새 정부가 수소산업 육성 의지를 확인한 데다 제도 기반도 마련된 만큼, 공공 협력을 기반으로 민간의 사업실현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수소산업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롯데그룹의 ‘통 큰’ 투자가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기존 석유화학 기업에서 수소·배터리·고부가가치 소재 등을 아우르는 종합화학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120만 톤 규모 청정수소 생산을 목표로 수소 사업에 총 6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미 롯데는 국내 수소 유통 물량의 20%, 암모니아 공급 70% 이상을 각각 공급하면서 업계에선 수소 사업에 유리한 기반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는 수소차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상용차 수소 충전소 구축사업을 영위하는 에어리퀴드코리아와의 협력이 대표적 사례다. 롯데케미칼 60, 에어리퀴드코리아가 40으로 각각 지분 출자해 올해 7월 법인을 설립한 뒤 충전소 설치 등 수소차 관련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SK E&S도 수소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혀가고 있다. 최근 블루수소와 그린수소의 중간 단계인 ‘청록수소’의 사업성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청록수소는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아 블루수소 등과 함께 친환경 청정수소로 분류된다.
SK E&S는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청록수소 상업화에 성공한 미국 모놀리스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데 뜻을 모은 상태다. GS에너지는 탈탄소 수소경제 시대의 ‘원유’로 평가되는 블루암모니아 확보에 나섰다. 이에 작년 말 GS에너지는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의 블루암모니아 개발사업 지분 10%를 확보하는 등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외에 한화, 두산, 현대차 등 대기업군 전반의 수소 관련 투자 계획에도 관심이 쏠린다.
업계, ‘통큰’ 투자…정부, 방향설정 관건
지난 약 1년간의 부진을 시행착오 삼아 수소차 등 수소산업의 새로운 출발점을 맞기 위해선 정부 등 공공영역에서의 역할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목표 하향조정에 따른 일괄적인 예산 삭감이 아니라 새로운 수요처 발굴 등 사업 다각화에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수소차 인기가 시들한 데는 소비자들이 친환경차 시장에서 수소차 대비 전기차를 더욱 선호한다는 데 착안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 관련 인프라는 빠른 속도로 확충된 반면, 수소차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인프라 확충과 함께 수소차 관련 보조금의 사용처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직 시범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수소 상용차에 예산을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소트럭이나 수소버스 등이 해당한다. 일반 수소차는 물론 수소 상용차에 대한 지원은 보조금의 사용처를 더욱 확대해 예산 활용에 숨통의 틔울 수 있다. 여기에 정부가 수소 충전소 등 관련 인프라 구축 확장에도 더욱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 즉각 수요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일각에서 정부가 시내버스 등의 수소차 전환 계획 등을 구체화할 경우 충전소 확대 등 수소차 인프라 관련 구체적 사업 전략이 제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