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삶에 매몰된 현대인에게 ‘번 아웃’이란 고질병같다. 소진된 영혼을 끌고 쉬었다 갈 수 있는 휴식처가 어디 있을까. 이에 황보름 작가는 자신의 숨을 붙어 넣은 주인공 ‘영주’를 통해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휴남동 서점’을 만든다. 이곳에서는 크고 작은 상처를 숨긴 채 평범한 척 살아가는 어떤 사람도 진정한 휴식을 맛볼 수 있다. 마음을 둘 곳이 없을 때, 휴일의 평화를 느끼고 싶을 때, 이 책을 펼쳐보자. 책을 펼치면 영주가 우리를 따스하게 맞이해줄 것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안녕하세요, 월간인물 독자분들께 작가님 소개와 더불어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맥주도 마시고 운동도 하며 살고 있는, 황보름이라고 합니다. 월간인물 독자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하셨지만, 공대생이셨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신 지는 오래되지 않으셨잖아요. 혹시 어떤 부분에서 창작의 매력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나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문장은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진다는 거였어요. 문장 관련 책을 찾아보며 제가 쓴 문장 뜯어보는 재미에 푹 빠졌고요. 문장을 다듬으며 알게 된 것도 있어요. 아무리 다듬고 다듬어도 나를 벗어난 문장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이요. 좋아하는 작가님의 문장을 아무리 읽어도 그처럼 쓸 수는 없더라고요. 나처럼만 쓸 수 있는 거지요. 소설을 쓰면서는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았는데요.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글을 통해 이야기가 완성되는 과정 전체가 매우 재미있었어요. 신기하기도 했고요. 모두 소설 써보세요.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면 다음 이야기가 또 머릿속에서 전개된답니다.
대기업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다 번 아웃을 느끼던 중 서점을 열게 된 주인공 영주. 작가님과 닮은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이 소설을 쓰시고, 영주를 만들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소설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휴식’이라서, 열심히만 살다가 삶에서 많은 것을 놓쳐버린 인물을 생각해내야 했어요. 그때 영주가 떠올랐어요. 회사 인간으로 살아가며 쉬지 않고 일만하다가 한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린 인물. 이 인물이 다시 처음부터 자기 자신에게 맞는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저도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 소설을 쓰던 시기엔 저도 많이 지쳐있었어요. 작가가 되겠다고 방에 틀어박혀 글만 썼는데, 몇 년이 지나도 길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길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기도 했고요. 그때 영주의 삶을 그리며 ‘그래, 나에게도 내게 맞는 삶이 있어.’라고 열심히 스스로를 토닥였던 것같아요. 나도 영주처럼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요.
민준이나 승우가 주인공인 이야기였어도 수긍했을 것 같아요. 인물들의 생생한 상황 설명도 그렇고 모든 캐릭터가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참고하신 실존 모델이 있었을지, 이러한 소설 속 캐릭터들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실존 인물은 없어요. 민준이의 경우엔 삼십대 초반 바리스타라는 설정으로 우선 시작했는데요. 그의 전사를 쓰기 시작하며 ‘민준이는 명문대 나온 취준생’이라는 설정을 떠올렸고, 그러자 그 뒤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풀려나갔어요. 취업만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눈 앞에서 문이 닫혀버린 청춘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그의 삶을 내내 응원하며 쓰게 되었고요. 승우의 경우엔 좀 독특한 조합을 주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공대생’과 ‘작가’ 조합은 눈에 좀 띄죠? 승우를 작가로 설정하면휴남동 서점이 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확장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어요. 승우가 작가인 덕에 영주가 서점을 자리잡게 하는데 그녀의 글쓰기 실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으니, 승우는 정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답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집필하시면서 애정이 가거나 가장 공을 들여 쓰신 작성하신 문장이 있었을지요?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다가가면서 마지막 문장에선 무엇을 말해야할까 고민이 되었는데요. 고민을 하며 첫 챕터 마지막 문장을 보니 “오늘 하루가 시작됐다.”더라고요. 영주가 하루를 열며 소설을 시작했으니 영주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소설을 끝내면 좋을 것같았어요. 그렇게 생각해낸 문장이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소설 마지막 문장 꼭 읽어주세요!
작중에서 영주가 승우에게 꼭 묻고자 했던 질문이 있었는데, 저도 작가님께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작가님과 작가님의 글은 얼마나 닮았나요?
승우처럼 대답해보겠습니다. “오늘 받은 질문 중에 가장 어려운 질문인데요.” 사실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데, 받을 때마다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무래도 글엔 저의 이상이나 추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제가 글보다 못한 경우가 많아요. 생각없이 툭툭 하게 되는 말이나 행동들이 제 일상에 그득 고여있고요. 그럼에도 열심히 (그게 무엇이든) 조심하려는 점,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점, 상대에게 친절하려하고 동시에 그들과의 적절한 거리를 지키려는 점 등등은 제 글에서 보여지는 저이고, 또 실제 제가 지켜내려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제가 쓴 글처럼 살아내려 노력하고 있으니, 저와 제 글은 좀 닮은 것 아닐까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게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사회가, 주변 사람들이, 본인 스스로도 나에게 주지 못했던 위로를 이 책을 통해 받으시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리뷰를 읽다 보면 ‘친구에게 선물로 줬다’,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다’라는 글을 자주 읽게 돼요. 휴남동 서점을 선물하는 의미가, ‘나는 너를 응원해’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응원이 필요한 이 시대에 응원같은 책이어서 사랑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한 작품을 완결내는 것도 그렇고, 글을 끝까지, 또 계속해서 쓰는 것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작가님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계속 쓰다 보면 글을 더 잘 쓰게 될지 몰라, 하는 희망 때문인 것 같아요. 글을 잘 쓰고 싶어요. 그래서 계속 씁니다.
일을 하시면서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 감사했던 순간, 혹은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찼던 사례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공모전 수상작이 되었다며 메일을 받았을 때가 기억나요. 회사에 앉아 있다가 메일을 받고는 몇 번을 다시 읽어봤어요. 소설이 수상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전혀 없었던 터라 많이 놀랐어요. ‘출품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라며 과거의 저를 칭찬도 해줬고요. ‘그게 무엇이든 시도해봐야 한다, 시도하기 전엔 결과를 모른다’라고 또 한 번 깨닫는 계기도 되어 주었고요.
열심히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번 아웃’은 어쩔 수 없는 고질병 같습니다. 영주라면 자신과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책을 추천해줄지 궁금합니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해줄 것 같아요. 차분히 앉아서 지난 삶을 돌아보고, 앞으론 어떻게 살지 생각도 해볼 수 있는 책이면서 다른 형태의 삶을 꿈 꿔볼 수도 있는 책이요.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이 함께 쓴 <조화로운 삶>, 어떨까요. 도시를 떠나 버몬트 숲에 직접 집을 짓고 스무 해를 산 부부의 이야기에요. 숲 속에서 니어링 부부가 찾은 의미와 가치를 곱씹다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실 거예요.
어린 시절에는 전업 작가가 되시리라고는 상상 못하셨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자라오시면서 계획한 적 없었던 지금이지만, 만족스러우실까요?
전 작가가 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글을 쓰다 보니 글 쓰는 게 참 좋았어요.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기까지는 매우 힘들고, 또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 또한 매우 힘들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는 하루, 글을 쓰는 삶은 너무 좋더라고요. 다시 전업작가로 돌아온 요즘, 그래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동안 작가님께서 공대, 대기업, 영어학원, 여행사, IT회사, 에세이 및 소설 집필 등 다양한 도전을 해오셨기에 앞으로도 하고 싶으신 것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이 휴식일 수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황보름 작가님이 가진 앞으로의 꿈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체력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체력이 좋아야 친절할 수 있는 것처럼, 체력이 좋아야 글도 쓸 수 있거든요. 몸 여기저기에 근육을 심어 놓고 그 근육의 힘으로 문장 하나, 하나를 정성들여 쓰고 싶습니다. 오래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