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타깃을 구별해주는 형광물질 활용해 ‘암’을 넘어 ‘노화’의 원인과 조절인자 발굴에 도전한다
특정 타깃을 구별해주는 형광물질 활용해 ‘암’을 넘어 ‘노화’의 원인과 조절인자 발굴에 도전한다
  • 문채영 기자
  • 승인 2023.04.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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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태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교수·기초과학연구원 복잡계 자기조립연구단 부연구단장

생물학에서는 노화를 죽음을 가져오는 질병으로 이어지는 퇴화 과정이라 본다. 생명 활동에 필수적인 단백질과 핵산 등에 축적된 손상에 대한 치유능력이 노화의 속도를 결정짓는다. 최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10대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에 세포 역노화(플랫폼 바이오)를 선정하기도 했다. 형광펜 긋듯 특정 타깃을 구별해주는 형광물질을 이용해 암세포를 식별해내고, 폐식용유를 검출하는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며 ‘형광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을 얻은 장영태 교수. 그는 그간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형광물질을 이용해 노화의 비밀을 밝히는데 도전했다.

장영태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교수·기초과학연구원 복잡계 자기조립연구단 부연구단장 / 사진 박성래 기자
장영태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교수·기초과학연구원 복잡계 자기조립연구단 부연구단장 / 사진 박성래 기자

 

 

만 개에 달하는 형광물질로 구축한 ‘형광 라이브러리’ 활용한 센서와 프로브 개발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장영태 교수가 일본 국제유기화학재단(IOCF)으로부터 요시다상(Yoshida Prize)을 받았다. 유기 형광물질을 활용해 살아있는 세포를 구분하는 프로브(probe)를 개발하고, 그 작동 원리를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세계적인 유기화학자 요시다 젠이치 교토대 명예교수가 설립한 재단인 IOCF는 2015년부터 유기화학 발전에 기여한 학자 1명을 선정해 매년 요시다상을 수여하고 있다.

장 교수는 형광물질을 활용해 세포 내 표적단백질 규명을 체계화하고, 만 가지 형광물질로 ‘형광 라이브러리’를 구축한 형광물질 연구자이자 60개가 넘는 특허를 보유한 유기화학 분야의 권위자로 잘 알려졌다. 포항공과대학교에서 학사·석사·박사과정을 마쳤으며, 미국 뉴욕대,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교수를 거쳐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돌아왔다. 특히 사막에서 바늘을 찾아내는 것만큼 어려운 화학유전학 분야의 난제로 알려진 ‘생리활성분자의 타깃 단백질 규명’의 열쇠를 찾아내는 획기적 기술을 개발하고, 형광 라이브러리를 이용한 센서 및 프로브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이러한 기술은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는 GHB 마약센서 개발에도 적용되며 영국 BBC 등 외신에 소개되기도 했다. 장 교수는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의 부연구단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세계적 화학지인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의 국제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외부 변수에 대비해 다양한 항체를 만들어냅니다. 불과 수백 개의 유전자를 재조합해 수백만 개가 넘는 항체를 만들어서 인체에 침입한 적에 대응하죠. 이를 조합 과학(Combinatorial Science)이라 부릅니다. 저의 연구 역시 이러한 접근법에서 착안하여 여러 개의 분자를 조합해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응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박사과정에서는 분자 합성을 시작해 존재할 수 있는 인산 이노시톨의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만들었죠. 이렇게 모든 경우의 수를 포함하는 집합체를 ‘라이브러리’라고 합니다. 각각의 조합을 레고블록처럼 만들어둔다면 이를 활용한 조합 접근 방식으로 새로운 물질의 개발 속도를 훨씬 앞당길 수 있으리라 확신했습니다.”

장영태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교수·기초과학연구원 복잡계 자기조립연구단 부연구단장 / 사진 박성래 기자
장영태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교수·기초과학연구원 복잡계 자기조립연구단 부연구단장 / 사진 박성래 기자

 

형광물질과 라이브러리를 접목하며 단일그룹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 형광 라이브러리 구축해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피터 슐츠 교수의 화학생물학 연구실을 찾았던 장영태 교수는 수백, 수천 개 수준의 작은 크기의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방법과 활용법을 익혔다. DNA 유전물질을 이루는 퓨린(Purin)기를 연구해 라이브러리를 구축한 것 또한 이때였다.

3년간 UC버클리와 스크립스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2000년 뉴욕대학(NYU) 교수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연구 주제를 발굴했다. 퓨린과 짝을 이루는 피리미딘 연구의 시작이었다. 당시 장 교수는 1만여 개에 달하는 피리미딘 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 피리미딘을 생체에 집어넣어 타깃으로 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찾아내며 분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연구하기 위함이다. 장 교수는 이러한 연구를 낚시에 비유했다. 낚싯대에 분자를 매달아야 하는데, 자칫 그 과정에서 물질의 활성을 잃을 수 있기에 어려움이 따랐다. 이에 보다 효율적인 연구법을 고민하던 그는 ‘링크 달린 라이브러리(Linked Library)’를 착안했다. 낚싯줄에 해당하는 링크를 미리 달고 라이브러리를 만들어 나중에 링크를 붙일 자리를 찾는 노력을 덜어낸다는 아이디어였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5~6년 새 10개의 타깃 물질을 찾아낸 것은 물론 조기 정년심사(tenure) 통과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찾아낸 작은 분자의 타깃이 다 합쳐서 10개 정도였던 시절이었다.

정년심사를 통과한 장 교수는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그간 구축해온 라이브러리의 개념을 형광물질에 적용한다면 색깔에 민감한 우리 눈의 특성을 활용해 센서나 이미징 프로브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그다. 형광물질은 세포의 핵과 세포질, 미토콘드리아 등의 세포 내 소기관을 구별하기 위해 활용되어왔으나, 끈적끈적한 성질을 갖고 있기에 많은 수를 빠른 속도로 합성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형광물질을 이용할 방법을 찾던 장 교수는 당시 범정부 차원에서 과학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던 싱가포르국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뉴욕대에서 1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하던 실험실 규모는 싱가포르에서 많게는 48명까지 늘었다. 이후 장 교수 연구실은 단일그룹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형광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형광 라이브러리에 기반해 물질의 독성, 마약, 산패유 등 특성을 알아내기 위한 센서를 개발하거나 각 조직 세포나 암세포 등 체내 세포를 구별하는 프로브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30여 종류의 세포 구별법을 찾아냈다. 화학세포학 분야에서는 암 줄기세포만을 추적하는 형광물질을 개발해 주목받기도 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할 때 형광물질을 활용하면 여러 세포가 섞여 있는 상황에서도 제거하고 싶은 암세포만 육안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사람의 세포 기능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암세포 등 원하는 세포만을 변별해낼 수 있도록 하는 툴로서의 형광물질을 만들어내고, 각각의 작동원리를 규명한다면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발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프로브의 위치와 기전을 단서로 삼아 다른 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만을 죽이는 등의 활용도 가능하죠.”

'독수리 오형제' 컨셉으로 촬영한 실험실 단체사진
'독수리 오형제' 컨셉으로 촬영한 실험실 단체사진

 

작지만 단단한 조직 바탕으로 ‘노화’의 비밀 밝혀낼 것

장영태 교수가 몸담았던 UC버클리의 피터 슐츠 교수 연구실은 그의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당시 UC버클리의 실험실은 40여 명의 박사후 연구원을 보유하며 미국에서도 규모 면에서 톱클래스에 드는 연구실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형광물질이라는 연구 주제를 결정하고, 연구실 운영철학을 가다듬었다.

“박사후연구원 시절 한 동료가 세포 이미징 분야를 연구하고 있었어요. 눈에 잘 보이지 않던 세포에 색을 입히면 육안으로 구분이 가능한 것은 물론 세포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죠. 그 모습에 매력을 느껴 생물학과 형광물질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형광물질이 다양한 활용성에도 일부에 국한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죠.”

싱가포르국립대학에서 40여 명의 연구원들과 함께 연 40억 원 수준의 연구비를 사용하는 연구조직을 이끌었던 장 교수는 포항공과대학교에 돌아온 후에는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대규모 연구팀보다 작지만, 단단한 조직을 택한 것이다. 현재 장 교수는 10명이 채 안 되는 규모의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남은 연구 기간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중요성이 큰 타깃 물질 발굴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장 교수는 지금까지의 연구가 연습과정이었다면 이제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새로운 주제를 파고들 때라 말했다.

장 교수가 주목하는 다음 연구 주제는 ‘노화’이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노화를 질병으로 보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11번째 ‘국제질병분류’에 노화를 포함했으며, 미국 하버드대 의대 유전학 교수인 데이비드 A. 싱클레어 교수는 저서 <노화의 종말>에서 노화는 질병이라 선언했다. 장 교수는 노화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물론 노화를 거꾸로 되돌리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또한 기초연구를 수행하며 노화라는 분야를 이해하고, 향후의 활용을 위한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간 수많은 세포를 다루어온 경험에 비추어볼 때 노화는 다른 질병에 비해 너무나도 쉬운 타깃입니다. 세포의 노화 과정에 프로브를 대입해 적합한 형광물질을 찾아내고, 그간 연구해온 메커니즘을 적용한다면 노화된 세포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찾아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판단됩니다. 노화를 관찰하는 바이오마커, 혹은 노화를 조절하는 바이오마커만 찾아낸다면 노화 조절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응용법들을 발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센서와 프로브의 플랫폼이자 놀이터 될 ‘센프로’, 마지막 순간까지 연구 즐기는 연구자 되고파

지난해 8월 장영태 교수는 ‘센프로(Sensors&Probes)’를 설립했다. 센서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빠르게 맞춤 센서를 제공하고, 특정 세포를 보고자 하는 이들이 이를 볼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꿈을 이룬 셈이다. 현재까지 장 교수는 50여 개의 센서와 30여 개의 프로브를 발굴해냈다. 그 과정에서 발표했던 논문만 400여 편, 특허는 60개에 달한다. 그는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재조명하며,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발굴해 새로운 성과로 연결하기 위한 시도라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그간의 연구를 모은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연구를 지속하다 보면 제가 발표했던 논문과 다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놓이곤 합니다. 이전의 연구보다 새로워야 하며, 더 나은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죠. 경쟁에 급급하다 보니 기존에 발표했던 논문의 가치를 재조명하거나 응용할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더 잘 할 수 있었다거나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었던 연구 주제들을 회사라는 플랫폼을 통해 확장해갈 계획입니다.”

장 교수는 센프로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활용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그간 구축한 형광 라이브러리는 물론 해당 분야 연구자들이 축적해온 성과들을 한데 모아 커뮤니티 전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면 학문의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그는 고객의 업무에 필요한 솔루션을 제시하거나 합리적인 비용으로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센프로는 장 교수가 은퇴 후 자신만의 연구에 몰두하기 위한 실험실이자 놀이터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그는 왕성한 연구를 이어가다 은퇴 후에 허망해하는 선배 교수들을 지켜봐 왔다며, 실험하거나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꾸려 연구를 지속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작은 랩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장 교수의 기쁨이자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故 이어령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 꼽으며 항상 깨어 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열심히 공부하며 실험실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 중 하나인 파이썬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부지런하게 배우고 익히며 마지막 순간까지 즐겁게 연구에 임하며 연구자로서 살아가는 미래를 그렸다. 쉼 없이 새로운 연구 주제와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장 교수의 연구가 밝혀낼 노화의 비밀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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