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우리나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나라라는 점에는 대부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정책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특히 기후변화 대응정책은 온실가스의 광범위한 영향으로 인해 전지구적인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국제적이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번째로 서명한 행정명령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파리협정에 재가입하는 것이었으며, 그 이후 2021년 지구의 날 계기로 개최된 기후정상회의와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nflation Reduction Act)의 통과와 이행은 미국 국내의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통계산정과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 지원,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탄소시장 운영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로 2010년 설립되었다. 지난 4월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을 방문하며 느꼈던 점을 중심으로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정책과 우리의 대응방향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작업 프로세스와 거버넌스
기후변화 대응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이다. 1992년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면서 선진국에 해당하는 협약상 부속서 국가는 교토의정서에 따라 1990년 대비 감축목표를 정했지만, 개도국에 해당하는 비부속서 국가는 의무적인 감축목표 수립 대상이 아니었다. 이후 2015년 파리협정이 발효되면서 이러한 구분이 사라지고 파리협정에 가입한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매 5년마다 자발적으로 수립하게 되었다.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2030년 감축목표도 이러한 배경하에 수립된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경제활동, 특히 에너지 사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산업혁명 이후 경제활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하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은 현재 시점에서 앞으로의 경제활동을 전망하고, 이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하는 것이다. 미국은 에너지정보기구(Energy Infomation Administration)와 환경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USDA(Department of Agriculture) 등이 함께 배출량을 전망하고 있다. 두 번째 작업은 다양한 온실가스 감축 기술과 정책의 도입을 가정하여 이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을 계산하는 것이다.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무탄소에너지의 비율(에너지 믹스), 에너지 사용의 효율 개선, 저탄소기술의 도입정도(예를 들어 철강을 만드는 과정에서 석탄이 아닌 수소를 사용하는 기술인 수소환원제철의 도입 수준), 무탄소자동차의 도입 등과 같은 다양한 정책과 기술을 통해 각 부분의 탄소배출량이 감축되는 정도를 다양한 모델을 통해 계산한다. 미국의 경우 여러 부처와 국책연구기관에 해당하는 National Lab이 협동하여 작업한다. 세 번째 작업은 첫 번째 작업과 두 번째 작업을 종합하여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시나리오별 온실가스 감축 수준과 비용편익을 분석하는 일이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의 기후정책실(국가 기후 T/F)과 국무부의 기후특사실의 주도하에 관계 부처와 국책연구기관들의 협동작업을 통해 시나리오 안을 마련한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유사한 작업흐름을 거쳐 그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하여 왔다. 통계청이나 KDI, 산업연구원 등에서 우리나라의 인구, GDP나 산업별 부가가치를 전망한 결과를 바탕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먼저 전망한 후, 다양한 기술과 정책의 효과를 반영한 감축잠재량과 이에 따른 영향을 경제분석모델을 통해 산정·분석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모두 파리협정에 가입한 당사국이므로 국가결정기여(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의 형태로 제출된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국제법적 성격은 유사하나, 미국은 대통령의 행정명령이라는 형태로 국내법적 근거를 가지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른 근거를 가진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또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라고 하는 거버넌스 기구에서 감축목표를 심의·의결하도록 함으로써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을 법제화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전망 또는 감축효과 예측을 위한 다양한 모델링의 중요성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미래의 경제상황과 온실가스 배출량, 그리고 감축량과 부문별 상호작용 등의 예측을 통해 수립된다. 이미 성숙한 경제로 접어든 선진국의 경우 현재 상황을 그대로 가정하더라도 온실가스가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추가적인 노력 없이는 경제성장에 따라 온실가스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온실가스 배출 전망을 위한 모형은 에너지 부분과 비에너지 부문으로 나누어 경제성장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한다. 에너지부문의 경우 미국의 에너지정보기구의 NEMS(National Energy Modelling System), 우리나라 에너지경제연구원의 STEM(System of Three E-Models),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의 GIR-MAKE(Greenhouse Gas Inventory and Research Center-Model for Analysis of Korea’s GHG Emission and Energy System)이 대표적인 예이다. 비에너지부문의 경우 농축산 부문에서 주로 배출되는 메탄과 아산화질소 배출 등을 전망하거나, 폐기물 부문에서 매립과 생물성 소화에서 배출되는 메탄, 산림과 같은 흡수원에서의 이산화탄소 흡수를 전망하게 된다. 미국 산림청의 Global Timber Model, 환경청의 불화가스 예측모델(Vintaging model for HFCs from ODS substitute)등이 그 예이다.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하여서도 다양한 모델이 사용된다. 미국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하여 많이 쓰이는 GCAM(Global Change Analysis Model)은 개별 정책의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상세히 분석할 수 있다. 일본의 AIM(Asia-Pacific Integrated Model), 우리나라의 GIR-MESSAGE(Greenhouse Gas Inventory and Research Center-Model for Energy Supply Strategy Alternatives and their General Environmental Impacts) 모델도 그 예이다.
모델은 현실을 모사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다양한 경로를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여러 모델은 각기 상이한 논리구조와 변수 간의 상관관계를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설명력을 제공한다. 따라서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 과정에서 공통의 전제조건은 공유하되 다양한 모델을 통한 예측값을 상호 비교하고 검토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목표를 수립할 수 있게 된다.
온실가스 배출량과 앞으로의 전망, 정책과 감축 활동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량의 산정 및 전망 등은 모든 당사국이 2년마다 제출하는 격년투명성보고서(Biennial Transparency Report)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된다.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관련해서 현재까지의 감축노력과 앞으로의 전망을 제시하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사용한 다양한 모델을 비롯한 방법론을 구체적인 데이터와 함께 제시하여야 한다. 미국의 정부 부처와 국책연구기관이 오랜 기간 개발하고, 다양한 국가의 데이터를 통해 검증한 모델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미국의 기후변화대응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존 케리(John Kerry) 미국 前 기후변화특사는 1972년 첫 번째 지구의 날에 참여하였고, 1992년 체결된 기후변화협약의 협상과정에도 참여한 베테랑으로 2015년 파리협정의 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바이든 정부에서 기후변화특사로써 미국과 중국의 기후변화 분야의 협력을 견인해왔다. 사실 바이든 정부에서 기후변화특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지만, 그전 정부에서 기후변화특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바마 정부 8년 동안 기후변화특사를 담당했던 토드 스턴(Todd Stern)이 있었고, 함께 오랫동안 협상을 해온 조나단 퍼싱(Jonathan Pershing)도 바이든 정부에서 케리 기후변화특사를 보좌하는 역할을 해 왔다.
케리의 후임인 존 포데스타(John Podesta)도 클린턴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냈을 뿐 아니라 에너지·기후변화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문성을 쌓아 온 인물이다. 우리가 만난 릭 듀크(Rick Duke) 국무부 기후변화특사보 또한 오바마 정부에서 에너지기후보좌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바이든 정부 시작과 함께 미국의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를 수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포데스타를 보좌하면서 2035년 감축목표 수립을 실무적으로 총괄하고 있다. 미국은 국내의 기후변화정책의 총괄은 백악관의 기후자문관이 하되, 국제적인 정책은 국무부의 기후변화특사실이 총괄한다. 2030년 감축목표 수립은 백악관 기후자문관이었던 지나 매카티(Gina McCarthy) 전 환경청장과 존 케리 기후변화특사의 투톱 체제였다면 에너지·기후변화를 총괄하는 포데스타가 케리 기후변화특사의 후임이 되면서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은 포데스타와 기후특사실이 주도하고 있다.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에서 대기오염물질에 더해 온실가스를 규제한 이후 가장 야심찬 기후변화 정책을 담은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이 2022년 시행되면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하원이 합심하여 통과시킨 인플레이션감축법안은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미국 국민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증진시키는데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의 성공여부가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뿐 아니라 우리나라 등 교역 상대국에 미치는 영향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대응할 필요가 있다.
파리협정은 각국의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교토의정서에 비해 느슨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파리협정은 당사국이 5년마다 더 강화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하고, 2년마다 격년투명성보고서를 제출하게 하여 국가의 감축목표의 달성 상황을 스스로 점검하도록 하고 있다. 처음에는 느슨한 감축목표로 시작할지라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사이클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을 점점 더 강화하도록 설계된 구조이다. 우리나라의 2030년 40% 감축은 매우 야심찬 목표이다. 2035년 목표는 2030년 목표보다 더 높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이렇게 과감한, 그러나 이행가능한 목표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다. 우리나라도 내년에 UN에 제출해야 하는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확한 데이터와 과학적 모델링을 통해 적절히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전지구적 노력에 동참하면서도 우리의 국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