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의학의 시대, 의·한 협진과 다학제 융합연구로 한의학이 지닌 맞춤형 정밀의학으로서의 가치 재조명
통합의학의 시대, 의·한 협진과 다학제 융합연구로 한의학이 지닌 맞춤형 정밀의학으로서의 가치 재조명
  • 박금현 기자
  • 승인 2024.09.05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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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침구의학교실·강동경희대학교 한방병원 관절척추센터 교수

의료 패러다임은 경험적 의학에서 검증 기반 의학으로, 이제는 맞춤형 정밀의학으로 변화를 거듭해왔다. 인체 내 구성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에 바탕을 둔 한의학의 생리병리관은 정밀의학의 관점과 유사점이 많다. 사람의 개체성(체질적 특징)을 고려하고, 건강한 상태와 질병 상태에서 발생하는 증상을 통해 인체의 병리적 상태를 관찰하여 패턴을 변별한 후 패턴에 기반하여 치료해서다. 강동경희대학교 한방병원 관절척추센터에서 서양의학과 한의학 간 협진을 펼쳐온 박연철 교수는 타 분야와의 융합연구를 수행하며 맞춤형 정밀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을 구현하고 있다.

박연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침구의학교실·강동경희대학교 한방병원 관절척추센터 교수 / 사진 박성래 기자

 

 

한의약 분야 최초의 체액을 활용한 진단용 의료기기 융합연구

디지털융합 연구, 특수치료연구를 수행해온 박연철 교수는 최근 한의학 기반 디지털융합기술 R&D 사례로 접촉각 측정 기술을 활용한 한의학 디지털 융합 진단 기술개발을 수행해왔다. 접촉각(Contact Angle)은 액체가 고체 표면 위에서 열역학적으로 평형을 이루는 각을 칭한다. 0.1nm 단위에도 결과값이 달라지는 민감한 표면 분석기술로 반도체 등 표면검사 분야, 표면에너지 측정분야 DNA chip의 막형성 공정 분야 등 첨단과학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박 교수는 그간 의료분야에서 접촉각에 대한 진단적 활용은 전무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4년 전 문헌 조사를 통해 접촉각 측정을 통해 혈액 내 구성요소들의 변화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후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과제를 수주하여 접촉각 측정기술 국내 1위 기업과 3년간 연구를 수행했다. 공학에 활용되던 접촉각 측정기기가 혈액, 소변 등 인체 체액을 측정할 수 있는 시작품으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해당 연구는 선행연구결과를 바탕으로 2023년도 한의 디지털 융합기술 R&D에 지원하여 5년간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박 교수는 2027년까지 연구를 수행하며 의료적 활용이 없었던 공학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진단기술을 도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과제 목표를 달성한다면 한의약 분야 최초로 체액을 활용한 진단용 의료기기가 탄생하는 것은 물론 개발된 진단기술은 한의약 분야 외에도 의학 및 치의학 분야 등으로 확장될 것이라 기대된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박 교수는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침구과에서 전문수련의 생활을 마치고, 신안군에 있는 아름다운 섬에서 3년간 공중보건의를 마쳤다. 2011년부터 강동경희대학교병원 관절척추센터, 한방턱관절클리닉에서 진료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침구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심의(心醫), 식의(食醫), 약의(藥醫)...

환자에게 꼭 필요한 진료를 전하는 의사이자 융합연구로 한의학의 저변 넓히는 연구자

척추관절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임상의인 박연철 교수는 자신을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음식을 조절하며, 꼭 필요한 치료를 하는 의사라 소개한다.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병을 낫게 하는 심의, 음식과 생활습관을 조절하여 병을 고치는 식의, 꼭 필요한 약을 잘 쓰는 약의 등 의원을 여덟 종류로 나눈 세조의 팔의론(八醫論)’이 그 뿌리다. 박 교수는 만성난치성 질환의 경우 심의, 식의, 약의의 자질을 고루 갖춘 의사를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자신 또한 이러한 자질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창시절 박 교수가 품었던 꿈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항공우주공학을 꿈꾸던 그는 1998년 대학 입학 당시 한의학의 높은 인기와 부모님의 권유로 한의대를 택했다. 이후 한의학을 연구하고, 임상에서의 경험이 쌓일수록 한의학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환자의 체질과 질환에 최적화된 맞춤의학의 성격의 발견하면서다. 박 교수는 한의학 속 원리들은 러프한 보물지도와도 같다며, 진단의 기준과 결과의 해석을 표준화한다면 치료의학으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임상의이자 연구자로서 진료와 연구에 임해온 20여 년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논문을 찾고, 실험을 한 후 다음 날 진료를 하면서도 크게 어려움을 느끼거나 아쉬운 점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연구의 매력에 푹 빠졌던 그다. 학과와 관계없이 선배 연구자들을 무작정 찾아가 자문을 구할 때에도 젊은 교수가 기특하다며 성심껏 가르쳐준 많은 교수님들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감사를 전하는 그다.

제가 한의학 융합연구를 시작한 것은 제게 실험을 처음 가르쳐주셨던 의대 교수님의 영향이 커요. 분자생물학 전공으로 뇌척수 신경질환을 연구하던 교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연구의 즐거움을 깨달았죠. 임상의와 기초의학자가 서로의 영역을 조금만 알아도 훨씬 더 대화가 수월합니다.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더 많은 교류가 가능한 것처럼 말이죠.”

오랜 세월 축적된 한의학적 이론 체계와 한의 임상 기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방법론을 고민해 온 박 교수는 동료 교수들과 소규모 융합연구를 시작했다. 새로운 공학기술과 유전체 데이터 기반 기술을 접목한 과제를 수행하며 한의학과의 융합을 통한 의학적 진보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그다. 박 교수는 정보통신, 유전체분석, 공학개발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연구팀과 함께하고 있다며, 한의학 분야의 근거를 마련하는 외에도 융합연구를 통해 한의학의 영역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과학기술 개발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예방의학은 물론 치료의학으로서도 탁월한 우수성 지닌 한의학의 융합연구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 필요

박연철 교수는 한의학 분야의 융합연구 R&D는 걸음마 단계라 말했다. 2023년 한의기술 기반의 첨단과학기술·지식 등을 융합하는 연구를 지원하는 한의디지털융합기술 개발사업이 처음으로 시작되었지만 새로운 연구를 지속해서 발굴하고, 우수한 후속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할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박 교수는 한의학 분야와 타 학문 간 융합연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산학연이 참여하는 사전기획연구를 강화하는 등 융합한의연구 고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발전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단기간의 성과 목표를 위한 연구 이외에도 서로의 학문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융합과학인력을 양성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박연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침구의학교실·강동경희대학교 한방병원 관절척추센터 교수 / 사진 박성래 기자

 

박 교수는 가장 애착이 가는 연구로 통풍성 관절염 대상 봉독약침의 치료효과를 확인했던 연구를 꼽았다. 임상의로써 기초실험연구를 기획하고, 과제를 수행하고, 연구 결과를 도출하는 연구의 전 과정을 수행했던 주제여서다. 그는 임상에서 확인했던 만성난치성 관절질환인 통풍성 관절염에 봉독 약침치료가 효과를 보인다는 관찰에 대한 근거를 기초연구를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해당 연구를 통해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과제를 수주한 그는 이후 3년간 관련 후속 연구를 수행했다. 나아가 만성 통풍성 관절질환에 대해 임상관찰의 검증을 넘어서 한의학 변증별 임상관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융합연구를 계획 중이다.

이제는 의학과 한의학의 협진 시스템이 속속 늘어가고 있어요. 제가 있는 척추관절센터도 의대병원의 정형외과,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재활의학과와 한방병원의 침구과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2006년 개원이래 협진을 시작한 이후 레퍼런스가 쌓이면서 이제는 서로의 영역이 필요한 순간을 자연스레 떠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류가 쌓여서 융합연구로 이어졌죠.” 박 교수는 다년간 축적해온 임상데이터를 토대로 무릎관절염에 효과적인 의한통합치료와 한약처방에 대한 임상시험 3건을 비롯해 동결견, 경추추간판탈출증, 요추협착증 등 근골격계 질환에 관한 약침 및 매선치료에 대해 다수의 임상시험을 수행하고 있다. 임상현장에서 활용되는 치료기술이나 새로운 치료법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하고자 국책과제를 수주하여 진행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근거중심의학 연구방법론에 따라 한의치료기술에 대한 임상연구를 수행해왔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진단기술 개발과 한의치료기술 확장을 목표로 인체유래물을 활용한 유전자 분석연구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전했다. 체질·한열·변증 등 한의학적 진단 체계와 유전학적 분석기법 연구를 통한 새로운 한의 진단기술 개발연구에도 집중한다.

첨단 기술이 발달하고 융합이 활성화되면서 의술의 경계도 희미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의학은 예방의학은 물론 치료의학으로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만성퇴행성 근골격계질환의 치료나 수술 후 기능 개선 등에서도 명확한 효과를 보이죠. 기술이 더욱 발달해 일반인들이 의료기기를 직접 활용하는 시대가 온다면 한의학적 이론이나 체계를 함양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말하곤 합니다.”

융합연구를 수행하며 유의미한 연구성과를 쌓아온 그는 지난해 창업에 뛰어들었다. 내년부터는 연구결과가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회사의 성장에 주력할 계획이다. 박 교수는 한의이론 및 기술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과학적 연구방법론으로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는 포부를 전했다. 기업의 성과는 다시 연구중심병원의 성장 동력이 되어 지속 발전이 가능한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한의약 분야에 대한 제도 개선과 더불어 한의학의 표준화·현대화·과학화를 위한 한의학 진단기술의 혁신이 필요함을 피력하기도 했다. 의료의 패러다임이 근거중심의학에서 정밀의학으로 옮겨가고 있음에도 한의학을 둘러싼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고 있어서다. 또한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의학을 둘러싼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한방산업계에 있는 기업의 존속을 위한 지원제도를 마련해 산학의 원활한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후학과 한의학의 미래 위한 길을 여는 마음으로

수련의를 마치고 임상경험을 조금 더 쌓기 위해 대학병원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2011년부터 펠로우 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내가 정말 교수가 되고 싶은지, 왜 교수가 되려고 하는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답은 후배들이었습니다. 제 뒤를 따라오게 될 후배들이 한의학을 하면서 겪을 많은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었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이 졸업생을 대상으로 설문했던 가장 기억에 남는 교수와 그 이유라는 질문에는 박연철 교수의 이름과 함께 가장 한의학을 잘하신다라는 답변이 적혀 있었다. 박 교수는 이러한 평가는 후배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교수가 되자며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기존 한의학 체계 및 이론에 대한 교육과 현대의학적 교육 간 괴리로 인한 학생들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간극을 좁히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그다. 박 교수는 오랜 시간 민족의 의학으로 발달해온 한의학이 과학화·표준화라는 이름 아래 위기에 직면했다며, 의학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만큼 한의학적 이론과 기술을 새로운 과학기술과 접목할 수 있는 한의학 발전을 이끌어가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박 교수가 품은 사명감에는 수련의 2년차 시절 돌아가신 부친이 본과 1학년때 해부학 책 앞에 써주셨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라는 한시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럽히지 말라는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늘 아로새기고 있는 그다. 오늘 내가 걸어가는 길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임을 명심하며 후배들에게 올바른 이정표가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의사가 꿈이라고 말하는 막내딸에게 전해줄 한의학 책을 집필하는 것 또한 그가 그리는 청사진 중 하나다.

끝으로 박 교수는 927일부터 29일까지 동아시아 최초로 개최되는 국제침술협의회(ICMART)의 국제학술대회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대한한의학회가 주최하는 37ICMART 국제학술대회(ICMART 2024)'에는 약 40개국 1,000여 명의 연구자들이 참석해 통합의학 헬스케어의 미래-침술, 의과학 및 기술의 융합이라는 주제 아래 침술을 비롯한 통합의학의 혁신적인 발전 방안을 논의한다. 1983년 과학적으로 규명된 침 치료 연구를 바탕으로 임상근거를 구축하고자 오스트리아 빈에서 창립된 ICAMRT는 현재 전 세계 35천여 명의 의료인이 활동하고 있는 통합의학 분야 최대 규모의 단체 중 하나다. 지속적으로 ICMART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려온 한국한의학회는 아시아권 최초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쾌거를 이루며 한의학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입증했다.

현대의학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의학 체계로 보완하는 통합의학이 주목받으며 한의학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커진다. 한의학의 우수성을 계승하는 동시에 첨단과학과의 융합으로 한의학의 표준화·현대화를 이끌어가는 박 교수의 연구가 한의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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