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발사된 인류 최초의 우주정거장 미르(MIR)는 우주 개발을 향한 과학적 열정과 더불어 국가 간 경쟁을 넘어 ‘협력을 통한 진보’라는 궤적을 남겼다. 스튜디오미르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협력’하며 ‘상생’과 ‘진보’를 이루고 있다. 우주정거장 미르에 모인 과학자들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우주를 탐험했듯 하나의 꿈과 목적을 가진 최고의 작가들이 협력하여 그려내는 새로운 세계, 스튜디오미르가 선사하는 세상이다.
애니메이터의 기본권 보호와 기본에 충실한 포트폴리오로 거머쥔 브랜드파워
대한민국 애니메이션계의 탑티어로 손꼽히는 ㈜스튜디오미르는 지난 2023년 2월 코스닥에 상장한 콘텐츠 기업으로 드림웍스,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스튜디오미르가 제작해온 ‘위쳐: 늑대의 악몽’, ‘도타: 용의 피’, ‘외모지상주의’ 등의 작품은 넷플릭스에 공개되며 큰 호응을 이끌어냈으며, 업계 최초로 넷플릭스와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스튜디오미르는 미국 니켈로디언社의 TV용 애니메이션인 ‘아바타: 아앙의 전설’ 감독 중 한 사람이던 유재명 대표가 2010년 설립한 기업이다. 당시 그는 ‘아바타: 아앙의 전설’로 미국 최고 애니메이션상인 ‘애니 어워즈’(Annie Awards)에서 캐릭터 애니메이션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유 대표는 열정페이를 받더라도 기본을 갖춘 환경에서 일해보자는 절박함에서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업계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해온 그다. 이후 스튜디오미르는 ‘아바타: 아앙의 전설’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코라의 전설’의 기획 및 제작 전반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다.
“스튜디오미르를 창업할 당시는 애니메이션 시장의 환경 자체가 열악했어요. 급여가 밀리는 일은 허다했고, 밤샘 작업으로 사무실 바닥에서 쪽잠을 잘 때도 많았죠. 회사를 만들자마자 취침실과 샤워실을 갖추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직원들에 대한 배려였죠. 기본권을 지키고 싶다는 바람이 창업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라의 전설 시즌2 제작 당시 스튜디오미르는 모험을 단행했다. 한국의 스튜디오를 하청업체처럼 여기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기획 단계라 할 수 있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권한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으나, 제안에 응하지 않자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측으로 제작을 넘긴 것이다. 유 대표는 한국의 스튜디오에게도 프리 프로덕션을 해낼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묘수이자 배수의 진이었다고 말했다.
“코라의 전설 시즌1이 굉장한 성공을 거뒀지만, 한국의 프리 프로덕션 역량이 온전히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시즌2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의 객관적인 역량을 시험해보고 싶었죠. 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위험한 결정이었어요. 시즌1의 성공으로 상당히 우호적인 조건이 제시되었거든요. 이후로도 비즈니스 협상의 문화를 바꾸는 성과를 거두어왔습니다. 힘들다면 힘들고 보람이라면 보람된 시간이었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스튜디오미르가 담당했던 기존 에피소드에 비해 작화 품질이 확연이 떨어지며 팬들의 거센 비판이 인 것이다. 스튜디오미르의 작품력을 세계에 알린 순간이다. 이에 대해 유 대표는 잃을 게 없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말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의 끝에 서 있다 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것이라도 해내야만 한다는 절박함이 모험을 이끌어낸 것이다. 시즌2 작업에 다시 참여하면서는 미국 원청기업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으며, 미국 시장에서의 막강한 브랜드파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스튜디오미르는 한 번도 먼저 제안서를 보내거나 따로 영업을 한 적이 없다. 실제로 영업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애니메이션이라는 기본에 충실하며 포트폴리오를 쌓아온 결과다.
좋은 작품을 지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체력’과 기업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으로 성장 동력 마련해가
㈜스튜디오미르는 스토리기획부터 최종 작업에 이르는 애니메이션 제작 전 공정을 내재화한 총괄 제작 역량으로 정평이 났다. 본 제작 단계인 메인 프로덕션(원화 및 동화 제작)을 비롯해 전후과정인 프리 프로덕션(스토리 기획)과 포스트 프로덕션(편집 및 녹음) 모두를 리드하는 것이다.
스튜디오미르가 이러한 차별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꾸준히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체력’을 강조해온 유재명 대표의 철학에 있다. 전 세계로부터 주목받는 흥행작 단 한 편에 그치는 것은 실력보다는 ‘운’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유 대표는 흥행작의 바통을 이을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힘이 바로 체력이라며, 스튜디오미르를 비롯한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가 반드시 갖춰야만 할 요소라 강조했다.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다 보면 응집된 에너지가 새로운 콘텐츠의 동력으로 발산되는 때가 올 것이라는 인식에서다.
“체력을 쌓기 위해서는 직접 발로 뛰며 결과를 내고, 실적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튜디오미르 역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해나갈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가 도달할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자리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새로운 내일을 열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유 대표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하나의 IP를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는 기본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슈퍼 IP를 확보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를 잘 활용할 때 비로소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IP의 환상에 빠져선 안 된다며, 소비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IP의 전략화·산업화를 위한 확장방안을 고민해 새로운 발전방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스튜디오미르는 스토리 틀을 짜고 캐릭터를 만드는 설계 단계인 프리 프로덕션 체력부터 키워왔다. 더불어 어떤 방식이든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서 만들어낸 결과물은 창작의 영역이라 인정받을 수 있다며, 화장품이나 영화, 드라마 산업의 OEM 역량을 인정하듯 애니메이션 역시 동일한 잣대로 평가해줄 것을 당부했다.
“슈퍼 IP가 곧 큰 수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IP를 보유한 드림웍스나 지브리가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거든요. IP를 노출시키고, 사람들의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력 누수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육성된 애니메이션 인재 중 절반가량은 해외로, 남은 인재 대부분은 게임 업계로 건너가고 있다. 유 대표는 한국 애니메이션은 미개척지에 가까운 시장이라며,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대형 OTT의 투자로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한 만큼 성장 가능성 또한 큼을 강조했다.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편안하게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또 하나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스튜디오미르 역시 아카데미를 운영한 적이 있다. 3개월간 사업을 멈추고 모든 감독이 무료로 애니메이터 지망생들을 가르쳤다. 성과도 있었다. 걸출한 감독들을 배출해냈다. 하나의 기업이 도맡기에는 한계가 뚜렷하기에 지속할 수는 없었지만, 후배세대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산업의 발전과 인재 양성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도 같아요. 좋은 인재들이 들어오게 하려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 산업의 매력도를 높여야죠. K-Pop, K-Movie 등도 걸출한 작품이 각광받으며 산업이 성장한 케이스죠. 여기에 있어 스튜디오미르가 트리거가 되고자 합니다. 교육이나 지원에 앞서 매력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낸다면 산업의 성장은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입니다.”
애니메이터들의 기본권을 지키고자 설립한 회사였던 만큼 회사의 성과를 직원들과 나누는 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전 직원이 함께 미국과 동남아, 일본 등으로 여행을 가거나 공연을 관람하기도 한다. 유 대표는 인원이 늘어나며 단체 여행에도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웃음 지으며, 새로운 방식의 공유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성원들이 함께 일구어낸 성과를 함께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에서다.
한국 애니메이션만의 차별화 이룰 ‘유연성’ 앞세워 새로운 시도 이어가는 ‘역동적 기업’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이제 막 세계 시장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현재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중간 즈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단계다. 유재명 대표는 고도로 시스템화된 미국과 감독의 존재감이 큰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이 갖는 장점은 ‘유연성’이라 말했다. 한국만의 정형화된 스타일이 없으면서도 한국만의 색깔을 녹여내는 것이야말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매력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3월 ㈜스튜디오미르가 참여한 10부작 애니메이션 ‘엑스맨 97(X-men ’97)’은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한 직후 비평 사이트에서 신선도 항목(평론가 평점) 100%, 팝콘지수(대중 평점) 94%를 기록했다. 스튜디오미르만의 ‘유연성’이 30년 가까이 유지되어온 엑스맨 시리즈 팬들의 깐깐한 기준을 충분히 만족시킨 결과라 해석된다.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이자 30여 년 전 엑스맨 오리지널 시리즈 작화에 참여했던 유 대표는 고생스러웠던 1997년의 작법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고민이 많았다며, 상당히 어려웠던 작품이라 말했다.
한국 애니메이션계를 이끄는 스튜디오미르가 써내려온 행보의 핵심도 ‘유연성’에 있다. 어떤 장르와 작품을 맡겨도 유연하게 소화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제시해온 것이다. 유 대표는 한국 애니메이션은 곧 하청이라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깨고 싶었다며, 실제 자연을 참고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에는 기존 R&D 부서였던 CG본부가 더욱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도전할 수 있도록 ‘스튜디오미르CGI’의 물적분할을 실시하기도 했다. 스튜디오미르CGI는 그간 스튜디오미르가 쌓아온 콘텐츠 제작 노하우와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비롯해 CG 기술을 사용한 모든 분야의 전문성과 R&D 역량을 강화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최근에는 메타버스의 성장을 겨냥해 AI를 활용한 버추얼 아이돌을 연구하고 있다. 향후 IP와 결합해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3D드라마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코스닥 상장에서부터 스튜디오미르CGI 물적분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결정을 이끌어낸 단 하나의 기준은 스튜디오미르의 비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해나간다’에 있다. 스튜디오미르는 어떤 결과에 도달하든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자 노력해왔다. 이제는 독자적인 IP 개발에 도전한다.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퍼스트 무버’로서 또 한 번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일본 토에이와 네이버웹툰의 자회사인 스튜디오N과 손잡고 새로운 작품 개발을 앞두고 있다.
“스튜디오미르는 역동적인 회사입니다. 매 작품에 충실히 임하다보니 브랜드파워가 생기고, 미국 시장에서 인지도를 얻어 코스닥 상장에 이르렀죠. 이것이 스튜디오미르가 걸어온 길입니다. 그저 매 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죠.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자 합니다. 끊임없는 시도와 도전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성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스튜디오미르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한 번 더 발걸음을 옮겨왔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온 스튜디오미르만의 체력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높일 동력원이 되고 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뚜벅뚜벅 나아가며 자신들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스튜디오미르의 내일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