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들어가며
2020년 블랙록 래리 핑크 CEO의 서한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ESG 경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반ESG 정서가 커서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한다면 ESG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필자는 지속가능발전과 기후변화 업무를 공공의 영역에서 오랜 기간 다루면서 최근의 ESG 추세에 대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환경과 지속가능발전은 유엔과 국가차원의 노력이 중심이었는데 RE100, 지속가능성 공시 등은 변화의 주체로 기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유엔에서 발간한 세계지속가능발전보고서에서 2017년 연간 수입기준으로 월마트나 애플, CNPC, BP나 로얄더치쉘와 같은 기업은 G20 국가인 남아공을 넘어선다고 제시한 바 있으며, 그만큼 기업의 힘과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작년 발간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는 국가별 감축노력 뿐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의 변화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을 비중 있게 다루기도 하였다.
2. ESG와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적 유사성
ESG를 풀어보면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로 재무적인(즉 경제적인) 요인 외에 기업의 수익과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 사회, 정치적 측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핵심적 영역인 경제적, 재무적 활동이 그 기업의 열대림 파괴, 온실가스 다배출, 아동착취, 오너 리스크와 같은 비재무적 활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SG 경영은 이윤추구 과정에서 기업의 성장과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결국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생존의 균형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지속가능발전의 개념과 궤를 같이 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단기적인 이익의 극대화와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 사이에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현재의 이익만 추구하다 미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를 도외시하는 것도 합리적이지는 않다. 기후위기를 막자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못하게 하면 가난한 국가들은 계속 가난하라는 말이냐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개발과 보전, 현재와 미래 간의 경합과 갈등을 절묘하게 봉합한 개념이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미래 세대를 고려하면서 현재 세대의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며, 경제, 사회, 환경적 측면을 모두 고려한다는 것이다. 1987년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처음 제시된 이후 1992년 리우에서 의제21, 2015년 유엔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가 채택되면서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지향점이라는 측면에서 더 이상의 개념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하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에서 ESG가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처럼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서도 개념이 상호모순적이며 실천하기 어렵다는 비판은 처음부터 있었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유엔이라는 논의의 장에서 경제개발이 가져오는 환경파괴에 대응하기 위한 개념으로 시작되었으나 1992년 리우정상회의에서 경제, 사회, 환경, 평화, 인권 등 21세기의 지향점으로써 의제21이 채택되면서 사회적 측면이 크게 강화되었다. 그리고 새천년 개발의제로 번역된 Millennium Development Goals이 2015년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로 확대 개편되면서 빈곤퇴치, 건강, 식량, 교육, 경제성장, 물, 에너지, 인프라, 지속가능소비생산, 기후변화, 생태계 보전, 평화 및 파트너십 등 17개 목표와 169개 상세목표를 제시하는, 그야말로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지속가능발전의 로드맵이 되었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개별 국가에서 경제가 잘 성장해서 국민들이 좋은 건강과 교육, 인프라를 향유하고 사회적 불평등도 해소하면서 깨끗한 물과 공기를 누리고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도 막자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사실 이행하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며, 이를 기업과 개인의 활동에 대비해 보면 그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다. 매일 돈 벌기도 어려운데 주변의 사람이나 기업,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전 지구적 환경 문제까지 고려해서 실천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3. ESG의 E는 Emission인가?
이렇게 지속가능발전과 ESG는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온실가스배출량으로 표시되는 기후변화 부분이 최근에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다. 2022년 Economist는 ESG는 온실가스 배출(Emission)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RE100의 확산과 기후공시, 공급망 실사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언급하면서 ESG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한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시한 바 있다. 사회적 기여나 거버넌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를 통해 오랫동안 논의가 이루어져 왔고 정성적이고 가치개입적이어서 확장 가능성이 적은데 반해, 온실가스 감축은 정량적이고 가치중립적이어서 적용하기가 용이하다는 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 논의의 뒤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있는 기업이 직접 앞장서야 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포함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소비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1992년 기후변화협약 체결 이후 교토의정서와 파리협정 체결까지 거치며 32년 동안 노력했음에도 전지구적인 배출량은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이제 기업과 소비자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속가능발전목표 12번은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Sustainable Consumption and Production)인데, 경제구조를 지속가능하게 바꾸려면 생산보다 소비, 공급보다 수요를 바꿔야 한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소비가 생산보다 앞서 배치된 이유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한 성장동력과 경제적 과실을 다른 나라에 뺏길 수 없다는 고려다. 자국의 기업이 온실가스를 줄인다면, 다른 나라의 기업도 그만큼 줄이도록 해서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고 전지구적인 감축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코로나 이후 더 심화된 자국중심주의의 흐름 하에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변화와 관련한 ESG의 추세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필자는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한 국제적 흐름은 지연될 수는 있겠으나 역행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뿐 아니라 변화한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러한 추세를 지속하고자 하는 흐름이 상당히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4. 잘 사는 게 무엇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기업의 ESG는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에게 현재만 있다면 뒤를 생각할 필요 없이 오늘 내가 누리는 효용을 극대화할 것이다. 다이어트 안 하고 맘껏 먹고, 싫은 사람에게 소리도 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내일이 되고 현재는 미래가 된다. 결국 잘 산다고 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내가 소속된 사회, 나의 연장선인 미래 세대, 함께 발 딛고 서 있는 지구까지 포함하는 보다 확장된 개념의 내가 잘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업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잘 살 뿐 아니라 오래 살고,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ESG가 지속가능하길 바란다.